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둘레길 탐방 3일째날이다. 회룡역에서 송추계곡까지 목적지를 정하고 아침 9시 30분까지 회룡역에 모이기로 하였다.
나는 시간 계산이다소 착오를 일으키어 10분정도 늦게 도착하니 벌서 송강 인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럭 저럭 빠진 회원들이 많어 우리 3인뿐이란걸 안순간 너무 인원이 적은 숫자라 초라하다는 기분이 서로의 눈빛으로 말하지 않어도 즉시 느낄수 있었다.그러나 이런 초라한 기분도 잠시뿐 조그마한 아클일로된 둘레길이란 표시판을 보는순간 전환된 상쾌한 기분으로 발거름이 산속 숲으로 빨여 들어 가듯이 사뿐 사뿐해진다. 나는 오늘의 대화로 지난번에 나누었던 길상사[사찰] 길상화에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지난번 [2]둘레길탐방 카페[산행후기]에 들어가지못한 분이 혹시 있을가하여 길상화에대한 이야기를 몇자 적어보면 길상화[법명]김영한[본명]은 가정 형편이 좀 어려워 16살에 기생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기생길로 나섰는데 그후 요정을 차리어 큰돈과 재산을갖게 되었을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어 대원각[1000억원 7000평]요정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 하겠다고 하였을때법정 스님은 한마디로 거절 하였으나 지속적인 요청으로 10년후에야 받아드리기로 하였을때 법정 스님은 길상화에게[이렇게 큰 재산을시주하고 나면 아깝지 않겠냐고 물었을때 길상화는 이까짓 재산이야 백석씨의 시 한구절만도 못한걸요 했다고한다.[백석시는 당시 시인으로서 당시 길상화와 극진이 사랑 하는 사이였으나 백석씨의 부친 반대로 결혼을 성사치 못함] 그리고 나서 내가 없는것을 드려야 하는데있는것을 드리는데 별의미가 없읍니다.라고 대답했다고한다. 여러사람 모인 앞에서는 나는 여자로서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불교는 잘모름니다만....이라고 했으며 대원각 8각정[기생이 옷갈아 입는곳]을 맑고 장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종각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였다고한다. 오늘 내가 길상화를 다시 거론하게된것은 왜 갖은 고생을 해서 모은 재산인데 법정스님에게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하나 받고 쾌이 시주 하게 되었을가? 내가 길상화에게 사색에 잠기게 한것은 이때부터다. 내주제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무소유 3글자만 보아도 우리인간이 잠시우주 속에 머물다 가는것이 인생인데그잠시동안 아무리 갖고 있어 보았자 갖고 있지않은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 그대로 놓고 가야 하는데... 그리고 왜 나는 죄가 많은 여자라고 했을가 죄없는 사람이 이세상에어디 있을가마는 길상화는 요정을 하면서 허파에 바람든 남성네들을 얼마나 속된말로 울켜 먹었을가 요리상을 차려 놓고 기생들로 하여금 간을 녹여가며 얼빠진 남성내의 주머니를 털어내어 번돈이 아니 겠는가 기생을 붙여 주는 뚜쟁이짓은 아니했겠나돈은 기생들이 다벌어 놓았는데 자기가 혼자 독식 했기에 그런 큰 돈을 번것이 뻔히 보인다. 팔각정은 기생들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기위한 의상과 몸치장을 하던곳 이런곳을 맑고 장엄한 종소리가 퍼지는 종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것도기생들과 남성내들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사죄하기위한 것이 아니였을가 이런대화를 나누며 사패산 정상 방향으로 계속 오르다가 우측 계곡으로 내려 가게 되었다. 이제 송추계곡으로 향하나보다 생각끝에 마침 반대방향에서 올라오는 니이 많이먹은 등산객에 여기서 송추 계곡이 얼마나 됩니까 물었더니 바로 얼마안가면 됩니다라고 답하여 이제 살았구나 앞은 발목이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다온 기분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 가도 끝이없다. 1시간쯤 내려 갔을때 자동차 다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큰길가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가 오후2시 5시간 산행을 한셈이다. 이제 식당을 찾아야겠어 사방을 둘러 보아도 마땅한 식당이 없어 또한 아래 마을로 내려 오다 보니 눈에익은 가마솥 불고기집이 보여 그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집은 음식 집이기보다 큰 기업체로 보였다. 여종업원이대충 보아도 100여명은 될상싶다. 바닥과 벽체는 이태리 대리석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 놓았고 우리같이 먼지가 더덕더덕 붙은 등산화를 신고 등산복 차림으로 이런집을 찾는다는것이 어울리지 않는상 싶었다.지난번 천진암[성지]에서 멋도 모르고 활개를 치고 내려오다가 괄리인에게 이런 성스러운 성지를 등산복 차림으로 내려오면 되겠느냐고 혼이난일이 생생하게 떠올라 여종업원에게 머리를 숙이며 이런 화려한 식당에 우리같은 등산객이 들어와도 괜찮으냐고웃어가며 물었더니 여종업원도 웃어가며 괜찮고말고요하며 환대한다는상 싶어 보였다. 신을 숭배하는 성지에서는 사람을 차별화하고 다른 손님에게 폐를 끼칠가 우리같이 등산복을한 사람을 꺼려할상 싶은 식당에서는 환하게 웃어가며 받아드리는 모습이 오늘 마지막 아이니컬한 생각으로 차에 몸을 싣고 귀가를 서둘렀다.
첫댓글 학봉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시는 임회장님 의 열정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