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오리건 주에 라즈니쉬 시티가 세워졌다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개인비서 쉴라와 산야신들 그리고 주변 마을 사람들의
서로 상반되는 인터뷰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법무장관이 라즈니쉬 공동체 해체를 결정하게 된
가장 주요한 논점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이었습니다
정부가 시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하는데
거꾸로 종교가 정부를 주도하면서 다른 자유를 제한하고
합법적인 절차는 그저 요식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설립되었어도 무효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진짜 이유는 오쇼 공동체의 일상이
기독교 국가에서 용인될 수준을 이미 한 참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너무 빨리 너무 큰 규모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마치 파괴의 춤을 추는 칼리처럼, 그 압도적인 혼란이 두려웠을 테지요
종교와 거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미국 헌법은
그저 양날의 칼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양측 주장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종교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오쇼는 '탈종교'를 주장해왔지요
종교는 괜찮지만 종교 사제는 필요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괜찮지만, 부처를 추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카피품만 될 뿐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문제는 늘 종교 사제 즉, 대리인이 일으켜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래서 오쇼는 누군가를 숭배하고 추종하지 말고
개개인이 자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탈종교'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이미 권력과 정치에 길들여져서
그저 숭배와 추종만을 일삼는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결국 기성 세대와 종교 관념, 권력층의 두려움이
라즈니쉬 시티를 직접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오쇼의 두문불출과 개인비서 쉴라에게 집중된 권력이
오히려 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종교화와 권력화가 다른 종교와 다름없었던 것이지요
아무리 컨텐츠가 좋았어도 하드웨어는 똑같았던 셈이지요
역설적으로 조금만 더 천천히 진행되고
그 변화(?)가 조금만 더 작은 규모였다면
어쩌면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치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한없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지요
결코 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이지만은 않은
잔인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관용을 베풀기에는 너무 많이 나갔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래도 라즈니쉬 시티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쉽기는 합니다
그저 월드스타의 공연을 지켜본다는 정도라면 어땠을까요?
어차피 삶이 '쇼'라면 재밌는 볼거리가 하나 사라진 셈이네요
첫댓글 적과 싸우다보면 적을 닮아가게 되고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또한 숭배 자체가 독과 같으며
오쇼도 노망날 수 있고 죽음 앞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실제로 오쇼에게도 명암이 있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몸을 입고 있는 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오쇼는 개인비서 쉴라를 잃었던 것이 아니고
책임을 방임하고 쉴라 뒤에 숨어 있었을 뿐이죠
하나의 이론이나 기법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서로 다른 이론과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니까요
공동체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모순은
헌신과 숭배 때문이자 권력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숭배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도 없지만
숭배 받지 못할 인간 또한 없습니다
숭배화가 곧 '종교화'이자 '비자각'(非自覺)입니다
'탈종교'를 주장하면서도 숭배를 즐기고 방임한다면
이율배반적인 변덕에 지나지 않겠지요
인도나 인도에서 시작한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돌(?)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더군요
오쇼도, 쉴라도, 하시아도, 산야신들도
목이고 팔이고 돌과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저는 그 흔한 시계나 반지 하나 끼고 있지 않습니다
한 때 필요에 의해서 끼거나 차고 있던 적은 있었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거나 지속되지는 않더군요
제게는 차는 차이고 집은 집이고 돌은 돌일 뿐입니다
빛이 나는 돌이든 그렇지 않든 돌은 돌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자유와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저 저는 돌과 친하지 않을 뿐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주는 기쁨중에 하나인 찬찬히 살기.
일년을 벼르다 무의식의 똘기가 발동
여름 밤 다큐를 보고 밤새 뜬 눈을 세웠어요.
처음
책으로 오쇼를 접하고
타로 카드로 오쇼를 느끼고
타큐(영화) 를 보며
마지막 장면
개인 비행기(제트기) 를 타고 오쇼는 어디로 갔을까?
저 스스로에게 이원론적 삶의 잣대가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뜨거운 여름 지렁이 처럼 살아봅니다.
어느 지점부터
쉴라의 저 테도
저 심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은 저를 보게 된 다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