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실망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는 단지 나의 의도일 뿐이지 상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가 나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보장은 없다. 사실은 상대가 나의 기대에 부응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 이처럼 기대는 내가 해놓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상대에 대해 실망한다.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므로 상대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때 나의 책임을 통감하지 못한다. 상대의 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나의 막연한 기대가 문제인 것이다. 모든 일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밖에서 답을 얻으려고 하지 자신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책임에 관한 것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나의 이런 기대와 실망 때문에 어느 시기에 이르면 인간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이익이 있다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지만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미련 없이 떠나기 마련이다. 당초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실망할 일이 없겠지만, 기대를 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일이라 이 또한 불가피한 괴로움이다. 상대에 대한 기대는 내가 새로운 감각적 욕망을 성취하려는 의도로 설정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같이 이기적 욕망을 가지고 자기중심으로 살기 마련이라서 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나의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남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사람은 다시 자신의 기대를 높여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안팎으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다른 한편의 감각적 욕망이 있다. 남에 대한 기대는 밖에서 얻으려는 욕망이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기대는 안에서 얻으려는 욕망이다. 만약 내가 남에게서 얻을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서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은 남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을 다하는 것이며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최종적 방법이다.
안에서 물이 새는 바가지는 필연적으로 밖에서도 물이 새는 바가지다. 인간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모든 일에서 안팎으로 겪는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만약 괴로움이 있다면 안팎으로 괴로움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즐거움이 있어도 안팎으로 즐거움이 일어난다. 이런 이중의 현상이 항상 나를 더 괴롭게도 하고 즐겁게도 한다.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사는 한 이런 기대와 실망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존재의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알 때만이 집착이 끊어져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밖이 아닌 자기 내면을 통찰해서 내가 없다는 무아를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완성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거리끼지 않는 나는 나의 기대를 접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기대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 만난다. 이것이 괴로움뿐인 윤회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상대가 완전하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상대에게서 채우려는 또 하나의 욕망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완전한 의지처는 남이 아니고 오직 자신밖에 없다. 내가 남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언제나 나는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완전한 인간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에서 남에 대한 기대는 실망만 가져오는 무익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러한 과정이 결코 무익한 일만은 아니다. 남에 대한 기대로 실망이 클수록 결국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는 최종적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일이 처음부터 손실 없이 이익만 얻을 수는 없다, 손실을 통해서 이익을 얻듯이 실망이 인간을 더 성숙하게 한다.
인간이 겪는 괴로움은 이처럼 기대하지 않고 살 수 없고, 실망하지 않고 살 수 없는 데 있다. 이런 불가피한 현실을 타개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고 지나친 실망도 하지 않는다. 누구나 적당한 기대와 적당한 실망은 겪지 않을 수 없지만 경미한 실망은 오히려 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지나친 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모든 지나침에는 나의 욕망이 바탕에 깔렸다. 그러므로 오직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만이 욕망 없이 살 수 있다. 인간은 욕망을 가진 힘으로 살지만, 이 욕망이 나를 괴로움으로 이끌어 온갖 번뇌를 일으킨다.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 없기도 한 욕망을 절제하는 방법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이다. 이 수행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직 괴롭지 않게 살려는 모든 사람의 양식이다.
인생을 살다 보니 모두 덧없고, 상시적인 괴로움이며,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나라고 할 만한 자아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늦게라도 알고 보니 이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찍 존재의 성품을 알았다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었겠지만, 공덕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늦게라도 조금 알았다면 남아있는 여생은 물론 다음 생에는 똑같은 어리석음을 갖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번 생으로 윤회를 끝낼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힘이 미치지 못하면 괴로움의 소멸을 다음 생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다음 생은 현생의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생을 원인으로 태어나는 생명이므로 얼마간의 도덕적 의무는 있다. 죽을 때는 내가 지녔던 업도 끝나고, 마음도 끝나고, 몸도 끝나지만 마음에 있는 종자가 다음 생을 만들므로 전혀 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 자기 성찰을 한다. 죽기 전에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워할 것 없다.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남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남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면 내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남과의 관계에서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다. 오직 자신의 내면을 통찰한 지혜에서만이 인생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나라고 할 것이 없으므로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는 방법이다.
출처: 한국 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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