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C조 토론 내용
- 읽은 책
박미선, <여성주의 좌파이론을 향해서> - 흑인 페미니즘 사상과 교차성 이론
정현주, <다문화 경계인으로서의 이주여성들의 위치성에 대한 이론적 탐색> - 경계지대, 억압의 교차성, 변위 개념에 대한 검토 및 적용
1.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나 교차성 이론이 일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얘기했으나 논문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시켜 볼 수 있을까?
- 일단 논문에서 좌파 이론을 완전 부정하기보다는 좌파 이론이 말하는 혁신,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과 교차성을 분석 틀로 사용했을 때 더 혁신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좌파 운동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과 여성 운동이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얘기될 때가 많다. 왜 여성운동이 다른 운동까지 챙겨야하느냐. 노동운동에서도 여성 혐오나 성폭력 성차별적인 문화들이 굉장히 강함. 그러나 이것은 둘이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같이 갈 수 있을 때 혁신을 이룰 수 있다.
- 흑인 페미니즘으로 한정되지 않고 교차성으로 확장 될 수 있다고 생각. 흑인 페미니즘이 인종, 젠더, 노동 다른 억압이 생성되는 것. 흑인 여성이 기원적으로 노예제와 결합하고 섹슈얼리티적으로 억압받는 지점. 육체적인 사람이지만 섹슈얼할 수 없는 존재로서 성으로 억압. 성폭력이나 강간을 오래 합리화. 그럴 수 있는 존재로서 위치 지어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의 문제 구조의 문제. 노예제의 연장선. 신자유주의의 억압. 흑인 가모장제라는 말이 존재. 대부분의 사회에서 가부장제인데 흑인 사회에서는 왜 가모장제가 특이하게 발현되는가. 이는 흑인 남성에 대한 노예 인식이나 저노동 저임금이 만연. 흑인 남성도 다른 여성과 가정 맺기를 꺼려함. 어머니의 (육아)의 책임과도 결부. 이런 식의 억압도 교차되고 있다.
- 당시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갈 권리를 얘기했던 반면에 당시 흑인 여성들은 집을 사수하는 것. 쉴 공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 것이다. 교차성이 더하기 모델이 아니라 교차되면서 생겨나는 다른 경험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이 예시를 통해서 느껴짐.
2. 교차성 이론을 처음 배울 때 더하기 모델이 아니라 (더하기 모델은 각 범주들에 위계가 있다는 뜻) 좀 더 다층적이고 복합성을 가진다고 배웠었는데, 작년에 그걸 배웠던 수업이 아닌 다른 수업에서는 거기서는 이 교차성을 더하기 모델 식으로 이용하는 학자들도 무수히 존재한다고 들었다. ‘흑인 여성의 억압 구조는 인종+계급+젠더의 복합체’와 같은 말이 그렇다. 이에 대한 혼돈과 의문이 있다.
- 교차성 모델을 남성 중심으로 해석 했을 때 종교적 어디 계급적 어디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정체화되는 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가 초점. 나열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 동의한다. 더하기 식으로 가면 더 많은 범주에서 억압을 받는 대상이 더욱 고통 받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논문에서는 비정규직 여성과 정규직 여성의 젠더 억압에 대해서 비교하고 있다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식으로 가게 되면 정규직 여성의 차별이 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로 보이기 때문.
- 공감한다. 이는 지난주에 논했던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과도 연관. 누가 더 피해자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경험과 상호작용의 중심이 아닌 피해의 대결로 누가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나에 흐름이 가게 될 것 같다.
- 연장해서 생각해보면 많은 약자성과 소수자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그 총량의 고통이 크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사실 아까 흑인 백인 비교도 인형이고 싶어하지 않은 백인 중산층 여성의 고통과 쉬고 싶어하는 흑인 여성의 고통을 비교해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 맞다. 이는 즉 교차로 자체로 생각해야 한다. 같은 트래픽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교통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 억압이 생성되고 집중된다는 뜻이다. 또한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이분법은 누군가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될 수도 있다. 교통을 정량화 할 수 없다.
3. 그래서 이를 설명하는 게 논문의 경계지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경계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삶의 지대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어떻게 저항하고 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가?
- 경계지대가 애매하다고도 생각했던 게 자칫 개인의 문제로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인다고 해석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타자화 된 대상들을 주체화로 만들자고 하는 것 같았는데 완전한 주체화를 만들 수 없는 행동들이라는 생각도 했다. 모든 해결지점이 되지 않음.
- 그러나 이는 다른 교차성이 가진 변방 사람들이 있고 이 안에서도 경합하고 이는 재해석 재구성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방식일수도 있다.
- 완전히 정상성이 없는 경계 지대가 존재. 안젤 두아가 살았던 공간이 그것이 가능했던 공간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 멕시코와 한국의 비교. 한국에서는 정상성이 강한 곳이고 그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소수자를 밀어내는 곳. 따라서 이것이 정말 대안이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 우리가 물리적으로 섞여있는 공간이 실체적으로 없으니까 정신적으로 섞이는 공간을 상상할 수 없게 되는 것. 최근 평화의 집 판문점 선언과 같이. 최근 어떤 분이 북한이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여성상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이 여성 운동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러한 지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한 문제 따로 여성 문제 따로인 듯한 담론의 경향.
- 개인적으로 북한 여성이 유순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행동이 부러웠다. 친구 중에도 새터민인 친구가 상대적으로 과격한? 언어를 씀. 한국에서 여성들이 사용할 수 없는 화법이어서 부러웠다.
- 그러나 북한은 폐쇄적인 공간이어서 다문화 가족에 대한 개념이 없을 것 같다. 한민족에 대한 혈통을 중시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한국의 기존 여성들 열악한 상황으로 들어온 여성들의 인권은 얼마나 더 격하될까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들었다. 통일 문제에서도 여성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거나 퇴보됨.
- 또한 문화적으로 어느 사회가 더 큰 우위를 점하게 되는가에 따라서도 많이 다를 거라 생각. 새터민에 비해서는 한국 사회에 비하면 소수. 남한 사회가 갖고 있었던 이데올로기에 편입되는 방식. 결혼정보업체가 새터민을 소개하는 방식이 말도 잘 통하고 일을 잘한다. 이는 통일이 모든 것을 담지해주지 못함을 의미.
- 또한 남한의 가부장제와 북한의 가부장제는 매우 차이점이 있음. 또한 북한 여성 인권을 논하는 것 자체가 멀리 두고 대화한다는 것처럼 느껴짐.
- 그러나 언어가 같은 것 자체가 많은 교류의 가능성을 열게 됨.
- 현재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으로 여성이 여성을 밀치는 방식이나 운동의 방식에 관한 분열 토론도 존재. 이때에 북한 여성은 어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때에 북한 여성이 논문에서 말한 백인 중산층 여성과 같이 북한에서 특정 위치성을 가진 여성들일수도 있다.
4.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들지만 오히려 시민성에 의해서 규정되는 사람들 ‘디아스포라’.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타자를 경험하면서도 공간에 갇히는 존재. 이는 비자발적인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인생을 타자화된 선택으로 만들었고 그럼에도 도망칠 수 없는 공간에 갇혔다는 것 자체가 혹독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논문에서 자신의 위치를 협상해 가야 된다고 나오는데 협상이라는 단어는 일말의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략이 아닌가. 따라서 이것이 가능한가?
- 공감. 개인이 경계지대를 만드는 것이 한계가 있고 모순된다고 생각. 한국식 다문화주의를 비판하면서 결혼이주 여성들의 며느리, 아내 되기를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고 조장하는 국가주의적 성차별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게 본인도 분석을 해서 이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개인이 협상하고 경계지대를 형성하라는 결론에서 그친 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부족했다는 느낌. 거시적 비판과 미시적 대안만을 요구.
- 비동의. 당장에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 당장에 덜 고통스러울 수 있는 작은 방법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다. 피해자가 더 많은 보호와 득을 받게끔 하는 방법은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협상하는 방법.
- 그렇다면 이주여성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가. 농촌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있는 공간 빈곤한 공간. 안의 폐쇄성.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폭력과 은밀하게 엄폐되는 것들이 있다.
- 반문한다. 여기서 이주여성의 비자발적인 이주를 얘기하지만. 사실 이주여성은 원래 살던 공간에서 주체적이고 교육받은 여성인 경우도 많다. 즉 외부의 시선에서 위치성이 주어지는 부분도 있음. 또한 이주여성도 국적에 따라서 결혼이주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공연예술비자로 들어온 뒤 성매매 여성으로 한국 사회에 유입되는경우가 더 많고 동남아시아 계통의 여성의 경우 결혼 이주 하는 경우가 많음. 국적에 따라서 이주여성의 삶도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주여성에 대해 생각되는 이미지가 노동하는 여성보다 결혼 이주 여성만을 상상하는 점.
- 또한 돈이 모이면 송출국에서의 변화. 그들의 주체성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 경계지대의 재구성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의 행위를 넘어서서 어떤 변화나 저항을 만들어낼 수 있지 라는 생각. 하나의 변화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