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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시집 작품해설
자연 친화親和와 순리의 삶
김 석 철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
1.
김진국 시인이 이번 110여 편의 작품을 모아 첫 시집 『세월은 간다』를 상재한다. 문단엔 좀 늦게 들어선 감이 있지만 참신한 시심만은 젊은이 못지않게 충만한 가슴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인은 문인이요 예술가다. 문학이란 상상적 심미적 언어활동을 통해 인간의 체험, 생각, 느낌을 표현하는 예술로서 시, 시조, 수필, 소설, 평론 등 여러 갈래가 있고,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활동으로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러면 시란 무엇인가? 시의 정의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견을 제시하여 그 정답을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양에서는 공자(B.C 552〜479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란 말도 있고, 서양에서는 포오(E⸳A⸳ Poe, 1809〜1849)가 말한 “시는 미美의 운율적 창조다”라든가, 릴케(R⸳M⸳ Rilke, 1875〜1926)의 “시는 체험이다”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시의 정의를 교과서적으로 쉽게 정리한 걸 보면 “시는 우리가 어떤 일을 체험했을 때 그것이 주는 생각이나 느낌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압축 통일하여 나타낸 하나의 창작물을 말하며 이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운문韻文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 시인의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시적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으니 그 하나는 공자의 가르침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장사상老莊思想이며, 그 다음은 이치에 순응하는 순리의 삶이다.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경지를 도덕의 표준으로 하고 허무를 우주의 근원으로 삼는 사상과, 이치에 순응하는 순리의 삶은 여러 작품에서도 여실히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힘들어도 지혜롭게
세상 고르지 못해도 *‘고루지’의 맞춤법을 교정함
생명의 끈은 이어져있다
탓은 내가 하고
보는 것은 네가 본다
연년세세
변하는 것을
살펴보라
곡소리 높이지 말고
하늘을 믿고
땅을 믿고
자신을 믿어라
탓 말아라
속속 깊이 뜻을 알고
숨은 이치를 통달하고 나면
하늘땅도
내 품에 드리우리
가슴을 펴 크게 웃어라
폭풍우 끝은
언제나
언제나 활짝 개인 하늘이
기다리고 있느니라
- 「기다리면」 전문
시는 마음과 영혼에서 솟아나는 청량한 샘물이라고 했다. 김 시인은 ‘출간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남보다 앞서 실천함을 근본으로 삼아서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사람이 되었고, 공자의 가르침인 ‘예’와 ‘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생활의 철칙으로 삼아, 그것이 인생길의 정도임을 깨닫고 실천해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얻었으며 언제나 희망이 담긴 미소 또한 잊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야말로 심신을 수련한 선비다운 생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서만 보더라도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을 지니고서 지혜롭게 대처하며 숨은 이치를 통달하여 ‘자신감’을 갖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 2연에서의 “연년세세/변하는 것”의 의미는 자연의 순리이며 발전의 증거를 말힌 것이다. 자연은 순리에 의해 순환하고 있고, 발전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가 급변하는 현대에 적응해 나가려면 구습의 고정적인 사고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새로운 정신으로 끈기 있게 적극적, 진취적,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김 시인은 ‘기다림’은 무턱대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룰 수 있고 또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지혜롭게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지혜로움은 깊은 사유와 자아성찰의 결과에서 얻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든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오늘이 지나면 새로운 내일이 오는 건 우리가 어쩔 수도 없는 자연의 이치이지만, 자아성찰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성실한 자기수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또 제 3연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속 깊이 뜻을 알고/ 숨은 이치를 통달하고 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꿈이 있는 자에게 희망은 있다고 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가슴을 펴 크게 웃어라”라는 구절에 방점을 찍고 싶다. 김 시인의 그 호기어린 ‘자신감’이 든든하기만 하다.
내 마음 깊이 파고들었네
바람이 열고 간 세월
구름처럼 모두 떠나보내고
아쉬워했던 나날들
못 잊어 깊은 샘이 되었네
가버린 나날 사이에
소리 없이 스쳐간 수많은 사연
둥실둥실 떠나간 구름이 알✔건가 *‘건가’는‘것인가’의 준말이며 띄어쓰기 교정함
요동처간 물이 알✔건가
바다 끝일까 하늘 끝 어딜까
세월이 끝이 있다면
- 「세월이 가는 아쉬움」 전문
“누가 뭐래도 세월은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세월은 우리와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한한 삶을 가지며, 느끼든 못 느끼든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세월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세월이 간다는 것은 죽음으로 다가간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말이다. ‘세월’이란 말 자체가 시간의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아쉬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힘쓰고 애쓰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다. 유한한 인생이기에 세월이 가는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김 시인은 지난 시절에 나름대로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바른 심성으로 충실하게 살아왔음이 여러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제 3연에서 “소리 없이 스쳐간 수많은 사연/ 둥실둥실 떠나간 구름이 알 건가/ 요동쳐간 물이 알 건가”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세월”을 “구름”과 “물”에 비유하여 설의법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보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월이 가는 아쉬움은 이 작품의 결미에서 더욱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을 대상에 투영하여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시적 진술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 가는 소리가
뇌리를 스친다
알송달송한 심정
살포시 열고 나가는
바람 깃 스치는
그 소리 들린다
주름이 한 줄
늘어가는 데
그 사이 물 골✔져 *‘골 지어’의 준말. 맞춤법 띄어쓰기 교정함.
소리 내어 흘러간다
세월의 물 바람 소리가
수평선 닿은 구름 새로
가만히 둥실 떠간다
애꿎게 연륜만 더하니
곧지도 구불지도 않는 선을 남기고
바다 끝 하늘 끝 어디로
끝을 찾아 세월이 간다
- 「세월은 간다」 전문
앞에서도 「세월이 가는 아쉬움」이라는 시를 감상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편의 작품에서 김 시인의 시적 경향을 파악하는데 주요 모티브가 되고 있는 시어 중 하나가 “세월”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사실 “세월”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시간을 아끼며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의미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연聯의 구분이 없는 전련시全聯詩로서 쉬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는 세월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김 시인은 “세월 가는 소리가/ 뇌리를 스친다”라고 시상을 열고 있다. 관념적인 언어인 “세월”에서 청각적 이미지와 역동적 이미지를 뽑아내어, 시상을 점층법의 “바람”, “물”, “구름” 등으로 확대시키며 의도적으로 덧없이 흘러가는 형체로 그려내어 실감을 더해 주해주는 표현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결미에선 “바다 끝 하늘 끝 어디로/ 끝을 찾아 세월이 간다”라고 하여 그 여운이 길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2.
시의 시원始原은 무요舞謠에 두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학계에 있어서 일반적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애초부터 시는 가락이 있는 노래였던 것이다. 시의 특성을 살펴보면 운율의 음악성, 이미지의 회화성, 사상의 의미성, 압축성, 정서성, 예술성 등이 있고, 작중화자가 있는가 하면, 시어와 어조, 율격이 있으며 구성상 행과 연이 있다. 김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다가 보면 고대 중국의 성인이었던 공자와 장자, 노자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우선 공자는 인仁, 의意, 예禮, 충忠을 가르치며 특히 인仁사상을 중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인仁이란 인간 중심 사상으로 진실함과 성실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려는 휴머니즘으로, 끊임없는 자기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또한 장자는 자연을 훼손하는 인위적 행위를 배척하고 인위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 실제로는 유용하다는 가르침이었다. 훗날 장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처세철학을 주장하는 노자와 일체화되어 노장사상을 정립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귀한 인간들아
듣거라
알거라
느껴라
허둥대며
살아가는 것도
즐기며 세상에 응할 줄도
알거라
아무리 가져도
더 많이 있어도
소용은 단순 한 것이야
필요는 생각을 멈추게 할 줄 알아야
한계는 없는 거야
세상이 다 내 것이라도
말이야
끝이 없는 걸
왜 못 느껴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걸
- 「소용대로만」 전문
인간은 사유하며 갖가지 감정 표현을 나타내는 동물이다. 그러기에 고귀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고귀한 인간이란 말을 역설적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는 아름다운 아픔이요 소중한 환희’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기에 시를 쓸 수밖에 없다는 논리와도 상통하는 말이다. 화자는 이 작품애서 어법에 명령형어미를 적용하면서 인간들에게 듣고, 알고, 느끼라고 강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알맞은 분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각자에게 소용되는 분수인 것이다.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켜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하는 게 인간인데 왜 그걸 느끼지 못하고 사는지 한심하다는 것이다. 김 시인의 작품에선 이와 같은 잠언적箴言的 성격의 시를 여러 편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다 항상 명심하고 경계해야 할 격언이랄까, 삶의 지혜와 그것에 비유해서 표현한 교훈적인 작품들이 다수였다. 이 시는 누구나 자신에게 소용되는 분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각성시켜주는 작품이다.
아침에 희망 담아
좋은 말 심어주고
낮에는 즐거움 담아
땀의 보람 안겨주고
저녁에 편안한 휴식
웃음 더해 기쁨 주며
밤마다 칭찬으로
사랑까지 안겨주자
- 「언제나 사랑」 전문
「언제나 사랑」은 항상 희망, 즐거움, 보람, 기쁨, 웃음, 칭찬 등을 마음속에 품고 살면서 ‘사랑’을 지켜가고자 하는 김 시인의 귀한 마음이 표출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사랑’은 세계적 성인으로 추앙받는 예수의 주된 가르침이기도 하다. ‘사랑’은 베푸는 마음이며 포용하는 마음이다. 사실 ‘사랑’은 돈을 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하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흔히 쓰는 말이면서도 대단히 귀중한 말이니 삶의 가장 기초적이요 기본적인 정신의 바탕이 되는 말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를 아껴주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베풀면 베풀수록 샘물처럼 솟아나기 마련이며 베푼 사랑은 더 좋은 사랑이 되어 되돌아오는 게 사랑의 진리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가장 따뜻하고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가 ‘사랑’이 아니겠는가. 김 시인은 언제나 사랑, 언제나 사랑꾼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생사가 생명의 문제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요 확실보다 더 확실한 것이다
생은 곧 사의 약속이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야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생명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요 겪는 것이지만 느끼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란 생과 더불어 한 발 다가가는 길 우주의 이치요 자연의 이치다 * 맞춤법 교정함
누구나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지 어느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길이다
우리 인간도 극히 자연 속에 일부분으로 오래 지탱하고 산다 해도 길게 백년 더 산 다 해도....
짧으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하나가 하나를 더한 것만 생각지 말라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잘 순응하고 적응해도 많은 후생을 남겨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생명은 언제나 사의 길 밖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다만 열심히 살고 후생을 많이 남기는 것만 영원히 사는 길이다
- 「영원히 사는 길」 전문
누구나 태어나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생명은 언제나 죽음의 길 밖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화자는 생은 곧 사의 약속이요 정해진 길인데, 사람들은 무리한 욕망과 이기심으로 인간의 도리에 벗어나는 우매함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우선 당장의 이해관계만 생각하지 말고 자연의 법칙과 이치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자세로 살면서 후생을 많이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시는 삶에 대한 생명적 본질이 화자의 개성적 체험을 통하여 시어로 구상화된 것이다. 언뜻 삶을 통달한 현자의 지혜를 생각하게 한다. 이 시를 읽고 또 읽어 보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깨우침을 준다. 화자의 오랜 사유와 성찰에서 얻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이 작품 역시 잠언적 작품이다. 「영원히 사는 길」은 시인의 역량과 인품을 가늠케 하는 좋은 화두의 작품이다.
3.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다’란 말이 있다. ‘자연’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가 하면 많은 혜택도 주고 있다. 자연 없이 우리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는 일이다. 김 시인은 자연을 좋아하고 즐기면서도 자연을 예사로 여기지 않고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자연을 통해서 인간과 삶의 의미를 부여하여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김 시인의 작품에서 “세월”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 “자연”이라는 시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것이다
무성한 푸른 숲 옥같이 맑은 물 굽이쳐 흐르고
금수들과 더불어 생존하는 환경이 있는
극치 미의 극지극락(極地極樂) 곧 이동이다
여기까지 오기에 만일 이곳이 아니었다면
- 「자연에 묻혀서」 전문
「자연에 묻혀서」에서 김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무성한 푸른 숲이 있고 옥같이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금수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으로 자연 환경에 최고의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무위자연의 노장 사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서정적인 마음을 지닌 사람이며 순수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짧은 6행의 작품이지만 이 시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깊다고 본다. 미국의 시인 포오(E⸳A⸳ Poe, 1809〜1849)는 “단시短詩만이 시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역시 간결하면서도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특히 맨 끝 행에선 “여기까지 오기에 만일 이곳이 아니었다면”이라고 하여 생략법을 씀으로써 보다 좋은 표현의 효과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다면 그냥 설명문이 되고 말 것인데, 생략하고 함축하는 표현법이 시의 묘미라는 걸 실감케 한다.
눈 감으면 앞산이 다가서고
눈 뜨면 뒷산이 품안에 잡혀든다
뜰 밑에 맑은
물소리 노래로 즐기고
비탈진 곳 소나무 숲속은
새들의 낙원이요 이웃이 되었다
지금 이 언덕위에 산새들과 노닐고자
오두막 토담집을 그린다 * 어법 전체 통일(그립니다/존대말이라서 ‘그린다’로 교정함)
흙과 돌 반죽으로 벽 쌓아
나무와 흙 지붕 엮고
골탄 종이 덧씌워 다듬으니
정성이 어디가랴
내 집이 별장일세
고층 빌딩 안 부럽고
여느 부자 부럽지 않다
역시 였구나
부엌 한간 방 하나
신문지 속지 바르고
꽃무늬 겉지로 단장하니
나지막한 집 한 채
아늑한 새 터전일세
인적은 적막해도 밤이 찾으면
창틀에 등잔 켜고
어두움도 함께하고
서책으로 외로움 즐기고
붓 필을 들어 뜻을 이루리라
- 「토담집」 전문
‘토담집’이란 토담만 쌓아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지은 집으로 거푸집을 설치하고 그 속에 돌과 흙을 퍼 넣어 다져서 담을 만들어 지은 집을 말한다. 화자가 자신의 삶을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는 매우 진솔하고 서정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내용상의 구성은 3단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자연환경의 아름다움, 중반부에서는 자연을 이용하여 지은 토담집, 후반부에서는 전원생활에서의 즐거움과 새로운 포부를 밝히고 있다. 눈 감으면 앞산이 다가서고 눈 뜨면 뒷산이 품안에 잡혀드는 산간이 공간적 배경으로, 뜰아래는 맑은 물소리가 노래처럼 들리고 소나무 숲속은 산새들의 낙원인 듯 새들의 노래 소리가 가득한 산속에, 손수 아늑한 토담집을 지어 사는 즐거움이 잘 묘사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경이 아니겠는가. “여느 부자 부럽지 않다”, “아늑한 새 터전 일세” 등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어쩌면 하나의 이미지 지향의 표현 같으면서도 산뜻하고 새로운 시적 표현으로 내용을 풀어 놓는 게 아니라, 절제된 미의식으로 끌어안고 있는 강점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분수에 맞는 토담집을 짓고 살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새로운 포부까지 다짐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화자의 순수한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산은 한마디 말이 없다
무시로 찾아 오르지만
힘들라 즐거우라
여기 보라 저기 보라
내 마음 네 눈길만
산을 즐기고 마음을 닦고
몸을 가꾸게 할 뿐
시원한 바람은 말한다
땀도 피로도 씻어준다고
나뭇가지에 노닐다
사라지는 바람,
그림자조차도
남김없이 떠나버린다
나무 등을 타고
- 「산 ⸳ 4」 전문
‘산’이라는 제목의 직품이 모두 네 편이나 되는 중에서 「산 ⸳ 4」를 골라 보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을 좋아한다. 우리는 바쁜 일과 중에서도 산을 찾는 걸 잊지 않는다. 옛말에도 “군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산을 좋아하고 물을 즐긴다는 말이다. 산행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건 운동도 되지만 정신 수양도 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힐링이 된다. 산을 찾으면 신통하게도 헛된 생각을 말끔히 씻어주는가 하면 상쾌함으로 건강을 북돋워 주기도 한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겨난 산! 자연현상 중에서도 가장 위엄 있게 느껴지는 게 산이다. 수양하는 사람들은 먼저 산을 찾곤 했다. 옛 성현들도 마음이 답답할 땐 산을 찾았으며, 학문이 깊은 스님들도 깊은 산사에서 참선하기를 일상화 한다고 한다. 김 시인은 “산은 한 마디 말이 없다”라고 시상을 열고 있다. 산은 말이 없지만 우리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사실 산에 오르려면 힘이 들지만, 그 힘든 것보다도 산에서 얻는 상쾌함이랄까, 그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여기서 「산」은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산’이 아닌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물’로 해석해 보면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시는 그 어떤 대상이든 시인의 인식에 따라 대상이 다른 대상으로 변용될 수 있고, 또 표현에 있어서도 설명이 아닌 비유와 상징의 창조적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항시 비범한 눈을 가지고 대상을 인식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나간다.
맑은 물은
골짝마다
노래하며 흐르고
솔바람은
가지에서 춤추는데
칡넝쿨 다래넝쿨
서로 엉켜 사는 계곡
억새도 살며시
속삭이며 즐긴다
하늘에서 찾아와
가지에 앉은 파랑새
무어라 지저귀며 말해주는지
귓전에 다시 들으니
그대 목소리
갸우뚱 돌아보며
그 님 생각 더듬다
날아갈까 두렵구나
- 「백운동白雲洞」 전문
이 작품은 “백운동”의 정경을 소재로 하여 구체적 묘사를 중심으로 인과적 구성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첫째 연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려져 있고, 둘째 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에 얽힌 사연이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운동”이라는 명칭의 지명을 가진 곳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한자의 뜻으로 해석해 볼 때 「백운동白雲洞」 이라는 제목이 함유하고 있는 것은, 자연환경을 암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아무튼 그 소재지야 어디든 여기서 화자가 노래한 “백운동”은 어느 산속에 위치한 계곡으로 묘사되고 있다. 골짝마다 맑은 물이 노래하며 흐르고, 솔바람은 가지에서 춤추는데 칡넝쿨, 다래넝쿨 서로 엉켜 사는 계곡이라니 꽤 조용한 산속으로 짐작된다. 화자는 이런 빼어난 정경에 만족하여 지난날의 즐거웠던 추억까지 연상하게 되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4.
시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시의 내용이라는 것은 정신의 내용을 말하지만 이 정신은 무엇이나 다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진眞⸳선善⸳미美의 마음이라야 시의 정신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시의 내용을 대별해 본다면 감정을 주로 한 주정적인 내용과 지성적인 것을 주로 하는 주지적인 내용, 의지적인 것을 주로 하는 주의적인 내용의 시로 나눌 수 있을 것을 것인데, 김 시인의 작품들에선 대부분 이런 시의 내용들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고 있어 독자로서의 마음이 다양한 체험의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은
어두침침하다지만
밝은 마음 갖고 기다려보라
태양은 천지를 밝힐 것이요
희망은 가슴에
피를 끓게 할 것이다
슬픔 속에 삼십 육년을 울었고
설움에 빠져 또 삼년을,
어둠이
저 멀리 과거로 사라진 자리엔
아픔은 남았지만
고행의 틈을 딛고
일어선 임들
새나라 선진의 뚫린 길은
온 국민의 힘 모아
임의 뜻 따르리라
조국의 뿌리 되고 등불이 되어
무궁화 피어나고
하늘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조국의 얼이여 희망이여
찬란한 꽃을 활짝 피우리라
- 「임의 빛과 뜻」 전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어는 사전적 언어와는 좀 다른 문학적 언어를 쓰게 된다. 시어는 주로 중의어, 다의어, 함축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원래 “임”이 의미하는 바는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시상의 내용으로 보아 “독립운동가”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을 의미하는 시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첫 어절 “지금은”이라는 말도 현재를 가리키는 시어 같기도 하지만, 실은 과거 우리나라의 처지가 암담했던 시절을 현재법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임”은 슬픔 속에 일제의 핍박을 받으며 일제 36년을 울었고, 광복을 맞은 이후에도 3년의 세월을 슬픔에 빠져 헤매여야만 했었다. 하지만, 임들은 그 고통을 참고 이겨내며 기어이 일어섰던 것이다. 독립이나 선진국으로서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 나가고 있다. 모두 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훌륭한 선열들과 뜻이 있는 애국자들의 덕택인 것이다. “임의 빛”은 “빛나는 활동”을 함유하는 내포적 시어이기도 하지만, 암울한 시기를 지내고 새로운 천지를 밝히는 “태양의 빛”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상으로 행의 구분은 있지만 연의 구분이 없는 전련시로서 내용상으론 3단구성의 기-서-결로 구분 지을 수 있다고 본다. 선열들의 피로 지킨 조국, 선열의 덕택으로 숱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우리는 이제 찬란한 발전의 꽃을 활짝 피워야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시의 메시지가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리라고 생각해 본다.
여기 임들이 흘린 피
바친 목숨
흘린 눈물
다 바쳐
지킨 조국 강산
한 치의 땅도
버려둘 순 없어
귀하게 생각하여
내 구슬땀으로
임의 뜻에 보답 하고자 하나니
임이시여 기뻐하소서
땀으로 보답하기는
너무 부족 하오나
가진 것 모두 이곳에 담아서
그림자로라도 남아서
높으신 뜻 길이
이 땅 내 조국
지키게 하소서
푸른 꿈 가꾸며
모두 이루게 하소서
- 「백골 농장을 만들면서」 전문
이 작품은 앞의 시 「임의 빛과 뜻」과 내용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이 땅은 선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찾은 곳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바쳐 찾은 조국강산이다. 조국은 우리나라다. 나라 없는 설움을 딛고 조국을 찾기 위해 많은 선열들이 헌신해 온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그 수가 얼마며, 흘린 피눈물이 그 얼마였던가. 임들이 아니었다면 조국은 존재할 수도 없었다. 김 시인은 임의 뜻에 보답하고자 한 치의 땅도 버려둘 수 없어 터를 일구면서 “백골 농장”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백골 농장”의 명칭에 함유된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강렬하다. 우리 국군에 “백골부대”도 있다. 해외 월남까지 파병되었던 용감한 국군들이다. 그 의미가 각별한 이유다. 나라를 위하는 김 시인의 충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김 시인은 겸손함을 잊지 않는다. 그 위대한 임의 뜻에는 감히 못 미칠 일이지만, “이 땅 내 조국/ 지키게 하소서/ 푸른 꿈 가꾸며/ 모두 이루게 하소서”라고 엄숙한 기원을 간절하게 곁들이고 있는 것이다.
벗들과 동해로 관광길에 올랐다
설악을 타고 넘는 차창 밖은
진달래 꽃이불 산야가 초여름의 문턱에서
화려한 그림 폭이 되어 흘러가네
가슴 가득 채워오는 시원한 바람은
모두를 덩실덩실 춤추게 하였지
태백 준령은 동서로 내달리고
힘찬 가운데 산천도 흥에 넘친다
아름다운 묵호항 찾아드니 바다에서 갓 건져다놓은
생선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네
두타산 오르려다 바다부터 찾은 보람을
입속에서 마음껏 즐기게 됐지
술기운에 세월도 잠시 멈춘다
망망대해를 오고가던 배들도
머나먼 항해와 힘든 어로에 지져
여기 항구에서 모두 낮잠이 들었네
행복한 만선의 달콤한 꿈을 꾸며
아~ 오월의 향연이여 즐거움이여
- 「오월의 향연 - 묵호항에서」 전문
이 작품엔 ‘묵호항에서’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내용상으론 2단 구성을 보이고 있다. 전반부는 묵호항 가는 길의 정경을 동적인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고, 후반부엔 묵호항에 당도하여 느끼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다. 오월이면 봄이 무르익는 꽃시절이다. 시원한 날씨도 그렇거니와 만상들이 한창 생동하는 계절, 사계절 중에서도 진달래꽃이 만발한 오월, 화자는 벗들과 함께 동해방면으로 관광길에 오르게 된다. 동서로 뻗은 태백준령을 가로지르며 즐겁게 설악을 타고 넘는 차창 밖은 온통 화려한 꽃이불을 펴놓은 듯 아름답기만 하다. 모두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산천도 흥에 넘친 듯 힘차게 움직이며 역동적 심상으로 활기를 북돋아 주고 있음이 잘 묘사되고 있다. 반면에 묵호항에 도착하여서는 횟집으로 직행한 일행들이 술과 함께 가슴을 적시면서 나들이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오월의 향연, “향연”은 특별히 융숭하게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를 말한다. 「오월의 향연」은 자연의 향연이요 묵호항에서의 향연이다. 오월의 향연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눈물이요
땀이요
허기요
아픔이요
서러움이다
당신도 이 고귀한 것들
먹어 보았나
그 참 뜻
잘 소화했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 「고행의 힘」 전문
“고행(苦行)”이란 말은 주로 불교 용어로 쓰이며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통하여 수행을 쌓는 일”을 일컫는다. 유의어로는 “가시밭길”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이 “고행”이야말로 단맛, 쓴맛의 모든 어려움을 총칭하는 함축적 상징어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 쓰인 “눈물”, “땀”, “허기”, “아픔”, “서러움” 등은 모두 “고행”을 상징하는 시어들이다. 화자는 이 “고행”을 “고귀한 것”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누구든 이 “고행”의 맛을 보고 또 그 참뜻을 소화했다면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일종의 ‘잠언시’라고 하겠다. 잠언시는 앞에서도 몇 편 감상해보았지만, 누구나가 다 항상 명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을 교훈적 가르침으로 다룬 시를 말한다. 옛말에도 “인생은 고해苦海다”라는 격언이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든지 “사람은 고행을 겪은 자만이 삶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되며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의미의 잠언적 작품이다. 간결한 시행으로 시의 특성을 살리고 있으며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가편이다.
여기 무궁화를 심읍시다
반만년 역사를 새기고
겨레의 정신, 숨결 함께 하고 있는
이 땅 삼천리에
남북의 혈맥이 함께 상통할 거룩한
경모의 삶의 터
이 튼튼한 토대에
영원토록
자랑스런 민족사 수놓고 지켜갈
번영의 길에 해와 달이 다하도록
겨레의 정성 모아 무궁화동산
함께 가꿉시다
- 「무궁화동산」 전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다. 미국의 국화는 장미이고 일본의 국화는 벚꽃이다. “무궁화동산”은 무궁화가 많이 피는 동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로서 삼천리강산, 즉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무궁화’ 가 ‘우리나라’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화자는 무궁화를 함께 심고, 또 함께 가꾸자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힘을 보태여 남북의 혈맥이 함께 상통할 거룩한 삶의 터가 바로 무궁화동산이라는 것이다. 겨레의 단합과 정성을 모아 나라의 발전에 다함께 힘쓰자는 청유인 것이다. 빛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탄생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무궁화”는 상징성을 지닌 이름이다. 아욱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2〜4미터이며 잎은 늦게 돋아나고 어긋나며 달걀 모양인데 잎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이 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분홍, 다홍, 보라, 자주, 순백의 종 모양 꽃이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달려 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추위에 강하며 꽃이 피는 기간이 길어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는데 중국, 일본, 인도 등에서도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다 함께 국화인 무궁화를 심고 가꿔나가야 한다.
“여기 무궁화를 심읍시다”, “함께 가꿉시다” 등의 어법을 보면 화자가 독자들에게 함께 행동할 것을 요청하는 청유형 문장으로 쓰이고 있다. 이 청유형은 문장에서 종결어미에 나타나는 시법의 하나로 “〜자”, “〜자구나”, “〜세”, “ 〜읍시다” 따위의 어미가 붙는 꼴을 말하며 이를 청유법 표현이라고 한다. 이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독자의 동의를 구하는 동시에 은근히 단합을 요청하는 힘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5.
김 시인의 작품을 읽다 보니 생활 패턴이나 삶의 방식, 그리고 근원적인 아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마음을 활짝 열어라
서로가 아니라 내가 먼저다
속 시원히 말하라
대화 없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속에서 모두 털어내라
털다 털다보면
막혔던 원한도 쌓인 앙금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네가 아니냐
갈등 네 거기 섯거라
더 머물 곳이 있다면
말해라
주고받는 대화 속에
소리 없이 사라지는 네 이름 갈등
갈등
이제 구름처럼 왔으면
바람처럼 가거라
멀리 멀리
흔적도 없이
- 「갈등」 전문
현대시에 나타나는 주정적 주제에서 대상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데 주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갈등’은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가치 또는 목표에 직면 했을 때 선택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 한다는 뜻으로 고민, 다툼 등의 유의어가 있다. 김 시인은 첫 연에서 솔직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갈등’은 ‘서로’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내가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솔직하게 털어놓다 보면 막혔던 원한도, 쌓인 앙금도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갈등’은 관념적인 단어이지만 관념을 의인화하는 수법을 사용하며 갈등해소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의 갈등은 오는 갈등으로 ‘구름’에 비유하였고, 사라지는 갈등은 ‘바람’에 비유하여 대조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해를 돕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갈등이 있어선 안 된다. 삶의 장애요인이 되는 갈등은 빠른 시간에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갈등해소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서로 다른 극단의 의견이나 가치가 충돌하는 우리 사회에선 갈등을 아우르고 타협점을 찾으며 중립지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발상의 전환도 필요한 것이다. 갈등이 두려워 대화조차 포기한다면 앞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은 절실하게 갈등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남녀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등 크고 작은 갈등의 상황을 수없이 목격하고 느낄 수 있다.
물소리 들으렴
바람소리 즐기렴
새 소리도 즐기렴
가슴을 펴 마음에 새기렴
구름 가는 곳 어디든
마음도 뛰어보렴 *‘미음’의 뜻이 모호하여 ‘마음’으로 교정함
세월을 노래하렴
친구도 함께하렴
자연을 노래하고
세월을 부르고
추위도 더위도
함께 하렴
이 모두 같이 하렴
- 「행복하려면」 전문
“행복”은 복된 좋은 운수를 말함이며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의 상태를 일컫는 말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삶의 가치가 행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화자는 행복하려면 물소리도 듣고, 바람소리, 새 소리도 즐기는 등 이것저것 체험의 과정을 거쳐 보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 모든 걸 체험해 보면 결국 행복의 근원을 알게 된다는 암시일 터이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요, 저절로 굴러오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유추되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 경험 세대들은 잘 알고 있다.
행복의 가치와 유형은 수없이 많다.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요, 권력이나 명예를 가졌다고 꼭 행복한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최고 행복이라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어떤 것이 최고 행복이라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은 창조된다.’는 사실이다. ‘행복 창조!’ 행복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행복은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된다. 내 맘대로 내가 만드는 행복이 ‘행복 창조’다. 그렇다면 내가 행복하다고 마음먹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나·너·우리는
하나 * “하 나”를 붙여쓰기로 교정함
나·너가 있기에
우리도 함께 하는 거야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만물의 영장이며
사회적 동물로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길잡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라는 존재는 * <나>를 ‘나’로 교정함
‘우리’란 거대한 무리에 있게 된 것이지n *<우리>를 ‘우리’로 교정함
우리에게는
부귀공명 영화가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화려한 꽃그림도 아차
잘못 그리면
악의 씨가 되고 피할 수 없는
못내 허물이 될 수도
일생 나를 괴롭히는 굴레일 수도
욕심도 탐욕도 모두 내려놓고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기쁨 되고
즐거움 함께하는 행복이 되리
이 모두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자만의 것이요
다시 찾는 나의 것이요
우리 모두의 것이지요
- 「나」 전문
김 시인의 정서와 사유의 중심에는 자신의 삶과 동행하는 ‘자아발견’을 통한 ‘너’와 ‘우리’의 관계가 설정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고, 사회는 서로 교류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상부상조의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우선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도 있다.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할 때 ‘너’도 ‘우리’도 그 존재 이유가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나’는 어떤 욕심이나 이기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화자는 강조하고 있다. 삶에 있어서 탐욕은 결국 악의 씨가 되어 평생 자신을 괴롭히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의 출발은 ‘나’로부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욕심도 탐욕도 모두 내려놓고/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기쁨 되고/ 즐거움 함께하는 행복이 되리.” 거듭 강조하거니와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너’와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며 이는 결국 모두에게 즐거움과 행복이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화자의 이치에 따른 순리적 사고방식이 이 사회의 귀감이 될 만하다.
원대한 꿈
누구 것인데
귀한 것이라면
그 꿈은 지금이지
역사란
지금이지
내일이 아니야
내일은 언제나 내일 일뿐이야
지금이 끝나면
내 인생 끝이야
너도 말이다
- 「꿈」 전문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을 지니고 살아간다. ‘꿈’은 중의어로서 이 작품에서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꿈’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꿈’이 중요하지만 실현되지 못할 ‘꿈’은 아예 갖지 않는 게 상책이다. ‘꿈’이 ‘꿈’으로만 존재한다면 ‘꿈’은 그냥 ‘꿈’일 뿐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자는 ‘원대한 꿈’이나 ‘내일’에 대한 ‘꿈’보다는 ‘지금’ 이 순간아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래’는 ‘지금’보다 실현성이 덜하다는 말이다. 이 짧은 시에서 ‘지금’이라는 시어를 3회나 반복하고 있음은 ‘지금’에 무게를 두어 밑줄을 긋고 있다는 증거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꿈’은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게 화자의 지론임을 알 수가 있다.
나의 생과 내가 걷는다
양지바르고 따사한 길
곧고 현란한 길
굴곡진 비탈에 오솔길
오르내림이 가파른 내림 길
캄캄한 어둠을 뚫고
탁 트인 밝고 환한 길을 * “밝은 회한”의 뜻이 모호하여 교정함
또 걸어 지나며
지옥 같은 절벽에
매달려 애 끓인 길
하늘이 아득하고 망망대해
갈 곳 몰라 헤맨 끝에
눈앞에 금은보화 가득 찬
희망의 길
갈수록 신나고 자랑스런
행복 길
온갖 금수가 아우성치다
신나게 뛰노는 자유천지
분방한✔길 * “문만길”의 뜻이 모호하여 “분방한 길‘로 교정함
갈망하는 숱한
인간의 길은 나는 다
알 수가 없다.
생명이 있는 한 전진할 뿐이다
- 「길을 걸으며」 전문
화자는 평생의 삶과 함께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양지바른 길, 현란한 길, 비탈진 오솔길, 가파른 내림길, 밝고 환한 길, 절벽에 매달린 길, 희망의 길, 행복 길, 자유분방한 길 등 갖가지 길들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자기 뜻대로 좋은 길만 골라서 갈 수는 없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어느 누가 어렵고 험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어떤 길이든 앞에 닥치면 닥치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이다. 누구라도 쉽고 좋은 길을 선택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오늘도 묵묵히 주어진 길을 전진, 또 전진하고 있는 화자의 성자다운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다가온다.
이상으로 김진국 시인의 첫 시집에 수록한 작품들에서 그의 시정신과 품격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시류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신만의 보법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자세만으로도 그는 진정한 시인이다. 사실 시인의 개성적인 이미지가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야말로 삶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프랑스 뷔풍 교수의 “글은 그 사람 자신이다”란 말이 그대로 실감되었다. 인생 항로에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표류하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결코 희망을 잃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긍정심의 지혜로 이겨내고 오로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김 시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도 현재에 만족하며 진중한 보법으로 내일을 향하고 있는 김 시인의 믿음직한 모습이 행복스럽게만 느껴진다. 평소 자연에서 만물의 이치와 순리를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의 감상을 버무려 시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작업은 숭고하다고 할 것이다.
김 시인의 앞날에 더욱 빛나는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이만 무사蕪辭를 접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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