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天地人)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2026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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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天地人) 가운데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 우리가 인간인 한에서 인간에 대해 사유하는 한에서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갠지스강의 모래가 바위로 되고 다시 모래가 되는 세월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해탈은 동물로도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 한다. - 탐만치를 버리고 살라는 의미이다.
이 얼이 또는 혼(魂)이, 소크라테스 사상의 중요한 후계자들인 퀴니코스-스토아의 우주혼에 닮았고, 이로부터 우주의 기원과 전개를 이어받은 쪽이 알렉산드리아 사상으로 이어지는 플로티노스라 한다. 그 풀로티노스의 사상을 물질계라는 구체적인 물리학적 사실들에 적용하여 ‘충족 이유(이법)론’을 설명하려 한 이가 라이프니츠이며, 물질 안에는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에너지 내재성을 다시 벩송은 생명 내재성으로 바꾸어 읽었다. 그 생명의 발현하는 힘(권능)이 엘랑(l’élan)인데, 이 엘랑은 중세의 자연에 내속하는 물질 안의 충력 정도로 이해했으며, 갈릴레이는 이를 상대성 운동의 원인처럼 여겨서 충력(impeto)라 하였다. 뉴턴에서 행성의 운동의 항상성을 설명하는 원인으로서 중력개념에 스며들었고, 라이프니츠에서는 에너지와 함께 기억으로 전환되었으며, 벩송은 꼴레쥬드 프랑스 강의에서 엘랑이란 용어가 충력과 동격으로 쓰고 있다.
고대의 하늘과 땅의 연결로서 무(巫)이든 신관(神官)이든 하늘과 땅의 연결자로서 생각했던 것은, 천문의 운행과 하늘의 소리(만백성의 함성)에 대한 고민하였으리라. 서양에서 영원과 시간을 잇는 사유가 철학적 체계를 세우는 토대였다. 이 양자 사이의 틈이 깊어지면 질수록, 둘 사이의 연대를 보다 밀접하게 대응시키려는 노력이 근대철학에서 대응설, 평행설, 기회설, 조화설, 인과설 등이 있다. 그럼에도 자연에 대한 깊이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은 자연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오만하고 독단적 지성이 해결할 수 없는 이중성의 난제에 부딪힌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벩송은 이항대립에서 사실들(faits, 만들어진 것: 수동 완료형)들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들(se faisant)을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연과 의식을 다루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고 했다. 에밀 브레이어가 이중성의 전개에서 두 가지 학문, 사회학과 심리학의 도래를 알리고 난 뒤에, 들뢰즈는 사실들 또는 표상들의 시대가 아니라, 사건들 또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이야기했다. 브룅슈비끄의 수학사에서 사유방식에서 3중성 또는 4중성이 시대에 부침하면서 전개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이항대립에서 파라독사들이 점점 많이 제기되는 데 놀랐고, 화이트헤드는 벩송의 영향으로 우주에서 진행하는 ‘과정의 철학’으로 전향하면서 러셀과 갈라졌다. 러셀은 이에 대해 벩송과 브레이어의 ‘프랑스 철학사’에 대응으로 비판하기 위해서, 그리고 서양철학의 독단주의 이외에도 동양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서양철학사”를 서술했다. 그는 1919년 중국을 여행했고 북경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전쟁을 일으킨 이항대립적 사고에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2차 대전에 영국에서 반체제인사로 몰려 감시를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수학사에서 브룅슈비끄가 파스깔에 비추어서 다음처럼 서술했는데, 이 서술에서 스콜라주의에 대한 견해는 벩송이 이항대립적 사고가 네오스콜라주의라고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참조: https://cafe.daum.net/milletune/REM0/149>
<<이법(la raison)에 찬성하거나 또는 반대하는 방편을 취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사람들이 보편 연역법의 스콜라적 이상을 거부했던 이후에야, 또한 사람들이 완전한 방법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인간의 무능을 제시했던 이후에야, ... 반대로 사람들이 보편 연역법의 스콜라적 이상을 거부했던 이후에야[중세 이후], 또한 사람들이 완전한 방법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인간의 무능을 제시했던 이후에야[1859년 이후], 모든 용어들이 정의되고, 또한 모든 원리들이 증명된다[증명을 시작해보았으나 다 된 것은 아니다]. 이런[용어들과 원리들] 것들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지평 자체 위에서, “강한[오만한] 정신”의 오해로 그리고 아이러니[파라독사]로 부딪혔던 것이다.] -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169. (59NMD)>>
그럼에도 철학사는 소크라테스의 물음, “너 자신을 알라”는 소중하다. 너,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라면 너 자신을 알라... 벩송이 말한다. “우주라는 기계는 신들을 만드는 기계라고(MR. 마지막 문장)”. 인간이라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책임을 지면서, 지구와 그 생명의 안녕과 평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2:14, 59NMD)
# 덧: 사상(四象)만이 아니고 팔괘(八卦: MBTI)도 있지만, 빛은 무한한 방향이다.
- 자연의 빛의 무한(infini), 우주의 무한(infini), 그러나 인간의 사유의 무한정(indéfini)과 무한계(illimite)는 무한이 아니라, 비결정이라는 의미이다.
유시민이 밴다이아그램을 이용하여, 정치판에서 A-C-B에 속하는 인간들의 군상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편을 가르는 모양새이다. 이 이분법적 대응설에서 나온 설명 도구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제는 싸우기보다 세상에는 다양한 것이 많은, ‘참 별난 세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다이아그램은 3원도 4원도 다원적 논의도 있다. 다양체이다. 이미 에밀 브레이어는 18세기 초에 자연의 빛이 성행한 시기에 세상은 “요상한 것들(bizzarreries)의 박물관”과 같다고 했다,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신 또는 절대적 권위, 그리고 체계의 보편성에서 벗어나려는 시기였던 1730년대를 온갖 생성(별종, 덕후, 괴물, 걸물 등)이 있었던 시기라 한다.
요즘도, 생성 AI 시대에 자신과 다른 아바타가 등장하는 것이 요상한 것들의 시대와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다양체의 시대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 괴물에 빗대어 한 쪽으로 만 나아가고, 곁들과는 벗어나서 잘난 체하는 것은 파라노이아의 방식이다. 중세 천년동안에 성직자들이 얼나마 많은 이들을 하늘나라 신의 곁으로 보낸다고 하면서, 탐욕을 감추었던가를 생각해보시라, 세상에서 족쇄가 풀렸을 때, 즉 (새로운) 르네상스에 온갖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의학사에서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하게 태어나는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신이 선악 또는 진위로서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으며, 괴물이든 신체의 부분으로 태어나든 신의 은총(자연의 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니, 온갖 이상한 이야기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유르세나르(1903-1987)가 쓰기도 했고, 마르케스(1927-2014)의 백년간의 고독 속에 집시들의 이야기 속에도 들어있다. (2:28, 59NMD)
* 4분할의 공시태는 아래와 같다.
2026년 지선후보들이 등장하면서, 온갖 미사여구, 독설악담이 난무할 것이다. 입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평결이 되듯이, 문자화의 길을 갈 것이다. 이는 대중의 손 안에 든 누리소통의 도구 덕분이다. 이 도구를 탁현민이 말하듯이 ‘돼지와 씨름하는데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대의 사전이 재판을 나올 때 사라질, 김건희, 윤석열, 전광훈, 전한길, 함돈균이 있는가 하면,
이에 찰나의 반응하는 계열(수학적 계열, 페르마)로서 이동형, 김용민, 이상호, 김인규, 김진애, 이언주, 한준호도 있을 것이고 ,
이에 긴 시간을 따라가는 계열(생물학 계열, 뷔퐁)을 생성해나가는 최강욱, 김어준, 최욱, 홍사훈, 장인수, 탁현민 등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자연의 산물로서 한 부분이 남아있으며, 여집합이라 부르는 부분인데, 사대부중, 백성, 대중, 인민이라 부른다. 언제나 심층에서 솟아나 표면으로 올라오려 노력한다. 그 노력에서 그에 필요한 입말, 누리소통, 공감, 공명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그 중에서 흥미로운 발언으로, 탁현민이 말한다. “나는 돼지들과 씨름하지 않는다.” 돼지는 즐거울지 모르지만 나는 더럽혀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성계가 스님은 개돼지 같은 놈이라고 말하니, 무학이 이성계를 부처 같다고 했다지 않았던가.
벤 다이이가그램에서 이항대립에 가치와 탐욕으로 대비한 것에 대해 아마도 사고의 반동이 생긴 것 같다. 4상과 8괘를 유용한 MBTI의 용도에 대해서는 그렇게 반동의 계열들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면 이제 곧 프로이트-라깡 아류들의 3원 벤 다이아그램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던 이들이 조용한 것이 이상타. 점장이 아류들의 신기가 세월이 흐름에서 재판본에서 밀려났기 때문일까,
순수하다고 여기면서 내면에 탐욕을 감추지 못한 이들은, 동양의 통감(通鑑)처럼 우리 역사 속에서 거울을 비춰보아야 할 것이다. 오랜 우리 역사 속에 청동기 거울이 매우 소중하다. 21세기 자동 생성 AI가 등장하여 거울보기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그 거울보기를 여러 갈래로, 이항대립의 사실로 사고하기보다 다항연관의 사건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읽어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들뢰즈의 “의미논리(1969)”에서는 서른네 계열들을 이야기한다. 이런 사유의 폭에서 볼 때가 온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기나긴 이야기를 하나의 계열로 있을 수 있다. 그 계열들이 사건들 속에서, 대응, 정합, 협약, 평결들에서 각각의 자리를 찾는 것은 여러 계열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올 것이다.
(3:28 59NMD)
첫댓글 8.15 다음날 부터
독립운동하는 자들이 있다고 정청래가 말한다.
그런 인간들이
만주서 개장사 했다고 억압하면서
경북을 왜곡했던 TK가 한세대는 반성하고
묵묵히 일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