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해를 정리하던 작년 말 창천교회 구자경 목사님께서 책 한 권에 편지를 담아 보내오셨다. 이제 곧 은퇴를 앞두신 목사님의 편지글에는 지난 45년여간의 목회 여정을 ‘은혜’로 갈무리하며 지난날 함께 삶을 엮어온 귀한 인연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편지와 함께 보내주신 책은 동화책이었다. 목사님께서는 작년 한 해 ‘함께 하는 삶’에 대해 가슴 뜨겁게 느끼며 감동을 받은 책이라 주저없이 택했노라고, 책 속에 담긴 내용이 당신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읽어주기를 바란다며 이렇게 책을 보내주신 것이다.
길지 않은 동역의 시간을 소중한 인연으로 삼고 늘 마음을 나누시는 목사님의 세심한 손길과 마음씀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일전에도 편지와 함께 <마을의 진화 : 산골 마을 가이야마에서 만난 미래>(웹진 평상 53호)를 보내주셔서 마을목회를 꿈꾸는 필자에게 소중한 꿈과 희망을 선물해주신 고마운 기억이 남아 있다.
몇 해 전 페이스북에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를 검색해본 일이 있다. 무심코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 가운데 ‘함께’라는 단어가 월등한 수치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글을 쓸 때면 자연스레 ‘함께’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나의 평소 지향과 무관치 않다. 근원에 대한 물음을 하면 할수록 어김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단어가 ‘함께’이다. 구자경 목사님이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함께 하는 삶’.. 이는 나의 평생의 지향이기도 하다.
간만에 읽는 동화여서인지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길지 않은 시간 책을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이후 긴 여운으로 인해 한동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2.
동화는 이름 없는 어린 펭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동화 『긴긴밤』은 버려진 작은 생명을 곁에서 지켜주고, 그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려고 온 생애를 걸었던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땅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이들만 가득한 세상이라면 세상은 벌써 지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이만큼 살만한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떠받치려 자신의 온 생애를 내던진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 삶이 이어지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애정과 손길이 수없이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여 동화 『긴긴밤』은 멋지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백마 타고 온 영웅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의 삶에 오밀조밀하게 엮여 있으면서 서로의 생명을 북돋아 주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 생명을 살리고자 긴긴밤을 지새우며 애태우는 이들이 있다. 함께함의 가치를 아는 이들의 삶은 세상을 훈훈히 데우는 장작과 같다. 이들이 있어 세상은 따뜻하다.
노든..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흰바위코뿔소..
코끼리 고아원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이 코끼리인지, 코뿔소인지 알 수는 없지만 큰 근심 없이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던 노든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 나서라고 권면하는 할머니 코끼리의 조언을 듣고 자아를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다.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자아를 찾아 나서는 고달픈 여정을 선택하고 코끼리 무리에서 나온 노든은 아내를 만나 예쁜 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총을 든 인간들이 그들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리고 만다. 노든은 인간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불면의 긴긴밤을 보내게 된다. 절망과 분노에 찬 노든에게 생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준 소중한 인연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되면서, 노든은 이들과 의도치 않은 동행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밝고 활기찬 성격의 소유자로 노든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준 코뿔소 앙가부, 동물원에서 태어나 서로의 아픔을 메워주며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는 펭귄 친구들 치쿠와 윔보, 그리고 이들이 품기 시작한 검은 반점의 버려진 펭귄알, 그곳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새끼 펭귄.. 비록 이 소중한 인연들이 죽게 되고 노든과 새끼 펭귄만 남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노든은 그들의 삶의 몫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인간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있던 노든에게 생의 의미를 끝까지 붙잡게 해준 것은 이 소중한 인연들이다. 노든의 삶은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느닷없는 불행의 수렁에 빠져들 때, 그의 소중한 인연들은 그의 손을 붙잡아 준다. 그들은 이내 운명 공동체가 되어 너의 꿈이 나의 꿈이 되고, 나의 꿈이 너의 꿈이 된다. 노든의 삶도 처음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떠난 여정이었지만 이제는 검은 반점이 있던 알에서 태어난 새끼 펭귄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여정으로 바뀐다. 눈앞에 어떠한 시련과 낙관이 펼쳐져 있더라고 새끼 펭귄을 바다로 보내기 위해 그는 지친 몸을 일으켜 걷고 또 걷는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조차 노든의 곁에 남아 있으려는 새끼 펭귄의 등을 떠밀며 바다를 향해 끝까지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자신은 초록빛 지평선이 있는 초원의 바다에 머물고, 새끼 펭귄은 파란 수평선이 있는 푸른 바다로 나아가게 한다. 노든은 새끼 펭귄이 바다에 이르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바다를 만나 그 속에서 여러 펭귄들과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그의 미래를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언제든 내 곁에 있는 이들을 목적이 아닌 아무렇지도 않게 수단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노든의 삶은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그 의미를 알려준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도 참 의미있는 일이지만 너의 꿈을 위해 삶을 투신하여 끝까지 동행하는 것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이 아름다운 동행은 우리가 표면적으로 생각하듯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다. 이를 위해 노든은 수많은 밤을, 그 긴긴밤을 하얗게 지새워야만 했다. 누군가의 꿈을 이루어준다는 것은, 누군가와 동행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책임져준다는 것은 이토록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이토록 어둡고 긴긴밤이 지나야만 새벽 영롱한 별빛과 통 터오는 미명을 마주할 수 있다. 누군가 ‘아름다움’은 ‘앓음 다음’이라 했다. 질퍽대는 세상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갈지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희망이다.
3.
동화 속 긴긴밤은 아픔과 고뇌의 시간임과 동시에 사연 많은 가녀린 생명들이 서로 의지해 상대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던 소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긴긴밤은 철저한 외로움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 서로를 채워가며 꿈이 영글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외롭고 힘겨운 긴긴밤이 있다. 이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한숨과 절망으로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이의 삶을 끌어안고 그가 굳건히 일어서도록 안간힘을 쓰는 격려와 위로의 밤일 수도 있다. 저마다 애달프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 외로움에 지쳐갈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다시금 힘을 내어 일어설 수 있는 고난의 연대, 사랑의 연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잘 산다는 것은 이름 하나 세상에 남기는 데에 있지 않다. 새끼 펭귄은 노든과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 때 나중에 수많은 펭귄 중에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이름을 지어달라 하지만 노든은 끝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노든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99)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보냈기에 그의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 봐도 그의 기분이 어떤지,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리라.
난 지금 그의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 봐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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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교회연구소 웹진 평상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peacechurch2014.creatorlink.net/forum/view/804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