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어 삼합은 삭힌 홍어에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여기에 막걸리인 탁주(濁酒) 한 사발까지 더하면 바로 홍탁이다. 굳이 전라도 사람이 아니더라도 홍어 삼합과 홍탁에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라도에서는 홍어 빠진 잔치는 아무리 잘 차렸어도 먹을 것 없는 잔치라고 말할 정도로 홍어를 최고로 여겼다. 그래서 잔칫날이나 제삿날이 되면 홍어를 사다 퇴비나 장독대 항아리에 묻어 며칠을 삭힌다. 그러면 홍어 몸속의 요소 성분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암모니아로 변하며 코를 톡 쏘는 강렬한 맛이 나온다. 여기에 한번 맛을 들이면 홍어 없는 잔치는 차린 것 없는 잔치라고 흉을 볼 정도로 홍어 마니아가 되는 것이다.
홍어의 주요 산지인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먹는데 바다에서 막 잡은 홍어는 회로 먹는 것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흑산도를 떠나서 전라도 내륙으로 들어오면 홍어회보다는 코끝을 톡 쏘는 삭힌 홍어를 별미로 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나주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다고 했으니 전라도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먹은 역사가 짧지 않다.
사실, 지금은 광주광역시가 전남의 중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나주가 전라도의 요충지였다. 전주와 나주를 합쳐서 전라도라고 부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나주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즐겨 먹었다는 것은 바닷가를 제외하고는 삭힌 홍어가 더 널리 퍼졌다는 뜻인데, 왜 하필이면 그냥 삭힌 홍어도 아니고 삶은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홍어 삼합을 먹게 됐을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흑산도에서 잡히는 홍어는 서민들은 감히 먹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졌다고 한탄한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옛날에는 싼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홍어가 싸구려 생선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잔칫상에 올리는 물고기였던 만큼 옛날부터 전라도에서 홍어는 고급 어종에 속했으니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음식은 아니었다.
홍어 삼합이 발달한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한다. 모처럼 잔칫집에 온 손님들이 간만에 홍어를 푸짐하게 먹고는 싶지만 홍어만 집어 먹다 보면 염치가 없어 보일까 봐 삭힌 홍어도 한 점 먹고 삶은 돼지고기도 한 점 곁들이고, 입 안이 텁텁하다 보니 묵은 김치도 한 조각 집어 먹으면서 홍어를 눈치껏 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다 보니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조합을 이루며 오묘한 맛을 만들어낸 것이 홍어 삼합의 탄생 배경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삭힌 홍어,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의 세 가지 음식이 절묘하게 궁합을 이루었다고 지어놓은 삼합(三合)이라는 이름 또한 절묘하다. 삼합은 명리학에서 최상의 조합을 이룬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삼합이니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합쳐져 우주 만물의 조화를 이루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 가지가 합쳐진 맛이 삼라만상이 조화를 이룬 맛과 다르지 않다는 뜻일까?
어쨌든 홍어 삼합이 조화를 이루니 그 후부터는 다양한 세 가지 음식이 모두 화합을 시작해 우주에 새로운 음식 맛의 길을 열었다. 전남 장흥에서는 키조개와 한우 쇠고기, 표고버섯으로 삼합을 이루어 키조개 삼합을 탄생시켰고, 경남 거제도에서는 조개와 죽순, 삼겹살을 먹는 조죽삼 삼합을 만들었다. 울산에서는 언양육회에 개불, 배를 곁들여 울산 삼합까지 탄생했으니 곳곳에서 우주가 화합해 만들어내는 최상의 조합이 탄생하고 있다.
아무리 홍어 삼합이 명리학에서 말하는 최상의 조합이라고 해도 막걸리 한잔을 더해야 최고의 맛으로 승화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홍탁’이 좋은 이유는 삭힌 홍어를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중화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통 썩은 식품을 먹으면 탈이 나지만 삭힌 홍어는 효소가 요소를 분해하기 때문에 먹어도 괜찮다. 삭힌 홍어의 톡 쏘는 맛과 특유의 향기 역시 요소가 발효되면서 암모니아가 생성되기 때문인데 암모니아는 위산을 중화시키고 장 속의 잡균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막걸리를 함께 마시면 막걸리의 유기산이 암모니아의 지나친 자극을 중화시킨다고 하니 주당들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홍탁 만세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