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신기훈(1968년~) 착근할 땅을 찾지 못한 비닐 봉투 속의 감자 두 알, 일용할 양식이 되지 못한 놈들이 땀꾸멍을 막고 살갖을 좁히며 고사(枯死)하는 겨울, 가도 가도 앞을 막는 아스팔트 꿈속에서 소말리아 아이들이 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누이가 책보 속에 우유가루를 받아오기도 하고, 당가리떡*들이 홍수에 떠내려 오기도 했다. 꿈은 늘 지독한 장마 속이었다. 급기야 놈들을 방생하기로 마음먹었다. 녀석들의 배 슬쩍 접시물에 뒤집어 두고 썩거나 말거나 신경을 끄고 산 며칠, 아뿔싸!, 허연 수염발을 달고서 부르르 떨고 있는 놈들. 연이어 선인장처럼 꼿꼿한 잎들을 쏘아 올리며, 젖먹던 힘을 다해 살을 쥐어 짰다. 병신아, 병신아, 죽은 줄 알았지. 팽팽한 베란다의 공기를 뻐금거리며, 울컷 솟아오른 눈부신 싹들의 아가미. *당가리떡: 등겨떡의 경상도 사투리 ■감상: 가난은 겨울을 건너 봄을 맞이할 때 절정을 이룬다. 봄만 되면 보리가 익을 것이고 그때까지만 견디면 보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보릿고개 앞에서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배고픔은 정신력으로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당가리떡(개떡)은 보리로 만든다. 지금은 개떡이 배가 고파 먹는 음식이 아니다. 별미로 찾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 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음식이기에 추억처럼 먹는 사람도 있다. 개떡은 가난했던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였다. 배고픔을 막아주는 또 하나의 작물이 있다면 감자다. 나는 고구마나 감자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좌판에서 계절에 따라 감자를 팔고, 고구마를 팔아 나를 키웠다. 엄마의 고생이 겹쳐져 지금도 감자나 고구마를 보면 속이 뜨거워 손이 가지 않는다.
시인은 감자를 통해 가난을 이야기 한다. 마치 가난이 감자같다. 감자의 모습에서 끈질게 살아남은 민초들을 본다. 죽을 것 같은데 죽지 않고 보란 듯이 살아나 누군가(권력자)를 향해 욕을 한다. ‘봐라 나는 너희들이 죽던지 살던지 방치하더라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고 외친다. 몸 깊숙한 곳에서 한이 서린 목소리로 “병신아, 병신아, 죽은 줄 알았지.” 라고 온 몸으로 말한다.
민초들은 숨쉴 공간을 주지 않는 세상에서도 물고기만 가지고 있는 아가미를 만들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감자처럼 아가미를 만들어 살다 떠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시를 통해 시인이 살려냈다.
| | | ▲ 김희정 |
◇<미룸에서 만난 詩>는 김희정 시인의 안내로 시 한 편 감상하는 코너입니다. 미룸은 미(美) + 룸(Room) =아름다운 방이라는 뜻이 담겨 있고, 순순 우리 말로는 미루다(어떤 일을 미루고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 이런 뜻도 있습니다. 김희정 시인은 2002년 < 충청일보> 신춘문예, 2003년 <시와정신>에 당선돼 문단에 나와 시집으로 <백년이 지나도 소리는 여전하다>, <아고라>,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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