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에 담긴 공동체의 지향점
1. 2025년, 올해는 광복(해방) 80주년이 된다. 광복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정체성이 다시 회복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독립과 광복을 두고 여전히 ‘역사전쟁’이 한참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윤석열 정부는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와의 관계를 문제삼아 홍범도를 비롯한 인물들을 전면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거기에 더해 친일적 행태를 보인 백선엽을 비롯한 인물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추진했고 그러한 일련의 사업을 위하여 친일적이고 극우적인 인물들을 중요한 역사기관의 책임자로 지명했다. 지금 윤석열은 탄핵으로 물러났지만, 역사를 왜곡시킨 인사들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다.
2. 이러한 역사전쟁의 영향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다시 회복시킨 독립운동가들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다른 국가들의 화폐를 통해 분명하게 파악된다. ‘화폐’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적 것들로 디자인된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생국가들의 화폐에 독립영웅들이 새겨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본도 근대화를 추진했던 주요 인물들이 화폐의 주인공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 화폐에는 조선시대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여전히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독립영웅들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홍범도’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승만’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진영에서 강조하는 인물들은 다른 반대 이념진영에서는 비난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현재 남북으로 이념적, 지리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한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인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화폐에는 대한민국 광복과는 전혀 관련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말았다.
3.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국가를 비롯한 어떤 공동체가 추진하고 있는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는 최근 등록한 서울시민대학의 <한국문화사 : 서울건축사를 중심으로>에서 였다. 강사는 화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통해 각각의 공동체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가령 중국이 모택동의 얼굴로 주요 화폐를 도배하였지만, 작은 단위의 화폐에서는 중국 소수민족의 얼굴들이 등장한다. 현재의 중국의 정치구도를 명확히 반영하는 모습인 것이다. ‘건축’ 관련 강의에서 ‘화폐’가 등장한 것은 바로 유로화를 통해 건축과 공동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유럽연합’(EU)은 오랜 기간 동안 유럽 국가들의 협의를 통해 성립된 국가통합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과 같은 거대 국가와의 경쟁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느껴 경제공동체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하나의 정치적, 문화적 공동체로 완성된 것이다.
4. 유럽연합이 결성된 후, 공동의 법과 규칙 그리고 질서가 수립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통의 화폐를 만드는 것이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어떤 것을 유로화 디자인에 반영했을까? 한 나라의 정체성을 담을 수는 없으며, 모든 국가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요소가 되어야 했다. 결국 결정된 것이 유럽의 시대별 건축이었다. 유로화 화폐는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에서부터 시대순으로 유럽 지역에 만들어진 건축물과 다리를 화폐 앞뒤에 배치했다. 특정 지역의 건축물인 것을 배제하기 위하여 다지인도 그 시대의 건축의 특징적 요소를 확대해서 화폐에 담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건축’은 유럽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유로화 앞면 건축물에는 ‘창문’이, 뒷면에는 ‘다리’가 새겨진 것은 유럽연합의 지향점이 ‘개방’과 ‘연결’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5. 건축은 예술이면서도 공학적인 것과의 결합을 통하여 완성되는 통합적인 영역이다. 기술적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변화된 기술과학의 반영이라는 시대적 특징을 많이 담고 있다. 어떤 건축물을 보면 어떤 시대에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특정한 양식을 통해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국가 공동체의 지향점을 보여준 개별 국가의 화폐와 달리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지향점을 구축한 유럽연합이 유로화폐에 건축을 새긴 점은 흥미로웠다. 특정 요소에 대한 집착을 벗어날 때 우리의 다양성과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펼쳐질 것이다. 만약 칸트의 구상대로 세계정부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만들어질 공통화폐에는 어떤 디자인이 들어갈 것인가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생각의 기회를 줄 것이다.
첫댓글 - 공동체가 추진하고 있는 지향점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