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의 호남 기행
-섬진강을 따라서 (13)
하동 고을 팔십리 포구
기개 푸른 선비처럼 맑은 섬진강이 구례의 산천경개에 예의를 표하고, 읍을 벗어난다. 곧, 왼쪽 산자락에 석주관 칠의사묘와 석주관성이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다. 음력 8월 7일, 진주에서 올라온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병이 구례를 집중 공격했다. 구례현감 겸 석주관 만호였던 이원춘은 남원으로 후퇴하고, 왕득인이 의병과 함께 왜와 맞섰으나, 모두 전사했다.
왜의 살인, 방화, 약탈행위는 극에 달했다. 11월 초다. 구례의 20대 젊은 선비들, 화엄사의 승병 153명 등이 의분에 떨쳐 일어섰다.
1598년 봄 의병과 왜병은 석주관성 협곡과 피아골 등지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의병들은 나무를 베고 바윗돌을 옮겨 길목을 차단하고, 기습과 백병전으로 여러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여기 ‘피아골’은 직전마을에서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해 피밭골이었다. 허나 당시 죽은 왜적들의 피가 냇물을 붉게 물들였기에, 생겨난 이름이기도 하다.
피아골은 지리산 반야봉에서 연곡사에 이르는 계곡인데, 이곳은 또 6,25때 동족상잔의 비극이 서린 곳이다. 새봄의 핏빛 진달래, 한 여름의 푸른 숲과 명경처럼 맑은 물, 가을의 오색단풍, 겨울의 설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 칠의사 단비와 영모정은 석주관과 피아골 전투에서 전사한 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 칠의사와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구례현감 이원춘을 기리기 위해 1946년 구례 주민들이 건립했다.
석주관을 지나면 큰 내 하나를 만나는데, 바로 화개천이다. 영호남 교류의 상징, 백제와 신라를 잇는 이곳 남도나루엔 남도대교가 걸리고, 전라도마을 경상도마을 사람들이 만나던 화개장터가 있다.
예전 5일 장날이면 섬진강을 올라온 장삿배가 돛과 닻을 내리고, 남해에서 생산된 해산물들과 내륙에서 생산된 임산물 및 농산물들이 서로 교환되었다.
이곳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십리 벚꽃길인데, 아름다운 풍광에 젖어 걸으면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때인 723년 의상의 제자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 ‘육조혜능의 머리를 삼신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었다. 삼법은 한라산, 금강산 등을 두루 다니며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다가, 마침내 지리산에서 호랑이의 안내로 쌍계사 금당 자리에 이르러 혜능 대사를 모시고 절을 지었다.
이 화개천 상류에 칠불사가 있다. 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800m의 칠불사(하동 화개면 범왕리)는 삼국 시대 초기 낙동강 유역의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모두 성불한 곳이어서 칠불사라 부른다.
이곳 운상원은 ‘구름 위의 집’으로 칠불사 골짜기가 구름바다가 될 때 구름 위로 드러나는 모습, 영지는 허황후가 물에 어린 일곱 왕자 모습을 본 연못, 아자방은 한번 불을 때면 100일이나 따뜻한 온돌방이다. 그리고 또 옥보고가 거문고를 연구했다는 곳이다.
섬진강이 조금 더 내려가면 동쪽으로 툭 트인 들녘이다. 옛 포구인 이곳 평사리는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이다. 또 이곳 평사리에서 산길을 잡아 임도를 오르면 청암면 묵계리, 지리산 품속 깊이 안긴 삼성궁과 청학동이 있다.
그렇게 섬진강이 악양 평사리 들녘을 지나면, 이제 강변은 너른 모래밭과 송림이요, 산기슭은 차밭과 매화천지다. 전남 광양과 섬진교로 이웃하는 하동 송림 모래밭에서 매화 향기에 취하니 노래가 절로다.
‘남산 밑에 남도령아/수산 밑에 숫처녀야/나물 캐러 안갈랑가/나물이사 캐지마는/신도 없고 칼도 없고/남도령 주머닐 터니/한 돈 반이 남았구나~하략’
하동의 민요 ‘청춘가’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22전 22승을 거둔 명장이면 하동의 정기룡(1562~1622)은 육지에서 60전 60승을 거둔 명장이다. 여기 하동 금남면 중평리 경충사에서 정기룡 장군의 영정을 뵐 수 있다. 하동읍 읍내리 섬진강가의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문구의 문학비는 이병주(1921~1992)의 소설 ‘산하’의 문구다. 많은 시와 소설집을 남긴 시인 정공채(1934~2008)도 역시 하동의 인물이다.
섬진강가 펼쳐진 흰 모래밭, 울창한 소나무 숲, 하동은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이다.
‘하동포구 팔십리에 물새가 울고/하동포구 팔십리에 달이 뜹니다/섬호정 빗돌위에 시를 쓰는 사람은/어느 고향 떠나온 풍류낭인고’
하동포구 팔십리를 흥얼거리며 섬진강은 다시 남해를 향해 흐른다.
가야국 7왕자의 설화가 있는 칠불사 들머리
허 왕후가 7왕자의 모습을 지켜 본 영지
구름위의 집 운상원이 있는 칠불사의 여름
여기 아자방은 한 번 불을 때면 백일이나 따뜻하단다
옥보고가 거문고를 연구한 곳이기도 하다
평화롭고 고요한 곳이니 한 여름 피서지다
한동안 속세를 잊을 수 있는 곳이다
첫댓글 하동 고을 팔십리 포구~ 쌍계사,
현직시절, 몇번이나 둘러본 곳이지만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는 지방인것을 몰랐네요.
호남기행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