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님이 독도사진을 올리신게 계기가 되어 새삼스럽개 독도시절이 회상되어 제 가
군복무시 근무하였던 독도에서의 생활을 지난 2001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의 회원으로서 독도수호대 홈페이지(www.tokdo.co.kr)에 올린 글을 우리 안고동기회 자유게시판에 옮겨 실습니다. 당시 총들고 근무하던 사진도 있는데 컴퓨터 실력이 부족하여 수기만 올립니다.
두서없는글이라 양해 바랍니다.
<독도의 추억>
독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인다.
나의 꽃같은 청춘시절 한 때 나마 지내 왔던 곳, 지금도 눈감으면 망망대해의 외로운섬
독도!(동도,서도, 그리고 이름 모를 작은 바위섬들..) 전경이 뇌리에 선명하다.
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 영토의
막내여! 과거와 현재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우리의 영토로서 영원하여라!!
<근무배치>
저는 전투경찰
29기로 1976년 입대하여 울릉경찰서로 근무명령 받아 해안초소 경계근무 중 1977년 부터 전투경찰 병력으로 독도근무 배치한다는 방침에 의해
1977년 6월 독도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해경정(200톤급)에 몸을 싣고 임지로 떠나던 한 밤 중 취침시간 이었지만 한숨도
자지못했답니다.
나에게 다가올 우리의 독도 생각에 대원들 모두가 갑판으로 나와 칠흑같은 바다만 쳐다 보았답니다.
먼동이 틀 무렵,
누군가 '독도다! 독도가 보인다!' 외치는 소리에 우리는 우르르 갑판으로 나가 독도를 맞이 했답니다.
떠오르는 태양 사이로 웅장하게
떠있는 우리의 영토,독도는 그렇게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드디어 상륙,조그만 LST(당시에는 선착장이 없었슴)로 옮겨타고 상륙하니 기존
경비대원들께서 반겨 주었지요.
식량과 탄약등을 하선한뒤 기존 대원들은 철수하고 저희 들이 독도 경비인계를 받았습니다.
아!
이제부터 내가 이땅을 지켜야 하는구나! 대원들의 눈빛이 결의에 빛났고 우리는 상륙물품들을 지고 등산을 시작 했습니다.
대구 달성공원만한
면적에 해발 170미터 고지 70도의 경사도를 올라가는 조그마한 오솔길 낭떠러지 길을 끼고 부식품을 지고 올라가는 일은 독도 근무가 결코 만만치
않게 느껴졌지요.
반나절 걸린 물품 운반끝에 우리는 근무명령 하달과 무전기 점검등 일상 업무에 들어가면서 먼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전임대원들의 비석에 묵념을 올리고 경계근무에 임하였답니다.
<에피소드>
(1) 1977년
7월 일본의 후쿠다 수상은 일본의회 답변에서 '죽도는 엄연한 일본의 영토임에도 한국에서 병력을 상주시켜 불법점거 하고 있으므로 국제법에 의거
한국정부에 엄중히 항의 하겠다'라고 망발을 늘어 놓았다.
TV나 전기시설 없이 유일하게 라디오로만 이 소식을 들은 대원들은 흥분 하였고
저마다 전문가인양 즉석 토론회가 열렸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가 어떻게 저희 땅 인가?'
결론은 이렇게
모아졌고 우리는 더욱더 영토수호에 충실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로부터 일본어선들의 고의영해 침범은 빈번해지고 우리의 침범격퇴 임무는 매일
반복 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대원들의 거듭된 경고 방송에도 불구하고 일본 새우어선들이 독도 근해에서 닻을 내리고 선상에서
노래를 부르고 회식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조그만 독도경비정 으로는 추격하기에는 일본어선들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따라가기에는 역부족 이었고
국력의 차이를 실감하였다.
이에 흥분한 어느 대원은 총기를 꺼내 사격자세를 취하였고 나머지 대원들도 사격 자세에 들어 갔으나 상부의
명령은 사격금지 였다(일본은 적성국가가 아니므로 총기사용은 금지 됨)
우리를 비웃던 일본어선의 퇴치를 위해 공군전투기의 지원을 요청
하였고 잠시 후 우리 공군 팬텀기 조종사의 무전안내가 들려왔다.
'ROK air force 1501 here, Open all of
windows in Charlie!(여기는 대한민국 공군기 1501호, 독도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라!)
아! 음속을 돌파 하겠다는
말이구나! 모든 상륙대원들은 창고,내무반 창문들을 열었고 일제히 귀를 막고 일본 어선들을 주시 하였다.
쾅!!콰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우리의 공군기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일본배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유리창이 깨지고 깃발이 찢껴나가고 회식하던 술상이 엎어지고... 그렇게
일본 어선 선단은 물러갔고 사격을 할 수 없는 현 실정에서 음속돌파로서 일본어선들을 퇴치한 우리의 전투기 조종사님께 지금도 감사 드린다.
(2) 어느 날 KBS 취재단이 상륙 하였다.
위문품으로 흑백 TV 한 대와 함께(당시에는 발전 시설이 없어
TV시청은 불가 하였음) 우리의 해안근무 촬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취재기자가 대원들에게 이름없는 주변바위들의 명칭이 무었이냐고 물었다.
'촛대바위, 권총바위, 독립문, 넙적바위 ... 등등
내 마음대로 지어버린 이름들이 독도근무 후 육지에서 신문기사로 난 것을
보았을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도 그 때 그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3) 어느 대원에게 편지가 왔다...
자그만치 37통.. 이틀에 한 번꼴로 쓴 편지가 2개월 만에 인근 조업하는 어선편으로 도착한 것이다.(당시에는 Internet이 없어
E-mail은 상상도 못했음)
그 대원 애인으로 부터 온 편지인데 개인의 privacy를 무시하고 우리 모두 읽어 보며 화제를 삼았다.
그때 그 대원은 그 당시 애인과 결혼 하여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애로사항>
제일 큰
문제가 물 부족이다. 당시에는 생수가 없어 빗물로 식수를 사용 하였는데 물탱크를 열어보면 지렁이가 가득하다,
그나마 웅장한(?)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물탱크에서 20리터 물통 2개로 취사와 설걷이를 모두 해결해야 하니 목욕할 엄두를 내지못하고 소나기 내리는 날이 목욕하는 날인데
소나기가 목욕 중 그쳐버리면 낭패를 본다.
물론 서도에 물골이 있으나 소금기가 많아 빨래가 잘 안되고 동도와 떨어져 있어 파도가 높은날은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음은 외로움 이다.
매일 보는 망망대해 에 외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반복생활, 한창 젊은 나이에
겪는 외로움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며 특히 독도에서 맞이 하는 명절날은 하루가 괴롭다.
세번째가 안전사고인데 야간근무
중 조명시설 없는 낭떠러지 길은 위험천만이며 내가 근무한뒤 순직자가 4명이나 더 발생하였다니 참으로 애석하다.
영토 수호 임무중 순직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현재 근무중인 후배대원들의 안전을 당부 드린다.
후기 : 저의 두서없는 글이 문맥이나 맞을런지
부끄러울 뿐이며 다만 독도 수호의 일념으로 올린 글이 오니 양해 바랍니다.
첫댓글너무 실감나는 수기 ~ 제가 돋도에서 겪은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에피소드 글중에` 공군 팬텀기 조종사의 무전 'ROK air force 1501 here, Open all of windows in Charlie!" 라는 말이 영화속에 나 듣고 했는데~실제 상황이었네요~ 그시절에 군복무하기는 분들 거의 열악한 환경이었지요~잘은 모르지만...
교육장 자제분의 이력이 화려하구먼. 부친의 교육청 인사 발령으로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고, LA에서 수년간 살았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군복무를 독도에서 했었어라? 쌍칠년도 독도서 봉사하느라 고생 많았네. 술이 그득이 취해 정신 없지 싶은데도 악보없이 교가를 피아노로 치는 무한히 잠재된 저력들의 한 단면......
첫댓글 너무 실감나는 수기 ~ 제가 돋도에서 겪은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에피소드 글중에` 공군 팬텀기 조종사의 무전 'ROK air force 1501 here, Open all of windows in Charlie!" 라는 말이 영화속에 나 듣고 했는데~실제 상황이었네요~ 그시절에 군복무하기는 분들 거의 열악한 환경이었지요~잘은 모르지만...
사진올리는 방법 설명 해드렸는데~~ 기한님 사진도 있나 (www.tokdo.co.kr)에 가서 보고 제가 가져 올릴까요?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사진은 독도수호대 홈피 회원자유게시판 no.1238(독도수기와 추억의 사진)입 니다만 회원만 접근이 허용되서 어떡하나....
애고~왠지 글을 못찿겠더라니.. 그라믄 회원도 아니되고 할수 없네예~ 아래 독도 사진글에서 가르켜 드린대로 그림위에 마우스 오른쪽 눌르면, 등록정보 박스 떠요 맨 아래 속성(R)클릭 하고, 주소(URL) 복사 해서 글 수정에 붙여 넣기 하고
영어 주소 http:// 앞에<img src= 쓰고, 주소맨끝에 >로 닫아주고 ⊙html 태그 콕 찍구요 그림이 뜨는걸로 알고 있거든요~
김기한 오랫만에 들어와서 쓴 좋은글 잘 봤다.... 한국 공군기의 기개도 멋있었고 마침 우리 아들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하고 조종사 시작할거니까 특히 독도 잘 지키고 일본놈 배만 나타나면 음속 돌파하라고 지침을 내려야겟구나 ㅋ ㅋㅋ
성만아 ! 아들공사졸업 축하한데이 ! 똑같이 했는데 했는데 아들이 벌써졸업하나? 그라고 일본놈배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말고 먼저 섬나라를 점령해뿌라고 지침을 내려라. 나 그 섬나라가서 총독이나 해야겠다 !
자네 고생이 오늘날 독도가 건재하구나. 감사한데이.
우린 결코 남의 것을 탐내진 않죠...다만 내것이기에 꿋꿋이 지켜야 하는것을....님의 독도경비 수기를 읽고 더 많은 독도 사랑을 느낍니다....
요기가 제자리인것 같아 옮겼다. 그때 태극기를 잘 꽂아 두었으면 이런일이 없었을 텐데..... 다시가서 꼽아.....
애국지사가 여기숨어 있었네 고생 많았다 왜놈이 저들의땅이라고 웃기는소리하니......
자넨 별걸 다 해 봤구만... 지금 하는 사업도 그렇고....인생의 깊이가 보이질 않네....
한편의 첩보 영화를 보는 느낍입니다. 가끔 기획물로 독도를 보다가 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현실로 느껴집니다. 근데 지금은 그때보다 모든 근무여건이 개선 되었겠지만 일본의 망발과 만행이 언제쯤 끝이 날련지...우리나라도 강국이기를 소망해봅니다.
교육장 자제분의 이력이 화려하구먼. 부친의 교육청 인사 발령으로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고, LA에서 수년간 살았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군복무를 독도에서 했었어라? 쌍칠년도 독도서 봉사하느라 고생 많았네. 술이 그득이 취해 정신 없지 싶은데도 악보없이 교가를 피아노로 치는 무한히 잠재된 저력들의 한 단면......
권 교감 과찬의 말씀에 몸 둘바를 모르겠네. 그리고 오수 교감 승진을 다시한번 축하드리네
쪽빠리노무시끼들-
기마노님! 전 이름과 글이 모두 일어인지 알고 한참 해석하였답니다. 웃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