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한국을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을 위해
5월 15일
서대문 상이군경회(회장. 김양선) 에서는 서대문 전몰군경유족회(회장. 박건국) 전몰군경미망인회(회장. 최혜숙) 와 함께 (총인원105명) 관광버스 3대에 나눠 타고 경기도 가평의 한국전쟁 미군 참전비순례에 나섰다.
서대문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전적지순례 동영상
가평군의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62,715명. 넓이는 서울의 1.4배나 되지만 인구는 서울의 0.6% 수준이다.
정확한 기후통계자료는 미상이지만 위도는 높고 군 중앙부에는 북한강이 지나 서울지역보다 연중 평균 4~5도 정도 늘 상 낮다고 보면 된다.
가평공설운동장에서 합류한 해설사가 특산물에 대해 설명한다.
잣, 사과, 포도 등등...
잣은 품질이 널리 알려진 탓인지 특산품 상점을 들렸을 때 상당수가 잣 봉다리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휴가철이나 주말이 되면 교통체증으로 차를 가지고 온 것을 후회합니다. 전철을 타고 와서 순환버스를 이용하시는 것이 최선이에요. 차를 댈 때가 없어서 엄청 고생합니다.”
해설사가 나눠준 관광지 순환버스 안내도를 보니 성인 6000원 어린이, 노인 등은 4000원으로 유명하다는 곳은 모두 갈 수 있어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참전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 산길이다.
한참을 구비 돌아 목적지에 다다르니 높다란 탑이 눈에 들어온다.
참전비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 모양의 주 탑과 213야전포병대대의 전공을 기리는 기념 동상과 2사단 및 40사단을 표시하는 조각을 새기고 "자유는 공짜로 주워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석 등으로 구성됐다.
미국 한국전쟁 참전비는 전쟁 동안 가평지구에서 미군들이 보여준 희생과 봉사에 보답하고자 최승성 회장이 사재를 털어 뜻있는 몇몇 분들과 2011년 선양회를 설립하고 늦게나마 이 기념비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왼쪽부터 해설사, 전몰군경유족회 박건국 회장, 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최승성 회장
최회장은 "한국전쟁은 잊어버린 전쟁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전쟁입니다. 미국 군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우리 후세들이 지켜내야만 하며 이 땅에서 전쟁이라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미국 군 한국 전 참전비를 건립하는데 최선을 다 했습니다" 고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최 회장이 김양선 상이군경회 회장을 사무실로 안내하자 김 회장은 방명록에 서명을 하며 “이렇게 국가를 위하여 애쓰시는 분이 있어서 항상 든든하고 고맙습니다.” 하며 경의를 표하였다.
“6.25전쟁으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UN의 깃발아래 한국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지켜준 사실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느 기회에 영연방 참전용사들이 자신들의 전쟁터인 한국에 오셔서 당시의 처참했던 전쟁의 참상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았으며 이때부터 생각한 것이 한국전쟁당시의 참전용사와 그분들의 후손들에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달리 말 할 것도 없이 최승성 회장님의 이 인사말에 건립취지가 함축되어 있다.
기념비 소개
위치 경기도 가평군 북면 카이저길 45-23
면적 3,300m2
규모 기념비-
폭6m, 높이7m의 성조기 형태
바닥-태극무늬
사업비; 1,002백만원
(가평군 지원금 340백만원)
건립일; 2016년 2월 4일
건립취지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유엔군과 미군의 도움으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사실과 그 역사적인 현장을 후세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먼 타국 한국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치룬 미군의 숭고한 희생과 봉사를 기리며 이 기념비가 한·미 양국의 영원한 우정을 상기시켜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이곳 가평은 적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중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런 조건으로 인해 가평과 그 주변에서는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는데 1951년 4월 미 제 2사단 72탱크대대는 목동에서 대원사 능선을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을 맞아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시켰으며 1951년 5월 26일 북면 화악리(현 홍적리)에서는 미 213 야전포병대대 J. F. Dalley 중령이 이끄는 유타 주 출신의 600명 대원 중 240명이 중공군 4,000명을 맞아 싸워 사살 350명, 포로 830명의 엄청난 전과를 얻고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전원 귀환하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더불어 1952년 미 40사단은 사단장 Cleland 소장의 지시로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사단의 첫 전사자인 Kaiser 일병의 이름을 딴 카이저고등학교(현 가평고등학교)를 세워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케 하는 훌륭한 일을 해냈다.
가평의 절경 2호 호명호수
참전비 순례를 마친 보훈단체는 제2코스로 호명호수를 택했다,
이 상부저수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으로 탄생한 국내 최초의 양수발전소의 인공저수지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멀리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보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호수 너머 산등성이에 보이는 팔각정에서 호수를 내려다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곳 1 순위가 아닌가 싶다.
▶가평 8경 중 2경 호명호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건설된 호명호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야에 남아도는 전기를 이용해 북한강 하류물을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린 다음 전기수요가 피크일 때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얻는 양수발전소의 인공저수지이다. 호명호수는 호명산 정상에 4만5천평의 면적에 둘레 1.7km로 조성되어 있으며 길이 7백30m짜리 수로를 통해 지하발전기와 연결시켰다. 국내 최초로 건설된 양수식 발전소의 상부저수지로 호명산의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넓은 저수지는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절경이다
가평8경중 2번째로 호명산의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넓은 저수지는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절경이다. 가평읍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산유리에서 하차, 또는 청평면 상천역에서 하차하여 호명호수까지 등산을 하며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다. 호명호수와 더불어 산 아래로 길게 펼쳐진 계곡은 훌륭한 휴식처로서 등산과 함께 그 묘미를 즐길 수 있으며, 호명호수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는 청평호반 역시 일품이다. 계곡 중간의 상천낚시터는 강태공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가평군 홈페이지/http://www.gptour.go.kr/
정 재 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