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지(Grunge)의 기류가 움트기 시작한 미국 서북부도시 시애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남녀의 '코믹 로맨스 드라마', 1992년 작품 <클럽 싱글즈>(Singles)는 감독 카메론 크로우(Cameron Crowe)가 시애틀 그런지에 바치는 경의의 표시이자, 음악이 소재의 일부로 사용된 영화들 중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된 걸작이다.
영화의 작가이며 제작자, 감독을 도맡은 카메론 크로우는 알다시피 미국의 "롤링 스톤"(Rollingstone), "크림(Cream)" 지 등과 같은 음악전문지에 기고한 평론가였으며, 한때는 뮤지션이기를 자청했을 만큼 음악적 유전자를 타고난 인물. 1983년 록 밴드 하트(Heart)의 금발 여성 낸시 윌슨(Nancy Wilson)과 결혼한 카메론은 1980년대 메탈의 성지 LA뮤직 신(scene)과는 다른 풍토를 지닌 시애틀 음악계를 무대로 한 영화를 1980년대 중반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지가 상업적으로 폭발한 1990년 초반에 완성을 보게 된 셈. 영화는 그런지 록의 발원지인 시애틀(Seattle)을 무대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독신남녀들의 사랑과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카메론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미국 신세대 청년들의 애정과 일상의 관념의 세계를 조명해내고자 한 것.
캠벨 스콧(Campbell Scott)의 스티브 듄(Steven Dunne)과 키라 세드윅(Kyra Sedgwick)의 린다 파웰(Linda Powell), 그리고 맷 딜런(Matt Dylan)의 클리프 폰시어(Cliff Poncier)와 브리짓 폰다(Bridget Fonda)의 자넷 리브모어(Janet Livemore), 두 쌍의 청춘남녀 커플을 중심으로, 이들이 자아내는 낭만적 분위기와 유쾌한 대사가 조화로운 극은, 현대적이고, 초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한편, 극의 무대인 시애틀 사운드가 도처에서 넘실댄다.
시애틀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아티스트들의 음악으로 사운드트랙이 구성됐을 뿐 아니라, 주연배우인 맷 딜런(Matt Dylan)은 치렁치렁 긴 머리의 록 뮤지션으로 나와 극의 사실감을 더했다. 그의 밴드로 출연한 배우(?) 역시 보컬 에디 베더(Eddie Vedder)가 이끄는 밴드 펄 잼(Pearl Jam)이라는 사실. 게다가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모습도 언뜻 볼 수 있어 팬들에겐 더없는 기쁨을 선사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시애틀 그 자체임과 동시에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1982년 시애틀에서 결성돼 터줏대감 격인 밴드 사운드가든과 리드 보컬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은 그 선봉장. 초기 헤비메탈(Heavy Metal)의 영향을 극명히 드러내는 둔중한 기타 리프(Riff)의 반복 악구와 베이스(bass) 반주 그리고 드럼(drum) 타악을 앞세운 'Birth ritual'과 매력적인 어쿠스틱 발라드 'Seasons' 두 곡으로 사운드가든이 기여했고, 이어서 1987년 결성돼 헤비메탈과 허무적인 몽환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가 그들의 1992년도 앨범 <Dirt>의 'Would?'를 헌사했다.
그룹 너바나(Nirvana)와 함께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의 쌍두마차 중 한 그룹인 펄 잼과 그들의 전신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연주와 노래도 반갑다. 전형적인 미국의 하드록을 구사하는 펄잼의 'Breath'와 'State of love and trust' 그리고 마더 러브 본의 'Chloe dancer/crown of thorns'(1990)가 바로 그것, 1988년 결성된 그룹 머드하니(Mudhoney)는 피곤해 보이는 마크 암스(Mark Arms)의 보컬과 이펙터를 이용한 퍼즈 톤(Fuzz tone)의 기타가 신경질적으로 시애틀 록의 거만함을 질타하는 'Overblown'로 사운드트랙에 동참했다.
헤비 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펑크 밴드 스투지스(The Stooges)의 기타리프를 재구성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스크리밍 트리스(Screaming Trees)는 'Nearly lost you'로 대열에 합류했다.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Psychedelic)과 1970년대의 하드 록(Hard Rock), 1980년대의 펑크(Punk)를 혼합해낸 융합적 사운드질료가 압권. 그리고 1979년 결성된 게라지 펑크 록 밴드 리플레이스먼트(Replacement)의 리드 싱어였던 폴 웨스터버그(Paul Westerberg)가 1991년 그룹을 해체한 뒤 단독(solo)로 전향해 첫 발표한 싱글 2곡을 쾌척했다.
유일하게 시애틀이 아닌 시카고 출신의 밴드인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리더 빌리 코건(Billy Corgan)의 시적인 가사와 보컬이 두드러지는 'Drown'을 실었다. 그 또한 시애틀 출신으로 1960년대를 호령한 블루스의 혁명아 이자 전기 기타 사운드의 대안을 제시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May this be love'와 하드록 그룹 하트(Heart)의 두 자매 앤 윌슨(Ann Wilson)과 낸시 윌슨(Nancy Wilson)이 재해석한 'Battle of evermore'는 그야말로 특전.
사운드트랙에 실린 'Battle of evermore'는 가장 많이 애청되는 노래인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최고 걸작 4집 앨범에 수록된 명곡. 록의 원류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앤과 낸시가 결성한 밴드 러브멍거스(The Lovemongers)가 하드록의 전설 레드 제플린의 명곡을 리메이크해 영화음악앨범에 수록, 시애틀 출신 아티스트로서 영화 배경무대의 사운드에 중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영화의 사운드트랙에는 블루스와 재즈의 거장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Little girl'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Blue train'이 사용된 것을 비롯해, 'Three days'의 제인스 에딕션(Jane's Addiction), 'Dig for fire'의 픽시스(Pixies), 'Heart and lungs'의 트룰리(Truly), 'Radio song'의 R.E.M.이 그런지 사운드 지원에 나섰다. 영국출신 그런지 밴드 더 컬트(The Cult)의 'She smells sanctuary', 샌프란시스코 출신 펑크(funk) 소울(Soul) 밴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의 넘버 원 히트 송 'Family affair'도 간과할 수 없는 사운드트랙.
시애틀을 무대로 한 음악영화 <싱글즈>의 사운드트랙은 줄거리, 배경등의 영화 구성과 논리적 응집력이 탁월하다. 기록영화와 같은 사실적 느낌을 정확히 전달했을 뿐 아니라, 지구촌 인디 록 마니아와 편견 없는 하드록 팬들, 그리고 주류음악 팬들에게까지 영화음악으로서 새로운 얼터너티브(대안)를 제시했다. 이는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 대중 문화 속으로 관통하고 들어간 획기적인 사건의 중대시점을 시사함과 동시에, 더 광범위한 국가적 의식 속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시애틀 그런지 현상을 적절하고도 효과적으로 포장한 '오브제'(Obje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록곡-
1. Would? - Alice In Chains
2. Breath - Pearl Jam
3. Seasons - Chris Cornell
4. Dyslexic Heart - Paul Westerberg
5. Battle Of Evermore - The Lovemongers
6. Chloe Dancer / Crown Of Thorns - Mother Love Bone
7. Birth Ritual - Soundgarden
8. State Of Love And Trust - Pearl Jam
9. Overblown - Mudhoney
10. Waiting For Somebody - Paul Westerberg
11. May This Be Love - Jimi Hendrix
12. Nearly Lost You - Screaming Trees
13. Drown - Smashing Pumpk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