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신앙적인 의미를 되새겨 봄.(2019. 매교동)
1. 역사적 의미.
중국 한자문화권의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 중국 춘절의 역사.
춘절의 시초는 4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원으로 여러 가지 설이 전해오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서기전 2000년 무렵 순임금이 요임금의 뒤를 이어 천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낸 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아 기념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농경 사회였던 고대 중국에서 한 해의 결실을 거두어들인 뒤 새해의 풍작을 기원하며 올린 제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해를 맞이하며 기원의 제를 올리는 오랜 전통은 다양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한(前漢, 서기전 202년~서기후 220년)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 최초의 자서(字書) 『이아』(爾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하(夏)나라 때는 세(歲)라 하고, 상(商)나라 때는 사(祀)라 하고, 주(周)나라 때는 연(年)이라 하고, 요순 때는 재(載)라 했다.” 비록 시대에 따라 칭하는 이름이 달랐고, 왕조마다 서로 다른 역법을 사용해 1년의 시작일에 차이가 있었으나 예부터 비슷한 시기에 설을 지내온 것으로 추정된다.
전한의 제7대 황제인 한무제(漢武帝, 재위 기간 서기전 141년~서기전 87년)는 사마천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의 바탕이 된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했다. 한무제는 24절기 가운데 입춘(立春)을 춘절로 정했으며 원월(元月)을 새해 첫 달로, 원월의 첫날을 원단(元旦)이라고 불렀다. 즉 새해 첫날인 음력 1월 1일의 명칭이 춘절이 아닌 원단이었던 것이다. 이 이름은 청대까지 계속 사용됐다.
음력 1월 1일이 춘절로 고정된 것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다. 중화민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기존의 음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설도 양력 1월 1일로 정해졌다. 이때부터 원단은 음력이 아닌 양력 1월 1일을 의미하게 됐고, 전통적으로 설 명절을 치르던 음력 1월 1일은 ‘봄 축제’라는 뜻의 춘절(春節)로 바뀌었다. 한때는 음력 설을 치르는 것을 금하기도 했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춘절에 설 명절을 지냈으며, 1934년에는 음력 폐지 조치가 철회됐다.
이어지는 문화대혁명 시기(1966년~1977년)에는 춘절 휴가를 억제하고 춘절의 주요 행사인 전통 무용 공연, 폭죽 놀이 등을 모두 봉건 풍습이라며 금지했다가 1980년에 들어서 휴가가 되살아났고 점차 현재와 같은 성대한 춘절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늘날 춘절은 과거의 종교적 의미나 제사 의식은 거의 사라진 채 가족, 친지가 한데 모여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한 해의 가장 중요한 명절이자 축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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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나라에서 설명절의 역사적 변천.
근대국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음력설(구정)과 양력설(신정)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이른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것이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설날이며 구정(舊正)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날은 추석과 함께 전후하여 3일간 연휴이다. 그러나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나란히 할 만큼 진통을 겪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 이 기준으로는 고종 32년)에 태양력(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다. 그들은 우리 명절 무렵이면 떡방아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반면에 일본의 명절과 그 행사의 의식(儀式)을 한국에 이식하여 강요하기도 하였다. 가령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명치절(明治節)·기원절(紀元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그런가 하면 신정에는 시메나와(표승=標繩)라 하여 새끼에 귤을 꿰어 대문에 달게 하고 단오절에는 고이노보리(리치=鯉幟)라 하여 헝겊으로 잉어를 만들어 풍선처럼 띄우게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의 방식대로 양력과세를 강요했는데, 이는 광복 후 공화국에 들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설날’과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국가에서는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금했으며 산업화시대에 와서는 낭비성과 아울러 외국과의 무역통상 관계를 들어 신정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국제적으로 신정이 통용되기 때문에 우리도 그 때에 맞추어서 쉬고 ‘구정’ 때에는 외국에서는 모두 일을 하므로 우리 역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무역 수지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역시 음력 기준의 추석은 휴일로 삼았다는 것은 모순되는 논리였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공휴일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우리의 설날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한국인의 생활 자체가 민속인데,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은 붙이는 것은 실로 어색하고 궁색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되자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만에 설날을 되찾았다며 떠들썩했었다.
한때 신정도 3일간 연휴로 하다가 다시 2일로 했으나 1999년 1월 1일부터 하루의 휴일로 축소되어 3일 연휴인 설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II. 설 명절의 역사 문화적 의미.
1. 인생의 시간을 정리한다는 의미.
공통적으로 절기를 정하여 시간을 구분하고 거기에 맞추어 일상을 정리하며 또 새로운 역사를 준비해나간다. 우리의 인생의삶.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아가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우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한 해 두해 먹어가고 늘어가는 나의 나이에 대하여 ‘정말 나이값을 하고 사는가?“ ”내가 나이를 제대로 먹고 있는가? “ 반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 조상 공경의 의미.
조상공경의 의미, 나의 뿌리에 대하여 의식한다. 조상이 없으면, 나의 가문과 집안과 부모가 앖었으면 나는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 우리는 조상들이 천국에서 저세상에서 영혼으로 살아서많은 은혜를 베풀어주고 있다고 믿고 있고, 그것을 일반적으로 은덕(隱德. 감추어진 덕)이라고 믿고 있다.
유교가례에 의하여 조상들에 대하여 좀더 체계적이고 엄격하게 공경의 예를 제사 의식으로 하고 있다.
의례-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신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를 한다.
정초에 집안의 평안을 위해 안택을 한다. 안택은 무당과 같은 전문적인 사제를 불러 평소 집에서 하는 고사보다는 규모가 큰 굿을 하는 것인데, 정초에 행하는 신년제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한다.
* 조상들을 위한 합동 위령 미사를 봉헌합니다. 조상들을 공경하는 천주교식의 제사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보다 비할 수 없이 편리한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정성을 다해 미사를 봉헌하고, 대신 집에서 가장을 중심으로 연도를 함께 봉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역사적인 의미.
올해 1919. 3. 1. 운동 100주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 주년. (1919. 4. 11)
- 임시헌장 1 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 주년. (1922. 5. 8- 2009. 2. 16)
김대중 대통령 (1924. 1. 6.- 2009. 8. 18)
3. 가족 친교적 의미.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
설과 추석 무렵이면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중국도 춘절 대이동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된다) 명절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현상도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많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것이다.
4. 신앙적 의미.
역사와 우리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오늘 마침 성가 부르면서 '시작도 마침도 없이 영원한 시간을 다르시시면, 우리 온 삶을 주관하시고, 삶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전선 전능하신 하느님을 흠숭공경하며 찬미를 드리고, 그 하느님의 섭리와 뜻과 이끄심에 우리가 순응하며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다짐하고 노력하며 필요한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올해 한해 큰 사고 없이 그리고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재난이 없이 무탈하게 지내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남북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이루어지고, 북미간의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이 이우러지고, 경제 제재가 풀려서 남북경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꽉막히 경제가 활성화되어 청년 실업문제가 대폭 해소되며 사회가 전반적으로 활성화되고 재화가 공정하게 분배되어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전반적으로 크게 한반도의 복음화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며 함께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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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명절 인사. - 특징과 의의
설은 우선 한 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은 일반적으로는 신성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천주교를 중심으로 이러한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오늘날의 설은 국가차원의 공휴일이지만 전통사회에서처럼 대보름까지 설명절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신년을 두 번 맞는 문화를 만들었다. 설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오늘날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와 같은 인사말을 연간 두 번에 걸쳐 한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새해에 이미 인사를 하고 다시 설에 똑같은 인사를 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다.
실상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신년 인사말은 전통적인 덕담이 아니라 새로 생긴 현대판 덕담이다. 그렇다면 일상력인 양력으로 새해를 맞았을 때에는 신식 덕담을 나누고 우리 전통명절인 설날에는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과세 편안히 하셨습니까”와 같은 전통적인 인사말을 하는 것도 무방하리라 본다. 이는 설이라는 전통문화를 소박하게나마 이해하는 길이다.
< 새해 복 잘 이어가십시오 > < 새해 복 많이 나누십시오> 라고 인사 권고함.
설과 추석 무렵이면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명절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현상도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많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설 [Lunar New Year’s Day]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2019. 2. 4. (음력 1월 1일) 매교동 성당. 전 가브리엘 신부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