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바꿔버리고 싶을만큼 개똥문중으로 전락한 단양우씨의 모든 종인들에게 올림니다.
훌륭하신 양호당 조상님의 핏줄을 이어 받은 자손 중에 극히 일부 똥개같은 돌연변이 종인이 문중일을 보더니
1, 1700년경에 경상도 풍기군의 무연고 묘에서 문희공 우탁의 지석을 발견했다고 속여 묘 아래 남의 토지를 강탈한 단양우씨 우탁의 가짜묘 사기사건, 1701년에 부임한 풍기군수 우사신이 픙기군에서 벌어진 가짜 우탁 묘의 사기사건을 척결하였다.
풍기군수에 의해 사기사건으로 척결된 이 풍기의 가짜 우탁묘를 우종호님은 우탁의 진짜묘라고 2024년에 그가 출판한 천년사에 기재하였다. 명색이 예안군파 종친회장과 단양우씨 대종회장을 지내신 분의 문중역사에 대한 지식이 이정도로 수준이 낮다.
전임 대종회장 우종호님은 판서공파 전체를 무지랭이 문중으로 비하시키고, 단양우씨문중을 똥개수준의 문중으로 전락시킨 죄인이다.
2, 1754년에 판서공파를 모독하고 단양우씨 전체를 똥개문중으로 전락시킨 판서공파 우명구는 근거도 없이 “문희공 우탁은 아들이 없어 적성군 우길생을 우탁의 대를 잇는 아들로 삼았다.”고 대구보에 기재하였다.
성호 이익선생의 문하생 대재학공파 우징태 조상님이 우명구를 향하여 “조상의 이름을 팔아서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잔손교악한 자손”이라는 질타를 하였다. 이후 조상바꿔치기 환부역조를 저지르려는 패륜은 똥개만도 못한 극히 일부의 후손들에 의해서 1866년까지 112년 동안 물밑에서 은밀히 진행하였다.
3, 1860년경에 대제학공파를 모독한 우항모 등 똥개같은 후손이 이방원이 왕으로 재직 중이던 1402년에 발급받았다는 가짜 안정공 우홍강의 호적문서(안정공장적)를 날조 조작 위조하여, 적성군 우길생을 우탁의 대를 잇는 양자라고 1866년에 간행한 단양우씨족보 배천보에 기재하였다.
똥개만도 못한 우항모는 근거도 없이 단양우씨 최초 족보 예안보가 잘못되었다고 유언비어까지 곁들였다.
위조한 가짜 안정공장적(우홍강 호적등본)은 지금도 양호당 후손 문중에 있다. 위조이므로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진짜라면 매우 진귀한 조선 개국초기의 호적문서이므로 이미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것이다.
4. 1893년에 단양우씨족보 한성보를 간행하면서 예안군파를 모독한 예안군파 우명구 등의 개망나니들은
가, 단양우씨 최초 족보 예안보의 발문을 조작 변조하여 이를 근거로 예안보 전제를 잘못된 족보라고 비하하였다,
나, 한성보의 서문과 발문 및 조선의 형조에서 간행한 ‘추조결옥록’에 의거하면 우명구의 사주를 받은 우규정이 조선의 마지막 왕(순종은 마지막 황제) 고종이 어가를 타고 문묘 배향을 위하여 성균관 문묘로 행차 중인 어가 행열에 소란을 피우며 방해한 격쟁죄인으로 체포되어 의금부에 수감되어 조사를 받았다.
격쟁죄인 우규정에게 고종이 “단양우씨 족보가 잘못 간행되었으니 다시 간행하라.”는 왕명을 내렸다고 종인들을 겁박하여, 적성군 우길생을 문희공 우탁의 '친아들'로 둔갑시켜 한성보에 기재하였다.
1866년 배천보 때는 호적등본을 위조하여 우길생을 우탁의 ‘양자’로 기재. 1893년 한성보 때는 단양우씨 최초족보를 조작하고 왕명까지 사칭하여 우길생을 우탁의 ‘친자’라고 족보에 기재한 양호당 후손의 극히 일부를 어찌 개망나니 똥개라고 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조선 개국초기에 발급받았다고 날조한 위조 호적문서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으면서 조선 말기에 받았다는 고종왕명 관련문서는 진짜는 커녕 위조 문서마저 존재하지 않으므로 위조된 근거조차도 없이 고종 왕명을 사칭한 것이다.
5, 1917년 회인보 간행 당시에는 안정공파를 모독한 안정공파 우홍진이 왕실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된 등과록 국사에 문희공 우탁이 양호당 우현보의 할아버지라고 기재되어있다고 날조하면서 우길생을 우탁의 ‘양자’와 ‘친자’라고 기재하였다.
세상에 ‘양자’이면서 ‘친자’인 자손이 있을 수 있는가?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된 등과록에 기재된 “우현보의 할아버지는 우칭, 증조할아버지는 우천석”이다. 의심스러우면 확인하시라!!
6, 1966년에 간행한 대전보 간행 당시에 안정공파 문중에 똥칠을 한 안정공파 우호익 등의 개망나니 등은 담양부사를 역임한 우귀령이 1552년에 병사하여, 1560년에 여주에 건립한 우귀령의 묘비를 400여년이 지난 1960년경에 발견하였는데, 이 묘비에 양호당 우현보의 할아버지가 문희공 우탁으로 새겨져 있다고 날조하였다.
그러나 여주 우귀령의 묘비를 현지에서 확인한 결과 1560년에 건립했다는 우귀령 묘비는 단기 4289(서기 1956)년에 건립한 우귀령의 비석이였다.
또한 예안군파 족보에 “1552년에 담양부사를 재수받아 재직중 병을 얻어 1552년 가을에 여주로 돌아와 별세하였다.”고 기재하였다. 그러나 담양군지에서 역대 담양부사 군수 명단을 확인한 결과 1548~1550년의 담양부사는 자인대부 박수량, 1550~1551년은 가선대부 오겸, 1551~1554년은 통훈대부 이삼준, 1554~1559년은 통훈대부 이세무가 재임했다.
1552년에 담양부사를 했다는 우귀령은 눈을 씻고 들여다 봐도 없다.
훌륭하신 조상 우현보의 후손 중, 극히 일부의 개망나니 후손이 우길생을 우탁의 양자 또는 친자로 족보에 기재하기 위하여 사용한 근거자료들을 확인하면, 모두 거짓말을 꾸며 만든 가짜 자료이거나 근거 자체도 없는 것들 뿐이다.
애완견도 확실한 근거에 따라 작성한 개의 족보에 기재된 핏줄(종통)을 중히 여겨 밝힌다.
하물며 단양우씨족보 핏줄(종통)이 1866년이래 단양우씨 족보 대동보와 양호당 자손의 5개 개파의 족보에 기재된 종통(핏줄)이 애완견의 족보만도 못한 똥개수준이니,
단양우씨 10개 계파에 대하여 어찌 똥개의 개똥만도 못한 문중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대종회 회장, 종친회장들이 과연 무엇을 하는 종인들인지?
조상탓으로 돌리거나 1866년이래 지금까지의 개망나니들의 관행을 답습한다면?
환부역조 즉 조상을 바꿔치기한 족보를 폐기하고 종통(바른 핏줄 : 우현보->우길생->우칭->우천석)을 바로 세운 단양우씨족보를 다시 간행하지 않는다면?
대종회장 종친회장 종친회 임원들은 문중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지랭이적인 처신으로 인하여 개망나니 똥개 수준의 문중과 똥개 수준의 종인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 없다.
단양우씨 역사에 무지몽매한 무지랭이들이 단양우씨 문중의 감투를 쓰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본인은 단양우씨 성을 바꾸고 싶다.
훌륭하신 양호당 우현보 조상님의 똑똑하고 성실한 절대다수의 존경받아야하는 후손들이 종친회와 대종회의 무지몽매한 임원들이 애완견의 개족보만도 못한 1866년 이래 간행된 단양우씨족보를 떠받듬으로써 성실한 단양우씨 모든 종인들을 똥개문중 후손이 되도록 방치하면서 모독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남의 일 보듯하는 단양우씨의 모든 종인 역시 똥개문중의 종인이라는 비난을 받아마땅하다.
하루 속히 똥개수준의 족보를 패기하고 단양우씨 문중다운 올바른 족보를 간행해야할 의무가 모든 단양우씨 종인들에 있다.
현재의 대종회장과 각 계파의 종친회장들은 각성하시고 올바른 새로운 족보를 간행하셔서 문중의 혈통[종통)을 바로세워 진정으로 화목한 단양우씨문중으로 환골탈퇴시기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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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게속해서 파혜처 주시기 바랍니다
꼭 승리 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향 등의 회의 때 왜 입을 다물고 계시는지? 저는 종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단양우씨 상계에 대한 나쁜 이야기가 아직도 이어진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자기부모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부모로 섬기는 패륜은 또 무었인가?
8세손 우탁 조에는 아드님 원광, 원명 형제분이 계시는데 왠 길생 조를 양자로, 더 이상 패륜은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8세조 우탁 조 묘소가 지석이 발견되어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묘소로 이어져 오는데 왠 묘소란 말인가?
일부 허황되고 날조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향 등의 회의 때 왜 입을 다물고 계시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 대종회장은 물론
단양우씨 문중 각 계파의 종친회장님들 및
대종회장을 역임하신 우종호 종인님께서 이 글을 꼭 읽으시기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