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 누구나 쓸 수 있다>
오봉옥 (시인)
제2강 서정시란 무엇인가
▲ 서정과 정서의 정의
① 抒情
抒(펼 서) : 뜻을 펴나간다.
情(뜻 정) : 정서
→ 抒情 : 정서를 펴나간다./ 정서를 그려낸다.
② 情緖
情(뜻 정) : 감정 혹은 느낌
緖(실마리 서) : 실마리
→ 情緖 : 감정의 실마리를 푼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여러 가지 감정과 느낌을 푼다.
③ 抒情詩의 정의(사전상의 다양한 의미 정리)
ㄱ. 객관적 현실에 의해 환기된 자신의 사상 감정을 정서적으로 노래하는 것
ㄴ.서사시, 극시와 달리 주관적이며 관조적 수법으로 자기 내부의 감정을 운율적으로 나타낸 시
ㄷ. 개인의 감정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한 시
▲ 서정이 발생하는 지점
객관적 현실에 의해 환기된 자신의 사상, 감정이 생기는 순간
예1>
늬 아빈 논둑 밭둑 그 어디에서도
술에만 젖은 사람이었어
그것도 거친 손으로 온 집안을 뱅뱅 돌다가
농약병이나 치켜들 주정꾼이었지
나야 뒈져라 콱 뒈져라 한다지만
뒤주 우에 놓인 농약병은 언제나 무서웠어.
-오봉옥 「술」전문
→ 어릴 적 시인의 아버지에 관한 기억의 단상,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감정을 통해 시로 나타냄. 어머니의 처지와 입장에서 위의 시를 지음. 즉, 어머니를 화자로 하여 시인의 어린 시절 감상을 드러낸 작품.
예2> 밤새 이놈으 저년으 하고 쌈박질하다가
살을 섞는다.
깨진 살림살이 곁 지친 잠에 떨어진 딸년도 밀어놓고
단칸 셋방에 눈물로 눈물로만 누워
전설같이 살을 섞는다
-오봉옥 <살다가> 전문
→ 시인이 수배중이던 시절에 완성된 작품. 힘든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 미안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내와 함께 살을 섞으며 들던 감정.
그 옛날 시인의 부모님의 사랑법, 더 나아가 민중의 사랑법에 관한 아련함과 그리움으로 이어짐.
▲ 서정시는 형상사유에 의해 쓰여진다.
개념사유과 형상사유
ㆍ개념사유
→ 개념적이고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 (예-신문 등을 통해 습득)
ㆍ형상사유
→ 삶의 모습을 형상적으로 파악하고, 고민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
현실 생활을 형상적으로 파악하고, 형상적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현실을 감성적, 정서적으로 체험하고, 그 정서적 느낌으로 본질까지 가 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 밭두렁에서 쉬던 쓸쓸한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빛은 풍요로 가득 차 있다.
(객관적 현실을 포착)
할머니의 흙빛 얼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햇빛과 바람에 그을리며 노동한 자의 얼굴.
그렇다면, 할머니의 풍요로운 눈빛은?
↓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한 마지기 남짓의 논, 자신의 온전한 노동으로 일군 그 땅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 혹은 자신의 땅이 아니기에 쓸쓸해 보일 수도 있을 것.
↓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민중과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형상사유까지 이른다.
참고> 위의 예에서 개념사유란?
→ 농촌의 노동자의 현실, 노인소외의 현실 등에 관한 서적, 자료 등에 바탕으로 한 내용들.
이러한 형상사유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마음으로 가지고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즉, 위에서 말한 할머니의 내면에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 서정시를 쓸 때에 주의할 점
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안에 살아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이다.
글감이란 외부에서 발견되는 것이라 내 안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자기 체험 속에서 그 체험에서 느꼈던 중요한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
예> 너를 만나고 싶다/ 북녘의 노동자여/ 마땅히 내 형제인 노동자여// 거긴 노동자 세상이라던데/ 거기에도/ 잔업철야 따오라고 반장을 조르는/ 기막힌 삶이 있는지/ 월급봉투 받으면 방세 걱정이 앞서고/ 밤늦게 일마치고 돌아가는 길/ 천지에 가득한 불빛들 속에/ 어찌 내 집 한 칸이 없는지 서글퍼지는/ 그런 나날이 있는지 묻고 싶다.
- 부천노동자문학회 <너를 만나고 싶다> 중에서
→ 90년대 초반에 무슨 문학상을 받은 작품임. 이 시를 뽑은 이유는 관념적이 않기 때문이다. 통일시 하면 의례히 동원되는 단어들이 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진달래꽃이 어떻고, 삼팔선이 어떻고, 두 동강 난 조국강산이 어떻고 하는 식.
그런데 이 시는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통일을 생각하는 미덕이 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이다. 자기 안에 체현시키며 자시 안의 것을 토해내어야 한다.
②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이란 너무도 진실하여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뜻함.
진정성을 얻을 때 비로소 독자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진정성이란 자기를 드러낼 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 이 시는 196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처럼 서정 위주의 시 사조가 만연하던 시기에 ‘왕궁의 음탕함’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설렁탕집 주인을 욕하고 있는 옹졸하고 ‘먼지 같은’ 자신을 그대로 나타내는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전통적 서정을 노래하기에 급급한 시기)에 소시민적 자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③ 사실의 일탈과 실감
시의 진정성은 과장에서, 사실의 일탈에서 오기도 한다. 문제는 생동감. 실감이다.
문학은 논리가 아닌 사리事理-삶의 실감-이다.
예> 전 이름이 없어요/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 되거든요/ 너를 무어라 부를까/ 전 행복해요/ 제 이름은 기쁨이에요/ 달콤한 기쁨이 너에게 내리기를// 어여쁜 기쁨/ 이틀밖에 되지 않은 달콤한 기쁨/ 나는 너를 달콤한 기쁨이라 부르마/ 너는 미소짓는다/ 그 사이 나는 노래한다/ 달콤한 기쁨이 나에게 내리기를
-윌리엄 블레이크 <갓난이의 기쁨> 전문
→ 갓난아기가 미소를 지으려면 생후 2주일은 지나야 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생후 이틀 만에 “전 이름이 없어요.” 라고 말하고 미소 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장과 현실의 일탈을 통해 이 시는 아이의 탄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결이 잘 드러나 있다.
즉 아이와 교감을 이루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과장을 불러온 것이다.
④ 정서적 색채가 뚜렷해야 한다.
예>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도 행복하기 때문에 님이 떠나가 버릴 것을 염려한다.
행복할 때 불행을 염려하고, 기쁘니까 슬픔을 염려하고, 즐거우니까 괴로움을 염려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임. 이렇듯 정서적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시는 보편적 감정에 닿게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애틋한 마음결이 정서적 색깔로 잘 드러나고 있으니 좋은 시이다.
⑤ 좋은 글감의 출발
좋은 글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감동을 접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하라. 생활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서 출발하라. 시적 감흥을 일으킨 대상을 잘 파고들면 의미 있는 글감이 발견된다. 겉으로만 지나가서는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⑥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하자.
남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쓰지 말고, 그럴 겨를도 없이 자신에게 충실하면, 그 향기를 독자는 느끼게 된다.
▲ 오늘의 갈무리
자신의 이야기를 써라!
사실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추구해라!
정서적 색깔이 분명해야 감동으로 밀려올 것이다!
좋은 글감은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해라!
남에게 보여준다는 의식을 없애고 써라!
☆ 지난 과제 점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우리말 10개 쓰기“
→종이에 이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보세요. 그리고 이 단어에 따르는 수많은 형상을 써 보십시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단어에 따라 떠오르는 형상에 따라 시를 쓴다면 수많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과제
“나는 왜 시를 쓰려고 하는가?”
→ 시를 쓰려는 이유, 문학의 장르 가운데 시를 택한 이유 등에 대해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