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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천도재의 봉행
2.천도재의 종류
천도재는 의례의 목적과 양상에 따라 49재(칠칠재)를 비롯하여 영산재, 수륙재, 백일재, 우란분재, 예수재, 구병시식 등 다양한 형식의 의례들이 있다. 이 가운데 수륙재와 영산재는 유주무주의 고혼을 대상으로 하여 거행하는 대규모 천도재이다. 영산재(靈山齋)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당시 법회의 환희를 재현하여 치르는 천도재이며, 수륙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무차평등(無遮平等)의 천도재이다. 49재는 칠칠재라고도 하며, 49일간 7번에 걸쳐 영가 천도를 목적으로 행하는 재로서 오늘날 대표적인 천도재로 자리 잡고 있다. 우란분재는 백중을 맞아 지옥고를 당하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의식으로 역시 보편적으로 행하지고 있는 천도 의식의 하나이다. 구병시식(救病施食)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린 사람을 병으로부터 낫게 하거나 악귀를 떨쳐 버릴 수 있도록 사찰에서 행하는 의식으로서, 시식(施食)이란 지옥에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 모든 귀신들에게 공양물을 베풀어 허기와 고통을 달래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천도해 주어 환자의 병을 낫도록 기원드리는 천도의식이다. 예수재는 사후 영가를 위한 재가 아니라 생전에 자신의 과보와 업장을 소멸하는 의례로 주로 윤달에 거행된다. 예수재와 같은 특이한 재도 있지만 대부분의 천도재는 망자를 위한 의례이다. 이러한 의례는 불교의 윤회 사상과 그 바탕이 되는 4유(四有)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합동천도재의 경우 그 유래가 조선시대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천도를 위해 대규모로 행해지던 수륙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수륙재는 조선 전기에는 다양한 추모의례를 포괄하는 하나의 국가의례로 그 의례의 대상은 사고, 전쟁, 정치적 변환 속에서 비명횡사한 '원혼'들에게 집중되었다.
영가 천도재의 종류는 상주권공재(常住勸公齋)⋅영산재(靈山齋)⋅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등으로 나눌 수 있으나 기본적인 의미와 구조는 동일하다. 상주권공재는 일반적으로 많이 지내는 소규모 재로 가장 기본이 되는 천도재 의식이다. 법당 안에서 염송 위주로 진행되므로 안차비 중심의 재라고 할 수 있다. '상주권공'이라는 말은 시방(十方)에 항상 거주하는[常主] 삼보를 향해 공양을 올린다[勸供]는 말로, 불보살을 모신 상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왕각배재는 시왕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상주권공재에 더하여 명부시왕의 제단을 차려 놓고 각각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 추가된 재이다. 대례왕공재(大禮王供齋)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에 널리 행하였으나 근래에는 잘 지내지 않고 있다. 영산재는 상단권공의 기본구조를 확대하여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한 영상회상의 법회를 상징하고자 영산작법에 따라 행하는 대규모의 재이다. 따라서 당시 석가모니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여든 영산회상의 모든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며 함께 그 법회에 동참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3.천도재의 절차
현재 한국 사찰에서 봉행되고 있는 의례 구성과 절차는 대체로 『석문의범』에 근거하고 있으며, 사찰과 종파에 따라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석문의범』에 따르면 49재는 영가를 맞이하는 대령(對靈)에서부터 시작하여 영가의 업을 씻기는 관욕(灌浴) 단계, 불보살과 신중(神衆)에게 공양을 올리고 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상단(중단) 불공 단계, 하단 영가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는 관음(觀音) 시식(施食) 단계, 영가를 보내는 봉송(奉送)과 음식을 고혼들에게 나누어주는 헌식(獻食)과 망자의 옷과 의례에 사용된 용구를 태우며 영가와 이별하는 소대(燒臺) 의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령은 맞이하기, 관욕은 씻기, 불공은 기원하기, 관음시식은 제사지내기, 그리고 봉송과 소대 의례는 보내기로 명명하고 있다. 대령에서 시작하여 관욕, 불공, 관음시식. 봉송과 소대 의례의 의미는 결국 손님을 맞이하여 각종 접대를 한 뒤 보내드리는 현세의 손님맞이의 일련의 과정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49재에서의 손님맞이가 단순히 음식 공양 등에 그치지 않고 영가의 '각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천도재는 의례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치러지지만, 기본적인 의례구조는 유사하다. 가장 간략한 구도를 살펴보면, 천도재의 대상을 의례공간으로 청해 모시고, 생전에 지은 업을 씻는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불보살 앞으로 나아가 공양과 불공을 올리며, 망혼에게 시식(施食)을 대접하고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의례를 마친다. 이때 극락천도를 위해 불보살에게 올리는 기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망혼을 향해 끊임없이 법문을 들려줌으로써 미혹한 마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천도재의 구조는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망자를 맞이하는 단계, 망자가 생전에 지은 업을 씻어주는 단계, 불보살에게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단계, 망자에게 제사를 지내며 불법을 들려주는 단계, 망자를 떠나보내는 단계로 진행된다.
1.준비단계: 천도재를 지내기 위한 준비단계에서 유족이 재를 연 주체로서 법당의 각 단에 삼배와 육법공양을 올린다. 의례주체는 법당에 들어서며 불단과 신중단에 각 3배를 올린 후 영단에도 절을 함으로써 각각의 초월적 존재들에게 경배를 올린다. 불단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중단·영단에 이르기까지 육법 공양물(香⋅燈⋅花⋅果⋅茶⋅米)을 새롭게 올리는 행위는 의례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의례의 주체를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본격적인 재가 시작되기 전에 초월적 존재들과 '망자의 극락천도'라는 의례 목적을 공유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2단계 대령(對靈): 영가를 맞아들여 간단한 음식을 대접한다. 대령은 영가를 맞이하는 단계이다. 먼 길을 온 영가를 청한 뒤, 간단한 요기로 대접하는 가운데 재를 열게 된 취지를 밝히고 영가가 나아갈 길을 불법에 따라 들려주게 된다. 이 때 의례주체는 차례대로 차를 올리고 절을 하면서 영가와 대면 하는 인사를 드리는데, 대령에서의 이러한 행위는 일반제사에서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강신(降神)의 의미와 유사하다. 근래의 대령의식은 거불(擧佛)-대령소(對靈疏)-지옥게(地獄偈)-창혼(唱魂)-착어(着語)-진령게(振鈴偈)-고혼청(孤魂請)-향연청(香煙請)·가영(歌詠)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대령을 포함하여 모든 단계에서 행하는 의식의 과정은 행위로 구분되기보다 염송의 순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3단계 관욕(灌浴): 지의(紙衣)를 태우는 상징적 행위로써 영가가 생전에 지은 업을 씻는다. 관욕은 영가가 생전에 지은 업을 씻어내는 단계이다. 대개 영단 옆에 병풍을 쳐서 관욕단을 만든 뒤 재를 주관하는 스님의 염송에 따라 의례를 진행하게 된다. 관욕에서는 영가의 삼업을 청정하게 씻어줌으로써 불보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염송 내용 가운데서도 '번뇌의 때'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삼업은 곧 중생을 청정케 하고, 나아가 해탈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일련의 의식을 몸의 부정을 씻어내는 목욕에 견주어 행하는 것이다.
앞의 대령의식은 생사(生死)라는 문제의 해법을 찾아감에 있어 영가의 이성에 호소하여 영가 자신의 자력적인 판단과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자력신앙적인 면이 강한 반면, 관욕의식은 생사문제의 해법을 삼보의 가지력에서 찾고 있어 다분히 타력신앙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심상현, 2002:119). 관욕의 절차는 인예향욕(引詣香浴)-가지조욕(加持澡浴)-가지화의(加持化衣)-수의복식(授衣服飾)-출욕참성(出浴參聖)-가지예성(加持禮聖)-수위안좌(受位安座 )의 일곱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4단계 상단권공(上壇勸供): 상단(불단)의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 상단권공(上壇勸供)은 불단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가운데 불보살의 위력으로 영가가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발원하는 단계이다. 천도재의 핵심이 되는 단계이며, 관욕으로 청정하게 된 영가를 모시고 스님과 모든 참석자들이 불보살 앞에 나아가 지극한 마음으로 불공을 올리게 된다. 재를 지내는 스님과 참여자가 다함께 불보살을 향해 경배·찬탄·청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의식은 평소 불보살에게 올리는 법식을 기본으로 하는 가운데, 보다 풍성한 공양물을 차려 놓고 극락과 명부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에게 불공을 올리며 망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 특징이다. 『불교의식각론』에 따른 상단권공의 의식순서는 결계의식(結界儀式)-참회의식(懺悔儀式)-준제의식(准提儀式)-권청의식(勸請儀式)-권공의식(勸供儀式)의 다섯 단계로 분류된다(심상현, 2000).
5단계 중단권공(中壇勸供): 중단(신중단)의 신중에게 공양을 올리고 기원한다. 중단권공은 상단권공을 마친 다음에 신중(神衆)을 모신 중단을 향해 공양과 불공을 올리는 단계이다. 상단불공 이후에 행하는 일상적 퇴공(退供)의례이기도 하며, 다음 단계에서 신중단의 공양물을 다시 하단인 영단으로 옮김으로써 상→중→하의 신적체계를 명확히 드러내게 된다. 신중은 인도·중국·한국의 여러 토속신 가운데 불교에 귀의하여 정법을 수호하겠다는 원을 세운 존재들로, 불법을 수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망혼의 극락천도와 참가자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다.
6단계 하단시식(下壇施食): 하단(영단)의 영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제사를 지내고 불법을 들려준다. 관음시식(觀音施食)은 하단의 영가에게 제사를 지내고 불법을 들려주는 단계이다. 천도를 위해 긴 노정을 거친 영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후손의 공양을 받는 단계로, 줄여서 시식(施食)이라고도 한다. 관음시식은 곧 '재 속에서 진행되는 제사'라고 할 수 있는데 영단에 갖가지 재물을 차려 놓고 참가자들이 차례로 절을 올린다. 스님들은 영가가 깨 달음을 얻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불법을 들려주고 각종 진언으로써 앞길을 열어주는 가운데 극락왕생을 기원하게 된다. 망혼에게 경전을 읽어주고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서방 극락세계로 나아갈 것을 축원하는 아미타불을 염송한다. 궁극적으로 영단에 차림 재물은 단순한 음식에 그치지 않고 망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감로(甘露)의 불법을 상징하는 것이다.『불교의식각론』에 따른 관음시식의 의식순서는 창혼의식(唱魂儀式)-증명의식(證明儀式)-시식의식(施食儀式)-장엄의식(莊嚴儀式)의 네 단계이다.
망혼을 모신 영단 앞에서 치르는 시식의 단계는 유교의 제사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천도재는 유교의 제사와 뚜렷이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천도재는 삼보(三寶)에 대한 귀의에서 이루어진다. 불보살[佛]을 모시고 승려[僧]의 집전과 불법[法]의 염송으로 의식을 치르므로, 영단 앞에서 유족이 올리는 의식은 일반제사와 다를 바 없으나 승려의 염송 내용이 곧 제사의 의미를 규정하는 텍스트의 구실을 한다.
둘째, 제사의 의미가 고인에 대한 추모와 효의 실천이라면, 재는 이에 더하여 망혼을 더욱 좋은 내세로 인도하기 위한 천도의 의미를 지닌다. 천도의 방식은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기원함과 동시에, 망자에게 불법을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깨우침을 얻도록 하는 불교 특유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셋째, 개인을 위한 천도재라고 하더라도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모든 고혼(孤魂)과 지옥중생을 함께 의례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회향의 실천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자신이 지은 선행의 공덕을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이다.
넷째, 상차림에서 육류・어류와 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곧 불교 재물(齋物)과 일반 제물(祭物)의 기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유교의 제사는 음식 공양에 초점이 주어져 있는데 비해 불교의 시식은 그 명칭은 시식(施食)으로 음식 공양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는 그 못지않은 법 공양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영가의 각성을 돕는 법문이 이 단계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결국 영가를 위한 '교육'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7단계 봉송(奉送): 영가를 떠나보낸다. 봉송은 본래 초청한 인사를 정 중히 전송함을 뜻하는데, 의식에 초청된 대상, 즉 상단의 불보살, 중단의 옹호성중, 하단의 영가 등 모두가 봉송의 대상이 된다. 봉송의 의식순서는 ≪불교의식각론≫에 따르면, 준비의식(準備儀式)-보례의식(普禮儀式)-전송의식(餞送儀式)의 세 단계로 분류한다.
8단계 소대의례(燒臺儀禮): 소대에서 망자의 옷과 의례에 사용된 물건을 태운다. 소대의례(燒臺儀禮)는 봉송의 일부이자 마무리단계로 소대 앞에서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가운데 재를 위해 구상화되었던 모든 것을 불사름으로써 망혼과 참가자가 각기 제자리로 돌아가는 의미가 부각되는 시간이다.
9후속단계 법식(法食): 재에 참석한 대중이 함께 공양물을 나누어 먹는다. 재를 마치고 둘러앉아 음복하는 법식의 자리는 의례에 사용된 재물을 참석자와 여러 신도들이 고루 나누어 먹음으로써 불보살과 인연을 맺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사십구재의 의미는 다만 영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재를 지내고 있는 현세의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즉 사십구재의 교육적 의미는 대상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은 중음신으로서 존재하지만 앞으로 새로 태어날 이를 위한 교육이라는 의미도 있고, 죽음을 대비한 산 자를 위한 교육이라는 의미도 있다. 천도재에서의 염불소리, 법문소리, 요령소리는 영가가 생명의 실상을 깨닫도록 하는 법음인 동시에 중생 교육 위한 훌륭한 교육 미디어인 것이다.
<영가천도재의 심신치유에 관한 연구/ 김정기(해암)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불교상담학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