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라는 영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세 남자의 하루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회귀를 반복하는 루프물 영화입니다. 동시에 중의적 의미로 극중 강식이 잃은 아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심장의학과 의사로 일하는 준영이 자신의 딸인 은정이 사망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시작됩니다. 어떻게든 과거를 바꾸어 딸이 죽는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준영은 그 과정에서 민철과 강식을 알게 됩니다. 민철은 자신의 아내인 미경을 죽인 강식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강식이 이러한 원한을 품게 된 이유는 돌아갈 수 없는 더 먼 과거인 3년 전에 있었기에 민철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사랑하는 미경을 살리기 위해 애씁니다.
세 남자 중에서도 변요한 배우님이 연기하신 민철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세 남자 중에 가장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입니다. 피가 줄줄 흐를 정도로 자신의 머리를 벽돌로 세게 내리쳐 미경이 안전해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요. 영화가 끝난 뒤 생각에 잠겨보니 세 남자가 각기 자신이 사랑하는 한 생명(혹은 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방식이 그들의 직업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 민철은 앰뷸런스 운전기사입니다. 사이렌을 울리면 모든 차들이 길을 내어주고, 혹여 길을 내주지 않는 차들에게는 어서 길을 터줄 것을 마구 요구해도 되는 직업이지요. 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자신의 뒤에는 항상 생사를 오가는 이들이 누워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병원 응급실을 향해 전속력을 늘 달리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에게 미경을 살리기 위해서 극단적이라 할 지라도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미경에게 연락이 닿도록 하는 건 늘 하던 일과와 비슷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둘째로 준영은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그는 외과의 중에서도 심장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였기 때문에 응급으로 들어오는 환자보다는 주로 사전에 충분히 진찰하고 수술일을 조정하여 대수술을 집도하는 일을 했을 듯 합니다. 심장이라는 신체의 가장 핵심적인 기관을 다루는만큼 그는 늘 신중하고 섬세한 집도를 하는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 나도 곧바로 행동에 옮기기 전의 찰나의 순간이라도 전체적인 청사진을 그려봅니다. 감정적으로 흔들리기보다는 차분한 편입니다만, 하나 뿐인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움직이려 애쓰고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식은 택시 기사입니다. 어떤 손님을 태우고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손님들이 택시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택시 기사인 강식이 의도적으로 특정 손님을 특정 시간에 골라 태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는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3년 전에 영문도 모르는 채 민철이 운전하는 구급차에 치였고, 의식이 남은 상태에서 자신의 아들이 적절한 응급 조치를 받지 못 하는 것을 바라만 봐야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의식을 잃은 사이에 뇌사에 빠져버린 아들은 준영에게 심장 이식 수술까지 당한 상태였지요.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채 살다가 뉴스에 나온 준영의 소식을 듣고 모든 일들을 실행에 옮깁니다.
셋의 직업을 통해서 그들이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자 하는 같은 사연 속에서도 다르게 행동한 이유를 추측해보았습니다. 다만 이 부분이 영화를 관람하는 도중에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 합니다. 러닝 타임 내내 누군가가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인물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생각하긴 어렵더군요. 위의 내용들은 영화를 본 뒤 오랫동안 곱씹으면서 제 나름대로 찾은 이유입니다만, 영화를 관람하는 순간에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왜 그리 저돌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려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면서 감정적 소모가 매우 컸습니다. 처음에는 살리기 위한 싸움이었으나 결국에는 죽이기 위한 싸움을 변해버렸는데,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감정 소모도가 엄청나게 느껴졌고 유혈씬도 많았기에 90분이라는 영화치고는 짧은 러닝타임일지라도 영화 속 인물들과 공감을 이룰수록 더더욱 심신이 힘들어졌습니다.
영화의 끝에서는 은정을 실제로 본 강식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마음에 묻기로 하면서 끝납니다. 이 장면 또한 실제로는 아역 배우(혹은 영화 속에서는 어린이인 캐릭터)가 피가 잔뜩 묻은 강식을 눈 앞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좀 더 간접적이거나 다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아무튼 강식은 자신의 아들인 하루와 또래인,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한 은정을 보고 그 모든 복수심을 접기로 합니다. 사적인 복수를 원인으로 반복되는 어느 날 안에서 여러번 살인을 저지른 것치고는 너무나 금방 해결되어버렸습니다. 강식이 은정을 실제로 보고 준영과 동질감을 느낀 것, 민철 또한 자신의 아이가 곧 태어날 것을 알곤 강식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아이 이름을 하루로 지은 것 등은 휴먼드라마적으로 그릴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죽고 죽이기 위한 싸움이 너무도 길고도 유혈이 낭자했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민철이 나오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사건의 가장 첫 발단이었던 병원의 이름이 “한마음 병원”인 것을 보아 이 곳에서 3년 전에 처음 만난 세 남자는 결국 한마음이 되는 결말일 것을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알고도 그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이 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출적인 면에서 그려지는 부분들이 그럴 뿐, 다시금 생각해보면 배우 분들이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셨기에 제가 더 감정적 피로를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클리셰적인 교훈이지만 역시나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요한 배우님 팬 분들 중에서 간절하고 처절한 캐릭터를 선호하시는 분들이 특히 좋아하실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