^*^
아침에 일어 나자마자 바라다 본 창밖 풍경.
약간 비릿한 바닷 내음과 상쾌한 아침 공기가
아직 덜 깨어난 세포들의 겨드랑이를 간지르며
햇살을 바라 보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날씨가 너무 좋은 탓일까
아직 식전인 데도
지난 번 만났을 때 워나가 헤어질 무렵 가방에 넣어 준
과일 쥬스 한 잔을 가지고 홈카페 같지 않은 초라한
그러나 나만의 홈카페에 앉는다.
다행히 이 곳에서 바라 보는 뷰는 참 좋다.
남항대교쪽에서 별빛보다 더 반짝거리며
윤슬의 은하가 길게 뻗어 내리고 있다.
간밤 하늘의 은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반짝반짝 새하얀 윤슬이 되었나 보다.
태안에서 부산으로 완전히 귀향을 한 지 2년.
그리고 온전한 내 집으로 이사를 한 지
일곱달 반.
그러나 아직 아이들은 내가 이사 한 사실을 모른다.
그들이 물어 본 적이 없고
때문에 굳이 먼저 말을 해서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객지를 떠돌다 부산으로 이사를 온 이후
그들이 내 집을 방문 한 것은 명절을 빼고는
일년에 많아 봐야 한 차례 정도다.
지난 여름 휴가철.
이사를 한 사실을 모른 채 아이들은
집에 잠시 들렀다가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함께 가자고
연락을 해 왔지만
마침 객지에 나와 있던 터라 그들과 함께 할 수가 없었고
때문에 그 때도 이사를 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때까지도 오롯이 내 생활을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았고
혼자가 주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한껏
즐기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1인 가구의 삶이 길었던 탓도 있으리라.
그 후 추석 명절에 그들을 만났을 때도
지난 4월 초에 이사를 했다는 사실을 숨겨 둔 채
그저 넌지시 명절 후에 이사를 가게 될 지
모르겠다고 귀띔만 해 주었다.
그러다가
저 번에 후니, 송이와 통화를 하면서 이사를 했다고 말 해 주었다.
그 것도 겨우 두어 주 전에 이사를 했다고 하면서.
다음날 워나에게도 이사를 했다고 말 해 주었다.
사실 강원도 동해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 둔 후에도
그 곳을 곧바로 떠나지 않고 4~5년 가량을 더 살았다.
충남 태안으로 이사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이사를 간다는 사실을 알리기는 커녕
그 때도 이사를 한 후 거의 일년이 지난 후에 알렸다.
당시에는 손주들도 아주 어릴 때라
워나는 내가 부산으로 와서 함께 살거나 이웃해 살면서
제 아이들을 돌 봐 주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한 태안.
더구나 지역이나 인심에 대하여 거의 알지도 못하는 곳,
단지 국내 여행을 다니며 그저 몇 년 살아보고 싶은 그런 곳 정도 였다.
사실 처음 이사를 할 때도 길게 잡아 한 2~3년 정도 머물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뜻하지 않게 5~6년을 태안에서 살게 되었다.
객지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자 태안 평생학습관에서 영어와 스피킹을 배우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된 까닭이다.
더구나 한 회원의 소개로 독서동아리에도 참가하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만남과 국내 여행을 비롯한 홍콩과 마카오를 비롯한
해외 여행도 함께 하면서 그 고장에 더욱 푹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동시에 외로움도 짙어져 가서
부산으로의 귀향을 마음 먹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들에게 이사를 한 사실을 알려 주고 나니
무언가 오랫동안 숨겨 두었던 비밀 하나를 털어 놓은 것처럼
홀가분 하다.
한 편으로는 좀 더 두었다가 이야기 할 걸 하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역시 제일 먼저 한 일은
관내의 평생학습관에 관심있는 분야에 대하여
수강신청 하는 일이었다.
이 번 가을 학기에 수강 신청한 과목은 일본어회화 중급반과
연필정물화 그리고 수필 자서전 쓰기 반이다.
이 번에 만나게 되는 강사와 이웃들도 한결같이 좋은 사람들이라
무척 다행이다.
그렇게 집이란
단지 자고, 먹고 생활을 하는 나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이웃을 형성해 나가고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 함께
숨 쉬고 스스로를 키워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
엊그제 비로소 후니와 송이를 만나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잡 구경을 시켜 주었다.
식사는 집 가까이 있는 설스시에서 했는 데
회가 투툼하고 쫄깃하여 언제 가서 먹어도
가성비가 있고 그 맛은 까다로운 혀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이 또한 집이 주는 작은 행복이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대형병원들이 있고,
대형마트와 전통 시장이 있고
또한 백화점과 영화관도 언제든 쉽게 갈 수 있으니
집을 구하는 데 비록 힘이 들긴 했지만 스스로가 만족을 하니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후니와 송이도
창문으로 영도다리와 백화점이 보이고
남항과 남항 대교가 한 눈에 들어 오니 집이 예쁘다고 한다.
비록 늦게 이사를 한 사실을 알렸지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뿌듯 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집에 보내기전
술 한 잔과 돔베고기를 먹은 다음 차도 한 잔을 했다.
비록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지만 피로함보다
자식들과 함께한 시간이 보람으로 다가 온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 각각 제 색깔을 내면서 살아 가고 있나 보다.
나 역시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