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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안에 일어난 갈등의 문제와 또 그로 인해서 일곱 집사를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는 한 단계 앞으로 전진하게 되었고 교회는 더 단단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면서 그 문제를 풀어나가면 더 좋은 날이 오게 됩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 어려움이 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좋은 일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예루살렘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크리찬 사이에 갈등이 생긴 거예요. 예수 안 믿는 히브리인들이 아니라 예수 안 믿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초대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히브리파와 헬라파 유대인 크리스찬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의 네 분이에요. 오늘 1절에 보면 그때의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짐으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원망 하는 서로를 원망하는 그런 갈등이 생기게 됐어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작을 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응하면서 또 가족의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해 나가면 내부 결속도 되고 조직도 업그레이드 되는 법이에요. 그것을 잘 해결하면 여러분 부부 간에도 싸우고 난 다음에 더 화해하면 더 가까워지는 거예요. 비 온 다음에 땅이 굳어진다고 그러잖아요. 그게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문제는 한 단계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뛰어 올라가게 하는 디딤돌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올 때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돼요. 뭐 이런 게 나한테 왔나 우리 가정에 이런 게 왔나 우리 교회에 왜 이런 어려움이 오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올 것이 왔구나 내가 이것을 딛고 한 단계 올라가야 되겠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날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줄로 믿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는 이 갈등,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크리찬들 사이에 이 갈등 사실 초대교회의 최초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교회가 큰 내분에 휩싸여서 이게 갈라질지도 모르는 큰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원인은 뭐냐 하면 구제 문제예요. 구제라는 게 뭐예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떤 걸 조금 나눠주는 겁니다. 지금 무슨 큰 신학적인 문제로 갈등을 빚은 것도 아니고 뭐 어떤 엄청난 이슈가 있어서 그 문제를 놓고 지금 갈등이 일어난 게 아니고 갈등이라는 게 너무 웃기는 거예요. 교회에서 과부들에게 나누어주는 구제에 누구는 받고 누구는 빠졌다.
얼마나 유치합니까? 여러분 얼마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요. 바로 얼마 전에 성령이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셨어요. 세상이 뒤집어졌어요. 메시아를 만난 거예요. 구원을 경험한 거예요. 율법을 초월하는 새로운 은혜의 시대를 만난 거예요. 그래서 내 생명을 주님께라도 바칠 것 같은 헌신이 있었어요. 어떤 이는 자기의 천재산을 하나님 앞에 내놨어요.조금 전에는 또 아나니아 삽비라와 같은 사건도 일어났어요.
막 기적이 일어나요. 엄청난 일이 일어나 이 정도면 우리가 절대로 시험 안 들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까지 갈 것 같은데 아 이 사소한 문제 먹는 문제입니다. 이게 몇 그릇 받았느냐 못 받았냐 교회에서 선물 조금 받았냐 못 받았냐 그 아주 유치한 문제로 지금 교회는 시험에 빠진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넘어지고 시험에 빠지고 공동체가 흔들릴 때 아주 중요한 이슈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러면 좀 뭐 명분이라도 있는데 대개가 뭐냐 하면 서운하다 섭섭하다 죄는 인정받고 나는 인정받지 못한다 뭐 이런 아주 작은 유치한 문제가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는 거 초대교회가 그랬어 예루살렘 교회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의 이상이에요.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처럼 돼야 된다.
근데 이건 안 되는 거예요. 너무 유치한 문제로 지금 이 예루살렘교회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나왔냐 지금 여기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고 헬라파 유대인이 있는데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고국을 지킨 사람들이에요. 다시 말하면 해외로 나가보지 못한 거예요. 그 안에서만 살았어요. 그런 면에서 아주 본토백이죠.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문제는 헬라파보다 세계관이 좁고 본 게 없으니까 그냥 자기들끼리만 살았으니까 배타적입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어요. 세계관이 좋고 배타적이다.
저는 어렸을 때 이걸 경험했어요. 우리 제 고향 얘기를 자꾸 해서 죄송한데 저희는 진짜 시골이에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버스가 들어왔어요. 하루에 두 번 그러니까 굉장히 시골입니다. 근데 제가 초등학교 때 저희 이제 여름이 되면 그 동네 사람들 중에 서울에 사는 친척을 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이제 연초가 되면 달력도 보내 와. 그래서 서울 아가씨가 그려져 있는 달력 다 보면 너무너무 신기한 거야. 저런 세상이 있나. 그런데 서울에서 누가 이제 방학 때 친척집에 내려와가지고 서울말을 쓰면 그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그러시오 안 그러시오 그러는 세상에 네 이렇게 대답하면요. 너무 막 다른 나라 방언 같고 신기하면서도 배타적입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그런 사람이 잠깐 왔을 때는 우리가 막 이렇게 하다가도 그런 말투를 쓰는 애가 전학을 왔다든가 그럼 완전히 왕따되는 거예요. 어쭈구리 서울말 쓰네 이러면 걔는 이제 인생 꽝 되는 거예요.
근데 저희 친구 중에 구 이건 방송 나가니까 이름을 다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일부에는 불렀어요. 구아무개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자기 그 아버지가 선생님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강을 건너면 전라북도 군산이 나오는데 그 군산에서 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이제 고향으로 온 거예요? 와서 저희 학교를 왔는데 얘가 서울에서 좀 살았는지 아니면 군산이 거기는 좀 사투리를 전라도 사투리를 쓴 때인데 얘가 안 써요. 그래가지고 서울말을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학교 내에서 와서 살게 되니까 그때부터 우리 친구들이 구 아무개를 구땡땡을 그만 어째 우리 서울 말 써 그러면서 막 이제 놀리고 왕따시키고 막 그런 것을 저희들이 경험했습니다.
저도 그 부류 중에 하나였던 것을 회개합니다. 어찌 그리까 저 서울 말 쓰는 게 너무 얼마나 유치합니까? 그죠? 그러니까 그 동네만 살던 사람은 다른 문화권의 그것을 인정을 못하는 거예요.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해외 생활하다가 국내에 들어가면 막 금이 환양 해가지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막 반길 것 같지만 해외 생활 오러이 하다 들어가면 오히려 왕따 당할 수도 있어요. 그 내부에만 계셨던 분들에게 의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이질적이니까 이때는 오죽했겠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백리 밖을 못 벗어나고 죽는 시대인데 지금 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그냥 자기 동네 바로 옆동네 정도 살다가 죽는 정도 사람이고 다행히 초대교회는 저 북쪽에 있는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와서 구성원을 이루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데 이 사람들도 국경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그러니까 배타적인 겁니다.
그때 이제 초대교회는 사실 이분들 중심으로 시작이 된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전도가 돼가지고 어떤 사람들이 들어왔느냐 히브리 헬라파 유대인들이 들어왔어요. 헬라파 유대인들은 저와 여러분처럼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에요. 바벨론 포로 때 또 여러 가지 일로 인해서 해외에 나갔다가 못 돌아오고 해외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지금 왜 여기 와 있느냐 이 사람들이 해외에 살면서 여러분 해외 생활을 하는 게 좋은 건 하나는 강인해집니다.
산전수전은 해외에서 경험하는 거예요. 국내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말 안 통하고 그게 제일 어렵잖아요. 그런 해외에 나와서 살아남는다는 자체가 엄청난 일이거든 여기서 공부까지 한다 굉장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 해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막 의지를 가지고 나왔고 대개 또 해외에 나온 사람들이 나와서도 강해지지만 원래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또 해외에 나올 때는 근성이 있고 그렇죠 좀 안 좋게 말하면 성질이 좀 안 좋은 사람들 이게 깡따구가 있고 버티는 사람들이 나와서 해외에서 버티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돈도 잘 벌고 성공을 해. 그래서 성공을 하니까 귀소 본능이 있어가지고 이제 고국에 들어가 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들어온 사람들이 그리스파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누가 많이 하겠어요? 헬라파 가난한 히브리파 사람들은 헌금을 못 하고 근데 헌금을 많이 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봉사도 많이 하는 거예요. 열정적이니까.
그런데 이제 구제 율법을 따라 또 초대교회도 구제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구제를 과부들 생활을 할 수 없는 과부들에게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히브리파 과부들은 구제를 받는데 헬라파 과부들은 구제에서 제외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해를 했어요. 착각이 있었겠지. 근데 자꾸 제외되는 게 왜 그랬을까 의문이 생기는 거죠. 아마 여러 가지를 해석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도 세력은 예수님의 사도들이에요. 그러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입니다. 12 제자가 다 그런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 저 사람들은 헌금도 많이 하고 가진 것도 많으니까 뭘 도와줄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 헌금 많이 하고 가지고 있는 거 많은 사람도 선물에서 빠지면 상처받고 열받습니다. 그게 사람이에요.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은 사람이 아무리 사도들이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들도 모르게 가까운 이미 친숙해 있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그 과부들에게 구제를 먼저 했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헬라파 구제에서 빠진 헬라파 유대인들 과부들 또 유대인들 사이에 또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 사이에 헌금은 우리가 오고 혜택은 왜 니들이 받느냐 이거 그런 이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공동체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국가 다 마찬가지예요. 불만이 어디서 일어나냐면 불공정 공평하지 않은 대우 그게 불만의 원인이 됩니다. 가족에서 형제들 가운데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유산을 안 주고 그러면 형제 간에 싸움이 일어나는 거 불공평하면 이게 국가나 교회나 인간이 사는 사회는 다 마찬가지예요.
지도자는 제일 좋은 지도자가 뭐냐 공평하게 해줄 수 있는 지도자예요. 사람이기 때문에 손이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어요. 그것을 극복하고 공평하게 그러니까 잘해준다고 좋은 지도자가 아니에요. 어디까지 해줘야 도대체 잘해주는 거야 목사가 교인들에게 어디까지 해줘야 잘해줍니까? 그리고 도대체 몇 명인데 다 잘해줍니까? 그러니까 잘해주려고 하다가 보면 잘 못해주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 거기에 불만이 싹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해주려면 다 잘해주고 차라리 그러지 못할 바에 다 못해주는 게 나아요. 차라리 그러니까 시험들 일은 없어. 나만 못해준 게 아니고 모두에게 못해줘. 저 목사님은 그러면 덜 시험 들어. 근데 누구한테는 지극 정성하는데 나는 소외된단 말이야. 그러면 문제가 생기고 그것이 공동체의 혼란으로 가는 겁니다.
지도자는 공평하게 하는 능력을 가져야 돼.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 공평을 이뤘던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나타났어. 그래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던 이 일부 세력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이게 자칫하면 교회가 교회를 갈라설 수도 있는 거예요.
이게 깊어지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아마 고민에 빠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결국은 해결을 합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 일곱 집사를 뽑은 거예요. 일곱 집사 5절 6절에 보면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르고르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밤에 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콜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람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일곱 집사를 세워서 문제를 한 번에 해결을 했어요. 문제가 오면 제일 고민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리더들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왜 문제에 휩싸여 있는 사람도 힘들지만 제일 큰 책임은 누구냐면 리더가 이 문제를 그냥 놔둬 놔 문제가 발생하도록 상황을 놔둔 것도 책임이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책임이에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이 사도들이 그렇지 않으면 사도들이 리더십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지도자의 능력은 위기 관리 능력입니다. 잘 될 때는요. 이게 훌륭한 지도자인지 아닌지를 몰라요. 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요. 근데 위기가 왔을 때 딱 어떤 긴급한 상황이 왔을 때 그 문제를 돌파하고 딱 해결하면 그 사람은 진짜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상황이 왔을 때 책임 전가 제일 나쁜 지도자의 책임 전가 공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거 자꾸 넘기는 거예요.
또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 책임을 안 지겠다는 거거든요. 빨리 결정을 내려서 그 상황을 돌파하게 해야 되는데 결정을 안 내리고 피하는 거예요.
이런 지도자를 만난 공동체는 그게 국가든지 그게 교회든지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가정의 최고 지도자 아버지가 책임 전가하는 거예요.
또 어떤 중요한 상황에서 결정을 못 내려주는 거예요. 딱 판단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려줘서 돌파하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하는 지도자 그러면 그 공동체는 불행해지고 그다음에 자기들끼리 싸워요. 나중에는 나쁜 지도자입니다. 이런 지도자를 만나면 나중에 그 공동체 회원들은 화병에 걸려 막 나중에는 화가 납니다.
리더는 그런 상황에서 책임을 느끼고 방안을 제시하고 위기를 수습해야 돼요. 그게 모든 리더가 마찬가지인데 제가 이제 어느 날 이 가이드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처음 여기 파리 와가지고 이제 가이드도 하나의 리더입니다. 자기 팀이 왔을 때 딱 그게 40명 60명을 맡아가지고 일정 기간 한 1~2주 동안 이 사람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을 하고 행복한 여행을 하도록 하는 그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근데 그분하고 이제 얘기를 쭉 나누다가 제일 좋은 가이드 훌륭한 가이드가 뭐냐 내가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훌륭한 가이드는 위기 극복 능력이 있어야 된다. 저 한 20년이 넘었는데 그걸 기억해요. 제가 리더는 위기 극복 능력이 있어야 된다. 이 팀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그중에서 저도 이제 가끔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 안내도 해드리고 목회자들이나 이런 분들 해드리면 제일 골치 아픈 분들이 질문 많이 하는 사람 그냥 내가 하는 얘기 듣고 아멘하고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 자꾸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 질문도 그냥 지나가면 저 건물은 무슨 건물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하냐고 저 글씨는 무슨 얘기야? 나도 몰라 한 번도 가서 읽어본 적이 없어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 또 가령 갑자기 호텔이 펑크가 났어요. 그랬을 때 막 우왕좌왕하다가 세느강에서 밤을 새우게 해 그러면 그 사람은 끝나는 거예요. 빨리 잠자리를 만들어내야 돼 이런 위기 관리 능력 질문을 이렇게 던지는데 저도 파리를 와가지고 처음 보니까 너무 신기한 게 많아요.
그런데 시청 옆에 가면 아주 높은 탑이 있습니다. 여러분 보셨어요? 안 본 분들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오늘 가보세요. 공부만 열심히 하느라고 도서관에만 있다 보니까 이 파리에 그런 걸 못 보는 거예요. 근데 처음에 왔는데 너무 신기한 탑이 하나가 있는 거예요. 시청 근처에 높이 있는데 교회 종탑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 가이드 분한테 물어보니까 저게 뭡니까? 그랬더니 저게 옛날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았는데 교회 다 무너지고 폭격받고 남은 종탑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야 이분 정말 실력 있는 분이구나.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말을 감쪽같이 믿었어요. 2차 대전 때 여기는 폭격 맞은 적이 없어. 그러다가 이제 그게 한 10년 10수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 교회 진병철 집사님하고 둘이 시청 앞을 가다가 이게 그 탑이라는데 하면서 둘이 가가지고 거기 표지판을 읽어보니까 이게 그게 아니더라고.
그게 무슨 탑이냐면 생자끄라는 탑이에요. 성지순례 생자끄 어디예요? 포르투칼에 있는 산티하고 콩포스텔라 거기를 가는 순례객들이 생장에서도 출발하지만 북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여기를 반드시 거쳐서 가는 코스라는 거야. 그런 탑인데 아니 2차 대전 때 폭격 맞고 남은 거라고.
근데 이제 지나고 나면 내가 사기를 당했구나 그 생각을 하게 됐지만 그때는 그분의 그 순발력 그때 그거 그거 알 게 뭐예요? 누가 가서 썰을 잘 푸는 거지 순발력 그러고 되게 이 관광객 여행 오시는 분들은 되게 좁니다. 졸고 자기가 뭘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을 못하면 아이고 저 실력 없구나. 그때부터 신뢰 안 해. 근데 뭐 얘기를 해도 기억 못하고 차. 그러니까 이제 그분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하여튼 그렇게 해서라도 위기를 넘긴 거예요.
그랬더니 저 같은 사람도 그 리더에게 신뢰를 주고 그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꼭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닙니다마는 제가 그때 이제 그분 얘기를 가슴에 새겼어요.
리더는 위기 관리 능력을 통해서 자기의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구나. 초대교회 사도들의 리더십이 세워지는 시간이에요. 그들이 이 중요한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단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결단을 내렸냐 첫째는 자기 기득권을 내려놨어요. 어떤 기득권입니까? 구제 돈을 나눠주는 기득권 여러분 잔칫집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 다화방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사람이에요. 직장에서 누가 제일 힘이 세요? 월급 나눠주는 사람이 다 그 사람의 눈치를 봅니다.
지금 초대교회는 이게 한두 명이 아닙니다. 계속 교인들이 몰려오고 헌금을 하면서 재정이 쌓이면서 이제 구제를 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이 사도들을 바라보는 거예요. 힘이 거기로 모이는 거예요. 이 재미가 솔솔한 겁니다. 그런데 그 기득권을 사도들이 내려놓은 거예요. 행정 그리고 이 재정 구제하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겠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영적인 일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겠다. 그렇게 함으로 다 할 수 있지만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내려놓음으로 자기들이 해야 되는 기도와 말씀이라고 하는 더 중요한 일을 더 잘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렇게 함으로 영적으로 깊어지고 그렇게 함으로 이 사도들의 영적 권위가 더 세워진 것입니다. 이 선택과 집중 이 리더십의 원리를 12사도가 초대교회에 발의하게 된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한 일이 뭐냐 하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명을 집사로 세웠어요.
집사라고 하는 것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집을 관리하는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이 7명의 이름을 보면 중요한 특징이 있어요.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디가로르 디몬 바메나 안디옥 사람 니콜라 이 사람들의 이름은 다 히브리적 이름이 아니라 헬라파 이름이에요. 그리스도식 이름이에요. 다시 말하면 영적 권위는 사도들이 가져가지만 모든 행정 교회에 또 중요한 살림을 하는 모든 권위를 헬라파 유대인들을 세워가지고 그들에게 권한을 준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교회가 균형이 딱 맞는 겁니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 거예요. 그렇게 해서 교회는 평화를 되찾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그 축복과 사명을 받고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단계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제 문제를 해결을 했어요. 이렇게 문제를 해결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6~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러분 위기는요. 우리에게 어떤 위기 문제가 와 가정이나 교회나 개인 다 마찬가지예요. 문제가 왔을 때 그 문제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됩니다.
인생도 교회도 가정도 똑같은 문제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인생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문제가 올 때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뭔가를 주시기 위해서 이 일을 허락하셨구나 그러면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근데 대부분은 문제가 오면 그 문제에 의해서 헤매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또 문제를 피하다가 머무르니까 그다음 단계로 못 가는 거예요. 학년이 모두 안 올라가 인생의 학년이 안 올라가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였어요. 똑같은 이 기가 왔지만 이 위기를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사도들의 지혜로 인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자 새로운 단계의 교회가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위기는 기회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왔을 때 절대로 여러분 절망하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보셔야 돼요.
요다음 단계에는 좋은 일이 있다 그리고 오히려 기대하면서 돌파하셔야 됩니다. 또 잘 될 때는요. 잘 될 때 막 부흥이 오고 인생이 잘 풀릴 때는 요다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긴장을 풀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그런 문제가 왔을 때도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을 했더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다. 하나님의 말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어야 돼. 근데 사도들이 다른 행정적인 것을 맡기고 나서 기도와 말씀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말씀이 파워풀해진 거예요. 그 말씀에 영감이 있는 겁니다. 똑같은 말씀을 전해도 기도가 있고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말씀이 파워풀해져요. 파워풀해진다는 얘기는 말씀이 역사 일한다 이거예요. 말씀을 듣는 이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상황을 변화시키고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도 많이 있지만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일을 잘하셔요. 살림을 잘하셔 행정 재정 또 각 부서에서 일을 감당하시는 걸 보면 제가 거의 뭐 그런 부서가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 대개 막 그 부서가 생각나고 그러면 그 부서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사람도 몸이 아프면 이 사람 몸도요. 자꾸 내 이빨이 자꾸 생각나 자는데도 막 그러면 이빨이 아프다는 얘기야 잘 때는 아무 감각이 없어야 돼 있는지 없는지 그게 건강한 몸이거든요. 우리 교회는 여러 부서가 있지만 별로 신경이 안 쓰일 만큼 잘 돌아가요.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그 덕에 우리 목회자들은 기도하는 일, 말씀 준비하는 일, 말씀을 가르치는 일, 성도들을 돌보는 일, 또 글을 쓰는 일 여러 가지 중요한 몇 가지 일에 집중할수록 이게 분업이 잘 되는 겁니다.
그런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이고 그런 교회에 이제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이 코로나 이후에 우리 교회에 우리 교역자들과 우리 우리 집사님들 또 우리 성도님들의 협력을 통해서 이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말씀이 왕성해졌어요. 말씀이 그다음에 어떤 일어났느냐 제자들의 수가 많아져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 믿기 시작하는데 수를 헤아릴 수가 없어 힘이 많아져 이걸 부흥이라고 합니다. 힘이 많아지는 거예요. 우리가 전도해가지고 몇 사람 겨우 데려다 놓는 것은 그냥 전도입니다.
근데 부흥의 시대가 오면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요. 역사상 그런 일이 있어서 초대교회가 그랬어요. 이 부흥의 시대 막 성령 임하시고 부흥의 시대가 오니까 하루에 3천 명 하루에 5천 명이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상상해보세요. 제가 10명만 세례 주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얼마나 쉽지 않습니다. 근데 3천 명 세례 주려면 발이 빠져 정말 12명이 나서서 해도 3천 명 5천 명을 하루에 새해 주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어마어마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걸 부흥이라고 그래요.
이 초대교회가 이 문제를 넘어서자 이런 또 부흥이 오는 거예요. 심이 많아지는 역사 미국에서 제1차 2차 3차 대부흥이 일어나요. 미국 교회에 막 그 사회를 뒤엎는 부흥입니다. 막 도시를 변화시키는 영국에서도 11,900년대 초에 대부흥이 일어나 웨일즈에서 올여름에 또 이제 웨일즈에서 열방 축제를 우리가 하게 되는데 저희도 지금 참여하려고 지금 예약을 해놨는데 여러분들도 많이 참여해서 기도하시면 참 좋습니다.
2주 동안 찬양하고 하루 종일 찬양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열방의 부흥을 위해서. 근데 거기서 사는 거예요. 1900년대 초에 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거기 그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리고 평양에서도 막 부흥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막 열심히 전도해서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면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이 그런 부흥이 일어나요. 초대교회의 이런 부흥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코로나 이후에 이제 코로나 사실 다 끝났습니다. 지금도 막 코로나 겁내하고 하는 사람들은 좀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다 끝났어요. 그 정도는 이제 다 옛날 우리 감기로 감기로도 그 정도 아프고 죽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을 소모시키면 안 돼요.
이제 자신 있게 움직여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코로나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습니까? 근데 이게 우리가 저와 여러분은 생존자예요. 생존자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겁니다. 우리 교회에도 새로운 기회를 주실 거고 우리 인생에 새로운 기회를 주실 거예요.
어떤 사람이 그런 기회를 맞이하느냐 기대하셔야 돼요. 그리고 사모하고 기도하셔야 돼요. 준비하셔야 돼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또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
제사장이 누굽니까? 유대 사회의 권력자들이에요. 최고의 권력 그룹 기득권 세력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단이라고 지금 결정한 이 유대교 유대교인들이 이단이라고 결정한 기독교에 대해서 얼마나 배타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제사장 한두 사람이 온 게 아니고 제사장의 무리가 그냥 와가지고 예수를 믿고 제자가 된 거예요.
이건 엄청난 기적의 상황입니다. 이런 역사가 이 초대교회가 한번 문제를 잘 극복함으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교회나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 없는 곳은 없어요.
우리 가정은 왜 이렇게 문제 있을까?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우리 엄마는 맨날 이렇게 아프실까 우리 아버지는 왜 이렇게 무서울까 우리 집은 왜 시골에 살아가지고 서울 서울 말도 못하고 충청도 그랬슈저래슈 하면서 살을까 다 우리 집만 문제 있는 줄 알았더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다 모든 집안에 문제가 있어 교회마다 문제가 있어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로 우리가 임하느냐 직면해야 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그러고 나면 우리 인생이 한 학년 올라가는 우리 교회도 한 단계 올라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역사 있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