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인류사회가 미시적으로는 선악과 희비, 美醜가 언제나 혼재하고 두줄의 쌍곡선을 그려 나가고 있으나 macro-sociology의 큰틀에서는 그래도 진전하는 문명의 큰 자취를 따라 각성과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초문명 또는 문명의 顚覆을 향하는 요즘, 서방 자유민주체제의 선진 문명권에서 조차 그것들이 정체되거나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
그것은,
1973년 부터 9개국 10개 外邦 도시에서 살아 본 경험적 관찰의 결과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한가지 예를 들자면,
새벽까지 떠들고 함께 지내던 畏友 박선우 군과의 뉴욕 초임 시절, 케네디 공항 인근에서 살던 그를 아주 늦은 밤시간에 데려다 주고 내집으로 돌아가던 고속도로에서 깜빡 졸다가 도로의 가운데 분리대 위를 치고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질주하는 차량들의 위험한 도로에서 어느 분이 차를 세우고 나를 돕고자 길을 건너 다가왔던 적이 있었다 .
찢어진 타이어 하나 바꾸어 낄 줄 모르던 초년병 시절,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뉴욕에서도 가장 넓고 길게 뻗은 공항 부근 고속도로 divider 위에 난데없이 올라가 있는 나의 차를 보고
대형 사고를 직감하고 다가온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뒷 트렁크에 들어 있던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 갈아끼워 주고 떠났던 것이다 .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로서는 그 위험한 시간과 장소에서 큰 사고를 당한 어느 운전자를 돕기 위하여 불편한 어느 곳에 내차를 세우고 걸어서 직접 도움을 줄 용기를 내기는 아주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
고속도로를 다 지난 다음 어느 곳에서 공즁전화로 911 경찰 사고 신고를 해주었다면 최선이 아니었을까 .
그후로도 작고 큰 여러 곤란한 처지에 내게 도움을 주러 누구던 나서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GPS(내비게이션)나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지나가는 어떤 행인에게나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켜 주는 성의는 오히려 낯설다고 생각될 만큼 세심한 것이었으며 직접 함께 가서 찾아 주기도 하였다 .
지금은 좀 다르다 .
얼마전 더운 어느 여름 날, 샌프란시스코에 나갔다가 큰 車路 옆 인도에 무언가 벼개 모양의 짐을 머리 밑에 괴이고 누어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가는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도움을 주는 것 같지 않았다 .
나도 그 중의 하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
정체된 찻길에서 차 안에 갇혀 있기는 하였으나 지금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
LA와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는 갈 수록 늘어나고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1천불 이하의 수퍼마켓등 절도는 경범죄(misdemeanor)로 다룸으로 Whole Food 라는 전국적 규모의 S.F. 수퍼마켓 한 곳은 문을 닫기도 하였단다 .
아침 산책길에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인삿말을 먼저 던지는 쪽도 대개 나다 .
이것은 개별적 사례를 들어본 전체적 사회복지와 公存, 협동 정신의 정체나 후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와 America First 구호가 적지않은 지지를 얻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