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더듬 영화음악
무성 영화는 변사들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사운드가 실리면서 음악영화가 두각을 드러냈다. 화면과 음악이 시청각을 동시에 울리면서 음악은 음악대로 화면은 화면대로 장르를 넓혀 나갔다. 이제 화면 없는 음악은 있어도 음악 없는 영화는 없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는다. 진정한 영화음악은 시나리오에 음표를 붙이는 창작 작업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회상하면 산 중턱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Do Re Mi Song』이 여간 잊히지 않는다. 영화 「졸업」이 남긴 『Sound of Silence』도 그렇다. 「닥터 지바고」에서 『Somewhere My Love』도 잊을 수 없는 설경과 함께 오래 기억되는 음악이다. 주제곡이 화면과 함께 시각적 기억이 더 많은 영화들이다.
오드리 헵번이 한껏 매력을 뽐냈던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헵번이 직접 부른 『Moon River』가 귓전을 간질인다. 영화감독이 작곡까지 직접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멜로디가 영화를 끌어간다. 그러나 음악이 영화를 살렸다기보다 헵번이 펼친 연기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화 따로 노래 따로 기억하는 대표 사례다.
「미션」 주제가 『Gabriel’s Oboe』를 OST로 들으면 백사운드가 잘 어울려 현장감이 생생하다. 이탈리아말로 가사를 붙여 『Nella Fantasia』를 부르면 한결 성스러움이 더해진다. 영화가 현실로 다가올 때 우리는 잘 만든 영화라고 한다. 대부분 좋은 영화는 좋은 음악과 함께한다.
「타이타닉」은 슬픈 영화인가. 『My heart will go on』은 슬픔과 거리가 있다. ‘And never let go till we're me - 그리고 죽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겠어요.'에 이르면 그들이 나눈 사랑을 죽음도 갈라놓지 못했다는 숭고함을 느낀다. 시작도 끝도 사랑은 항상 아쉬움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 전문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음악영화다. 골든글로브 작품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음향믹싱상, 음향편집상, 작품상, 편집상을 휩쓴 영화다. 이 영화는 『We will Rock You』라는 노래와 함께 떼창 이라는 전대미문이라 할 만한 선례를 남겼다. 기록영화 같은 창작영화다.
「러브스토리」 주제곡 『Snow Frolic』은 도장 찍듯 남는 장면이 있다. 눈 위에 큰 대짜로 벌러덩 눕는 장면이 백미다. 누구나가 한 번쯤 연출 해보고 싶은 충동을 품는다. 「사랑과 영혼」은 심령영화가 아니라 사랑영화다. 『Unchained Melody』는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눈물을 자아낸다. 물레 위에서 일그러지는 흙 반죽이 의미심장한 뉘앙스로 남는 장면이다.
영화「대부」에 테마로 쓰인 『The Godfather』는 70년대 초반 영화였다. 예술성과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연기와 음악이 갖는 조화로움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종합예술이 아니라 영화예술임을 보여주었다. 트럼펫 만으로도 구슬픈 사운드를 구사하는 흔적을 진하게 남겼다. 음악만으로도 말론 브란도의 연기가 재연된다.
영화「나자리노」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주제곡 『When a Child is Born』은 많은 음악프로그램에서 오프닝 시그널로 채용되면서 인기를 누렸다. 성가(聖歌)를 대중화 시킨 클래식 멜로디와 대중 창법이 만나 품위 있는 음악이 되었다. 비참함과 고통을 버티는 인고가 음악에 녹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침 해가 뜬다.
『The Morning After』는 「포세이돈 어드벤쳐」 주제곡이다. OST에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배 밑창 두드리는 망치 소리와 환호성이 그대로 녹음돼 있다. 전혀 성(聖)스럽지 않으면서 벅찬 희망이 있다. ‘There is got to be a Morning after - 아침이 분명 오고 있어요' 화면에 집중하다 보면 백 사운드를 못들을 만큼 이목을 끄는 영화다.
「영광의 탈출」은 폴 뉴먼이 이스라엘 저항 지도자로 분하여 주연한 영화다. 영화와 함께 『Exodus』를 남겼다. 오페라 서곡 기법을 빌어 작곡된 이 음악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였고, 국내에서도 ‘주말의 명화’ 타이틀곡으로 쓰였다. 1960년에 개봉된 영화지만 지금도 스펙타클의 대명사로 꼽힌다.
여간 잊어지지 않는 영화음악으로 『Colonel Bogey March』라는 휘파람 곡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가 영화 제목이어서 주제가도 콰이강의 다리로 알기 쉽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비롯한 7개 부문을 차지할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다. OST에는 실제 휘파람으로 녹음했다는데 흉내 내기가 쉽지 않다.
영화음악은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고 내용에 알맞게 맞춤식 작곡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영화음악 전문 작곡가가 희소하다. 영화가 스토리에 치중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간 감성을 시각(視覺)에만 의존 하다보면 스토리 전개에 편중하기 마련이다. 음악을 짜깁기한 영화에 높은 예술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영화가 가지는 특징은 와이드 스크린과 다중 스테레오가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풍족함에 있다. 우리나라 영화는 아직 30%쯤 스토리와 50%쯤 연기력과 20%쯤 촬영술에 의존하고 있다. 영화 제작에도 황금비율이 있다. 배경음악은 효과음 이상 영화를 완성하는 구성요소로 역할이 크다.
음악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돋보이지 않는다. 「물망초」와 「장마루촌의 이발사」가 그랬다. 장면이나 대사로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음악이 끌어나가는 영화가 잘 만들어진 영화다. 삶도 그렇다. 영특하여 손해 보지 않으려는 친구가 있다. 박진감이 도를 넘어 접근하기 곤란한 친구가 있다. 그저 그냥 정 많은 친구에게 호감이 간다. 영화에서 음악은 삶에서 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