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무슨 생각[관점, 가치관]을 갖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완전히 달라 보이게 됩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의 어느 부분을 만져보고 그 부분이 곧 전체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같이, 또한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빨갛게도 파랗게도 보일 수 있듯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사상(事象, 사물과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특정 부분만을 내세워 주장하게 되면 서로가 내리는 결론도 전혀 다르게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견해나 주장을 접하게 되는 경우 과연 그 견해나 주장이 어떤 관점[평가기준]에서 나온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대립과 갈등을 줄여갈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세상의 모든 견해나 주장은 100%는 결코 불가능하나 몇 %의 진실만은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견해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됩니다. 예컨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할머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의 생각 속에도 반드시 일리(一理, 어떤 면에서 타당성이 있는 이치)가 들어 있을 테니까요.
☞ 수사학(修辭學, 말이나 글을 꾸며 보다 아름답고 짜임새 있게 하는 학문)의 천재라고 하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줄리어스 시저]라는 작품에서 다양한 수사학적 방법들 - 반복법, 열거법, 도치법, 대구법, 문답법, 반어법, 예증법 등 - 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유명한 장군이며 정치가인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BC 100~BC 44)의 살해 사건에 대해 정치적 믿음과 명분을 달리했던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흥미롭습니다. 브루투스는 연설을 통해 시저의 암살 소식에 흥분하여, "이유를 말하라 이유를 말해!"하고 야유를 보내던 로마시민들의 마음을 자기 쪽으로 확실히 돌려놓습니다. 그러나 브루투스에 이어 단상에 오른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끝나자 "브루투스 만세, 만세, 만세!"를 외치던 로마시민들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어 "복수다. 찔러 죽여라! 반역자들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말자!"하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도 어떤 관점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판연히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역사적 사례이지요. 자, 순서대로 감상해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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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여! 동포들이여! 친구들이여! 나의 이유를 들어주시오. 듣기 위해서 조용히 해주시오. 나의 명예를 생각하시고 나를 믿어주시오. 믿기 위해서 나의 명예를 생각해주시오. 여러분은 현명하게 나를 판단해주시오. 현명하게 판단하기 위해 여러분의 지혜를 일깨워주시오.
만일 여러분 중에 시저의 친구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소. 시저에 대한 브루투스의 사랑도 그이의 것만 못하지 않다고. 그러면 왜 브루투스는 시저에게 반기를 들었냐고 묻거든, 이것이 나의 대답이오. 내가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만인이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시저가 살고 만인이 노예의 죽음을 당하는 것을 원하시오?
시저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는 그를 위해 울고, 시저에게 행운이 있었던 만큼 나는 그것을 기뻐하고, 시저가 용감했던 만큼 나는 그를 존경하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던 까닭에 그를 죽인 것이오. 그의 사랑에 대하여는 눈물이 있고, 그의 행운에 대하여는 기쁨이 있고, 그의 용기에 대하여는 존경이 있고, 그의 야심에 대하여는 죽음이 있소.
여러분 중에 노예가 되길 원하는 비굴한 사람이 있소? 있으면 말하시오. 나는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소. 여러분 중에 로마인이 되길 원하지 않는 야만적인 사람이 있소? 있으면 말하시오. 나는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소. 여러분 중에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비열한 사람이 있소? 있으면 말하시오. 나는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소. 나는 이제 말을 멈추고 대답을 기다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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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저의 장례식에 조사(弔辭)를 드리러 왔습니다. 시저는 나의 친구였고, 진실하고 공정했습니다. 그런데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인격이 높으신 분입니다.
시저는 많은 포로들을 로마로 데려왔습니다. 그 배상금을 모두 국고에 넣었습니다. 이것이 시저가 야심가다운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려 울면 시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야심이란 좀 더 냉혹한 마음에서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인격이 높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루페르칼리아 축제 때 내가 세 번씩이나 시저에게 왕관을 바쳤는데도 그가 세 번 다 거절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그런데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확실히 인격이 높으신 분입니다.
나는 브루투스가 한 말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할 따름입니다."
☞ 위 인용문은 『설득의 논리학』(김용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刊)에서 옮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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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 고치기 [무료 심리상담]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 수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