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사태와 보현행원
황연자 법성행 / 송파17구
나의 종교의 생활시작
나의 불광법회 · 불광사의 인연은 지인의 소개로부터 시작됐다.
기본교육부터 받고 호법에 가입했지만 호법비를 내기 위해 겨우 한 달에 한 번 불광사를 찾는 속칭 초파일 신도에 불과했다.
호법비를 내기 위해 불광사 종무소를 찾는 날이면 봉사자들이 함께 봉사를 하자며 귀가 따갑도록 권유를 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나 보현행원에 대한 굳은 신념이 부족했던 나는 아이들 핑계로 거절하기 일쑤였다.
세월이 흘러 막내아이까지 대학에 입학을 하고나서야 구법회 법등에 가입했다.
사실 구법회와 법등 활동에 대해서는 기본교육 때 많이 들어왔기에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도 아닌 불교에서 구법회 조직과 활동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명등이 되려면 10년 넘게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때까지 꾸준하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하여튼 그렇게 불광사 구법회 법등 가입으로 불광사에서의 본격적인 나의 종교생활은 시작됐다.
불광 임원 소임과 봉사
내가 속한 법등의 임원은 바라밀부터 시작했다.
바라밀 소임은 사실상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봉사를 해야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같은 구 선학보살님께 봉사활동에 대해 상의했다. 선학보살님께서는 마침 불광사 중창불사를 하고 있으니 불사금 헌공금을 모으는 기와 불사팀에서 활동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그렇게 불광사에서의 봉사활동은 시작됐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절 출입구에서 추우나 더우나 책상에 기와 세트를 올려놓고 기와불사를 접수 받았다
나는 기와동판에다 주소, 가족이름을 써주고 받은 기와 불사 보시금을 종무소에 전달했다
지금 불광사 지붕은 기와 불사팀들이 써드린 불광 가족들의 정성이 담긴 동(銅)으로 된 기와가 빼곡하게 뉘어져 불광사를 덮어주고 있다.
불광사 중창불사가 완공 되면서 기와불사는 종료되고 다른 봉사를 찾던 중 자주 들락거렸던 종무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종무소는 호법비, 만불비 각종 중창불사 불사금 접수에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만불전 불사 접수가 한창이던 때라 일요일에는 보살님들이 줄이 길게 서있는 날이 많았다.
접수를 받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수많은 보살님들이 중창불사에 동참하겠다며 매달 호법수첩에 각종 불사금을 내고 도장이 찍혔는지 확인하며 흐믓해 하시는 모습이 내게도 큰 기쁨을 전해져 왔다. 또 중창불사를 위한 보시금을 완불했을 때에는 빛을 다 갚은 마음처럼 후련하다며 기뻐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보람도 느꼈다.
불광사 중창불사를 위한 불사금은 어느 돈 많은 재벌가 한 분의 목돈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불광사의 신도들이 한푼 두푼 정성을 담아 내 준 정재(淨財)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장인(匠人)이 명품을 제작할 때 한 땀 한 땀 정성드려 제작하듯이 불광사 역시보살님들의 청정한 보현행원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진정한 부처님의 보궁(寶宮)이다. 신도들이 한푼 한푼 모은 돈으로 정성을 다해 내 주신 불사금으로 만들어진 명품 절이다.
만불전을 건립할 당시 “늙어서 노인정에 가서 시간 보내느니 만불전을 만들어 부처님 뵙고 기도하면서 우리 절에서 노후를 보냅시다” 라고 권선을 하면 모든 보살들이 수궁하고 동참했다. 심지어 가족 친지들까지 만불전 건립을 위한 불사에 동참 시켜주셨다.
종무소 봉사는 봉사자들이 현금을 받으므로 전산내용과 현금이 일치해야 끝이 난다. 천원이라도 모자라면 원인을 찾아서 맞추는 일까지 해야 한다. 때문에 일요일에는 항상 늦게 귀가 하는 일이 허다했다.
어느 날 남편 친구부인이 불광사에서 무슨 봉사를 하고 계시냐고 물어왔길래
종무소봉사를 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남편 친구의 부인은 “불광사는 재가신도들이 돈을 관리하니까 투명한 절”이라며 “불광사는 앞서가는 절이고, 훌륭한 봉사를 하고 계신다”며 부러워했다.
특히 남편 친구 부인이 다니는 절에서는 매일 들어 온 보시금을 모두 스님께 갖다 드린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제대로 된 절을 다니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봉사에 대한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봉사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불광사태
그러던 2018년 5월에 불광 사태라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스님의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문자내용 공개와 공금횡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 큰 충격과 함께 실망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봉사자들이 한 푼의 오차도 없이 처리한 귀중한 불사금이, 보살님들의 정성은 무시된 채 공금을 내 돈인양 사용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불광형제들은 치솟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중창불사를 하라고 보시한 시줏돈은 어디가고 빚은 빚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들이 떳떳하다면 불광형제들이 요구하는 감사를 받아 사용처를 증명하면 모든 의혹히 해소된 채 끝이 날 문제였지만 스님들께서는 용처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러고도 당당한 스님들을 보았을 때 불광형제들이 과연 존경 할 마음이 생길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결국 스님들의 횡포는 극에 달하고 코로나19를 핑계로 지하법당인 보광당 출입구 손잡이를 쇠사슬로 묶어 버려 사용을 못하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리가 손수 한푼 두푼 정성을 모은 불사금으로 건립한 부처님의 보궁이 거의 폐쇄 되어 신도들 마저 마음 편히 사용 할수 있는 공간이 되어 버린 현실에 그저 막막했다.
특히 스님들이 불광형제들을 고소하면서 스님들의 민낯은 재판과정에서 더욱 선명하게 밝혀졌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모른채 보시금으로 절을 지었으면 무주상 보시로 하였으니 상(想)을 내지 말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너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이 지면을 빌어 ‘무주상 보시’라는 단어는 그럴 때 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단언컨대 우리들은 상을 내는게 아니다. 불광사 중창불사를 위해 모여진 시줏돈은 허리가 굽어진 상태에서도 중창불사 보시를 위해 종이박스를 주워 모은 노 보살님의 꼬깃한 보시금부터 젊은 불자들의 아낀 커피값 등이 한푼 한푼 모아져 쌓인 삼보정재(三寶淨財)이다.그렇게 모여진 청정한 시줏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스님들께 재정투명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스님을 거부하고 정말 존경 받을 수 있는 스님이 오셔서 광덕스님의 유지를 계승 하고 청정도량을 만들어 주시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스님의 과오로 시작된 불광사태가 어찌 순수하게 불사금을 낸 불광형제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 스님이라서 무조건 공경만 하라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인가? 부처님께서도 출가자라고 무조건 공경하라고는 안하셨다. 제대로 수행하시는 스님를 공경하라고 하셨다.
우리 불광형제들은 더 낳은 공간에서 신행활동을 위해 불사를 하였다. 불자들의 이런 행위가 싫으시면 스님들께서 수행처를 떠나시면 간단한 일을 스님들은 무슨이유로 우리 불광법회형제들의 신행활동을 방해하면서, 불광사에 집착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는 분명 수행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어서 일것이다
임원소임중에 험난한 불광의 역사를 겪으며 세월을 보내다 보니,명등까지 회향하고 선학이되어 있었다.내가 처음 의구심을 가졌던 불광법등조직은 정말 대단하고 꼭 필요한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광덕스님은 늘 법등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강조 하시는 이유가 이런 미래를 예견 하신듯 하다.
이러한 불합리한 불광사태는 이런 조직없이는 6년이란 세월을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불광조직에서의 임원들은 대들보 같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불광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에서는 정상화를 목표로 우리모두 힘을
합해야 하기에 각자 임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불광의 정상화는 우리의 목표이지만 길게 보면 불교의 미래이기에 반드시 실현 되어져야만 한다.
임원이라는 단어에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선임에 응해주셨으면 한다. 부처님의 부름이라 생각하여 거절마시고, 부처님께 은혜갚은 일이며, 복지을 기회가 왔구나 하고 기쁜마음으로 받아주셨으면 한다.
안으로 구법회와 법등식구 챙기고 밖으로는 여러보살님들과 어울려 봉사하니
부처님 공부가 절로 되는 것이다. “보현행원으로 보리이루리” 임원자체가 봉사이고 보현행원이기에 결국 임원과 봉사는 떼어 놓을수 없이 서로
공존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임원을 마쳤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보자 봉사에 만족하고 기쁨을 느낄수 있다면 신체나이 정신나이 모두 젊어 질 수 있고 덤으로 복이라는 통장에 공덕이 차곡차곡 저축된다. 복은 저축 할 수 있을 때 저축을 해야 한다. 내가 움직일수 있을 때 건강할 때 많은 저축을 해놔야겠다.
오늘의 불광사태는 불광법회. 불광사만의 사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록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쩌면 한국 불교, 한국의 많은 사찰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출자가 우선주의 또는 스님 중심의 사찰운영은 그동안 많은 사찰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로인해 교계 일각에서는 사찰의 운영은 재가신도에게 맡기고, 스님은 청정수행으로 불자들에게 많은 가르침과 바른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미 서울의 한 사찰에서는 스님은 수행, 사찰운영은 재가신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출가 스님과 재가신도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찰운영과 청정수행에 대한 이원화를 심도깊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스님은 수행에만 전념하시고, 사찰관리는 재가자들이 해야 할 몫이라는 점에 출가스님과 재가신도가 공감하고 뜻을 함께 한다면 결코 요원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의 경구(經句)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지혜를 모으면 된다.
특히 출가스님은 청정한 수행에만 집중하고. 재가신도가 사찰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이다.
청정한 스님, 수행하는 스님 모시고 기도 정진할 날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기도수행과 보현행원으로 불광 정상화를 꼭 이루어내길 기원해 본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