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와 함께 하는 삶 / 이관순
한달 여 전부터 팔꿈치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관절에 석회가 끼었다고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어제가 마지막 치료를 받는 날이어서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다. 차 안에서 남편은 뜬금없이 요즘이 자기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말하며 나는 어떠냐고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며 이유를 물어보니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는 현재가 60평생에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하긴 나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2년 전 첫째 망고를 입양하고 10개월 전에 둘째 자몽이를 입양한 뒤 우리 집은 매 순간이 경이로운 신세계였다. 우리는 두 아이가 만들어내는 신비롭고 놀라운 일에 감탄하며 그들이 선사하는 웃음에 행복해 했다. 퇴근하고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이 얘들이 주는 기쁨에 고마워했다. 어느 덧 고양이가 우리 가정에서 중심이 되었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동물의 세계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동물은 동등한 관계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양이가 영물이라며 어떤 이는 신기하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소름 끼친다 말하지만 두 가지 다 인간의 시각에서 하는 말일 뿐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이다. 생명인 개체로서 특성을 존중하고 고귀함을 인정해 주자는 말이다.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다 그렇듯이 그들은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고 그 특성에 적합한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을 위해 음식물을 섭취하고 종족을 번식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첫째인 망고는 성묘가 되면서 부쩍 몸이 자라더니 수컷답게 늠름하고 장대한 기골을 갖추게 되었다. 벵갈 고양이는 삵과 교배하여 태어난 종이라는 말을 어디서 줏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행동이 민첩하고 날쌔기가 이를 데 없다. 그에 반해 자몽이는 데려올 때부터 아기손바닥만한 것이 어찌나 작고 애처러운지 함부로 만질 수 조차 없는 아이였는데 자라면서 팔다리가 길쭉길쭉 여리여리한 것이 천상 암컷다운 용모로 예쁘게 자라나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과 수컷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여러모로 참 미숙한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 수가 적고 부끄러움이 많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늘 혼자일 때가 많았다. 대학생이 되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어디에 가서든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항상 고민이었는데 이럴 때마다 머리를 굴려 대화를 연습하며 해결해야 했다. 이런 내가 참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는데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도 이런 성격은 잘 고쳐지지가 않았다. 배우자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더니 그래서인지 성격좋고 넉살좋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런 성격은 아이들 양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두 아들은 운이 좋게도 무뚝뚝한 나를 닮지 않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아빠를 닮아 간혹 나를 잘 웃겨주고 마음을 살뜰히 살펴주기도 하니 기특할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 내가 이 만큼이라도 잘 살고 있는 것은 모두 남편덕이다. 미숙한 나를 누구보다 최고로 여기며 힘이 들 때마다 용기를 주었고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길 때도 남편이 옆에 없었으면 그 힘든 시간을 어찌 이겨 낼 수 있었을까?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입을 열지 않는 내 성격은 교사가 되어 의도치 않게 말을 해야하는 상황 덕분에 조금씩 변하게 되었는데 점차 나이 들면서는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세월의 두께만큼 변화되고 성숙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30-40대 때 아이들 낳고 기르느라 24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 때는 타고난 성격 탓에 남편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넬 줄 몰랐는데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면서 살가운 여자로 거듭나고 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도 많은 수다쟁이가 되가고 있는 것이다. 남은 인생은 남편과 냥이들과 함께 망고 자몽의 집사로서 행복한 시간을 누리며 살고 싶다. 이 아이들이 우리 집을 선택한 만큼 행복한 삶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수업시간만 되면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나 경험했던 얘기가 나오면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농장이나 고부해 같은 프로그램은 반드시 본 방송을 사수해야 하고 어쩌다 그 시간을 놓쳐 못 보면 재방송까지 챙겨 볼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남편이 얘기했듯이 집사로서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망고 자몽이 나의 반려묘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 차 오른다.
첫댓글 망고, 자몽이 사진 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