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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y (운명 運命)-05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죄스러움이나 아쉬움 미련등은 전혀 없었다. 삶은 두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무 귀하다. 나도 내 삶을 살아야 할 고유한 내 인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제는 그것을 실현할 것이다. 내 앞날이 평탄하지 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이므로.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변화에 대한 충격을…
처절한 아픔일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절실함과 가치는 더욱 소중할 것이다. 그녀는 제임스를 만나지 않기로 하였다. 운명이 정말 그들을 연결지어주려 한다면, 다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믿었다. 운명은 숱한 형태와 이름으로 찾아 올 것이다. 그녀가 모를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아 잡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운명이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로 오고 갈 것이다. 다만, 바른 운명을 잡기 위하여 준비를 하여야 함을 그녀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받을 운명. 그 운명을 위한 준비가 무엇인지 알고 꾸준히 심신을 닦아 두는 것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토론토까지로 한 사람 예약하려 합니다. 내일 출발할 수 있을까요?”
“목요일은 특별기만 운항하며 자리는 다 예약되었습니다. 손님. 꼭 가시려면 오늘 밤 비행기에는 자리가 있네요. 어떻하시겠어요?”
다행이도 수요일 밤 늦게 출발하는 비행기는 여유가 있어 예약이 되었다. 지금 출발하면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서울도착 KTX를 탓다.
이것도 운명의 하나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 이러한 만남에 대한 준비는 없었다. 그러기에 어쩌면 이것이 운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준비하지 않았기에 받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관계로 사그러 질 것이므로. 딸과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은지 이제 4년이다. 그 후 목적없이 혼자서 잘 살아왔다. 무엇때문에 준비를 한단말인가.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준비라는 것이 어떻게 스스로 각성시키고 계획하게하고 단련하게 한단말인가.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만, 미정의 난처한 상황이 걱정되었지만, 그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도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돕는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독히도 일이 안 풀렸다
생각지도 않은 기쁨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파산이었다
운명이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지독히도 안 풀렸다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안녕
우리의 관계여
*****
“체이스님 부탁합니다.”
그가 저녁을 마치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 벨이 울렸다. 젖은 손으로 전화를 들자 한국말로 체이스를 찾았다. 동생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접니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서울의 파랑새 출판사 김이현입니다. 주무시는 건 아니시죠?”
“잠 잔다고 전화 끊을 겁니까? 아직 자지는 않지만 설겆이하는 중입니다. 말씀하십시요.”
“선생님!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25일 작가 싸인회에 참석해 주셔야 겠는데요. ‘그들의 전쟁’의 예비독자들이 작가님을 찾는데요. 판매서점들에게서도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회사가 우선 스케쥴을 먼저 의논없이 잡았습니다. 날짜 변경이 꼭 필요하시다면 다시 조정하겠지만, 선생님! 꼭 참석해 주십시요. 그 날은 토요일입니다.”
*****
미정은 이혼 후 혼자 살며 꾸준히 그 동안 써둔 시들을 정리하여 제 2시집을 냈다. 그녀가 쓴 시들은 모두가 사랑시였다. 미정은 체이스를 잊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메일도 전화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 외는 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직 그리움과 보고픔의 긴 세월속에 절실하고 애절한 시를 썻다. 그녀의 진솔한 가슴속의 사랑은 한줄 한줄 처절하고 순정한 아름다운 사랑시로 표현되어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제목은 ‘바람같은 사랑’ 이었다. 그 책에 실려진 시들은 의외로 반응이 좋아 출판사로부터 독자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출판사의 계획에 따라 25일 아침 일찍 서울 강남구의 무역센타 지하에 있는 대형 서점인 대한서점으로 가서 싸인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어젯밤에 약속해 둔 딸 은희에게 전화를 했다.
“은희야. 엄마다. 어디니?”
“응. 엄마. 나 엄마네 집 앞에 다 왔어. 문 열어줘.”
미정은 얼른 전화기를 두고 아파트 대문을 조금 열어두고 안방의 거울앞으로 갔다. 사실, 그녀는 이런 외출은 처음이어서 어떤 옷이 어울릴지 감을 잡지 못하고 마음만 급해지고 있었다.
“엄마! 나 놀랐어. 엄마가 이렇게 이쁜줄 오늘 또 알았네. 내 엄마가 맞아?”
은희가 열어 둔 방 문앞에서 놀라는 말에 돌아보는 미정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금방 붉게 물들었다 사라졌다.
“은희야. 엄마 이런 차림으로 가면 괜찮을까 모르겠다.
네 생각은 어떻니? 솔직하게 말해주려무나.”
“응. 엄마. 사실 조금은 걱정이돼.”
“그래. 어떻게하면 좋겠니?
은희의 걱정된다는 말에 미정은 어쩔줄 몰라 하였다.
“엄마. 이 딸이 걱정하는 것은… 나하고 같이 가면 사람들이 자매가 온 걸로 오해할까 그게 걱정이야. 엄마는 아직 젊어 보이고 딸이 봐도 아름다워. 지금 그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데…”
그 말은 전혀 기분좋으라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은 옷 차림에 생각을 많이 가졌다. 한복은 이미 관계없었고, 정장차림으로 하기에는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은 늘 입는 옷 그대로에서 가기로 하였다. 청바지에 회색 실크 와이셔츠 그리고 그 위에 짙은 청색 덕다운 점퍼를 입었다. 마음도 몸도 편했다. 문뜩 체이스의 말이 떠 올랐다.
“미정아~ 당신은 원래 이쁘고 아름다워.”
지금에서야 이 말이 떠 오르는 것은 무에람. 미정은 피식 헛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거울을 보았다.
이미 그곳 조미정 시인의 싸인회 장에는 젊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중년에서 노년까지의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며 조미정 시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조미정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층이 넓다는 의미였다.
아마도 그들 독자 중에는 시집 표지로 한 그녀의 절묘하도록 균형잡힌 아름다운 얼굴에 현혹되어 찾아와 기다리는 중년층도 많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책에 수록된 사랑시와 표지의 표현하기 쉽지 않은 청순한 중년의 아름다운 모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지금까지 그런 시와 시집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메니아들을 유혹하였음 이리라.
그녀의 좌석은 서점 입구의 밖앗쪽 우측편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4개의 접이식 알미늄 다리가 받치고 있는 긴 아이보리색 테이블위에는 ‘사랑시와 여류시인 조미정’ 이라는 투명한 아크릴 명패에 청녹색 글자로 인쇄된 이름표가 수십자루의 싸인펜과 함께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인쇄 잉크의 냄새가 날 것 같은 자기의 시집을 펼치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제임스. 그와의 사랑이 고스란이 담겨있는 그녀의 사랑시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리운 그였다. 그를 생각하면 금새라도 눈물이 거렁 거렁 맺힐 것 같았다. 이 싸인회가 끝나면 마음을 추스려 그를 찾으리라 이미 다짐한 터였다. 미정은 집 가까운 절에 올라서 부처님께 많이도 빌었다. 운명! 그것. 있다면, 제발 그 사람 나에게 보내 주세요. 그 기도는 그 사이 미정의 불송(佛誦)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천정에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조명을 보며 나직히 속으로 외었다. ‘제발, 그 사람 나에게 보내주세요.’
그녀의 맞은 편에는 그것과 같은 테이블에 역시 수십자루의 싸인펜이 올려져 있어서 어떤 작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테이블에는 오직 싸인펜만 있었다. 향기짙은 장미와 투율립이 탐스럽게 담긴 화분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비교적 화려한 그녀의 테이블에 비하면, 그 쪽은 초라하기까지 하였다. 같은 작가로서 오히려 미안함마져 가진 그녀였다.
오전 11시. 그녀가 테이블의 정리를 마치고 서점 직원이 독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가져 온 책의 빈 공간을 찾아 싸인하도록 펼쳐 그녀에게 넘겨주기 위하여 그녀의 옆 자리에 앉자 기다렸듯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독자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그녀의 시집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들 시간조차 없었다. 연이어 싸인을 기다리는 독자들 속에 그녀와 그녀가 앉은 테이블은 묻혀버렸다.
오전11시 30분에 체이스는 이제는 변해버린 무역센터 역에 내려 겨우 서점을 찾아 입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출판사 직원이 인사하며 자리를 권했다. 체이스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자리에 주인공으로 있는 그런 상황말이다. 16년간 수출 사업을 해오며 쌓은 내공으로 추리소설을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쓰서 팔자는 생각만 하였지 사실 그는 문학이나 소설에 대하여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신문 등의 뉴스매체에 의한 검증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의 영혼을 휘어잡고 있는 그 아지못할 운명에 내 맞긴 채 그 동안의 국내 외에서 쌓은 내공으로 상상하고 추리하여 글을 썻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은 소비자 즉 독자가 자기 돈을 내고 사서 읽도록 하는 상품이므로 돈 값어치 이상은 하도록 하자는 생산본능적 의지는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프로페셔널이어야 했다. 전에는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 생산 작업도 그랬어야 했다. 그래서 완성 후 자기 돈을 투자하여 완성품을 만든 후 독자에게 영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출판사는 그를 대신하여 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영업은 그들 독자에게 책의 내용으로 하여야 한다고 각오하였다. 그리고 오늘 그 결과 중 하나로 독자와 만나는 싸인회의 주인공이 되어 캐나다에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는 제대로 수면도 취하지 못하였고 면도도 하지 못했고 머리도 깍지 못하여 더부룩한 수염과 머리칼로 인하여 더욱 초라한 행색에 등에는 사용한지 오래된 것 같은 검정색 빽쌕을 메고 있었으며, 국방색 필드쟈켓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토론토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차림이었다. 그는 준비된 테이블의 앞 의자에 앉자 곧이어 기다리던 독자들이 이미 지불하고 산 그의 소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이어 출판사 직원이 그의 이름이 인쇄된 명판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장르소설가 체이스 리’ 그는 숨 쉴 시간없이 싸인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그는 허리도 펼겸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맞은 편을 바라보았다. 독자들로 인하여 막혀있던 테이블 사이로 작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자였다.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독자가 내민 책에 싸인을 하고 있었다.
미정은 많은 싸인 작업으로 손가락과 허리가 아팟다. 겨우 틈을 내어 고개를 들어 건너편 테이블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쪽도 많은 독자들이 몰려들어 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독자들 틈사이로 싸인하는 사람의 옆 모습이 얼핏 보였다. 긴 머리칼하며 역시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있는 수척한 얼굴이었다. 나이가 50대 중반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더 볼 수가 없었다. 이쪽 저쪽 많은 독자들이 몰려들어 다시 앞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이다. 이제는 약속한 2시간이 되었다.
은희가 와서 그녀를 점심식사를 위한 식당으로 가자며 이끌었다.
“엄마~ 수고하셨어요. 이제 끝날 시간이 되었어요. 점심도 하셔야되잖아요.”
“응. 은희야. 어서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엄마는 배가 출출해. 이런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긴장해서 온 몸이 주눅든 것 같아.”
“아니예요. 엄마. 잘하시던대요. 아주 멋졌어요. 엄마는 그런 자리가 참 어울려요. 은희 엄마지만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애는… 그걸 아양이라하자. 뭐 먹고 싶은데, 엄마가 쏠께. 알았지?”
“누가 쏘든 , 어서 일어나요. 엄마.”
그 때, 출판사 직원이 끼어들었다.
“쏘는 건 걱정마십시요. 이미 저희가 쏴 놓았습니다. 마감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일어나시죠.”
“엄마. 들었지? 어서 준비하세요.”
그러는 사이 조금 한가한 틈을 타 명패를 내리고 테이블 위를 정리한 후 그녀는 일어나며 앞을 보았으나, 앞 쪽은 아직 몇 몇 독자들에 둘러쌓여 있었다. 그녀는 인사를 할까 하다가 은희가 독촉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자리를 떳다. 그녀는 서점에서 준비한 일식당 ‘더 라버’로 출판사 직원과 딸 은희와 함께 갔다.
체이스는 배가 고팟다. 어제 저녁부터 기내식 외에는 먹은 것이 없었다. 미리 계획되어 있지 않은 한국 방문이어서 심경이 착잡하였다. 미정에 대한 생각이 온통 머리를 채웠고,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계실 아버님이 생각났고, 하마 하마하며 기다릴 어머님이 생각났다. 2년 전 방문 때는 그러한 계획을 세웠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었다. 다시는 쉽게 올 수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지금 이렇게 찾아왔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였는가? 의도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싸인회가 나를 움직이게 하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는 늙었는가 보다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이미 앞 테이블은 정리가 되었고 싸인회가 끝났는 것 같았다. 그 때 출판사 직원이 왔다.
“선생님. 시장하시죠. 이제 마치시고 점심하셔야지요.”
딱히 테이블을 정리 할 것은 없었다. 싸인펜도 거의 다 사용하여 빈 케이스만 남았고. 그 빈 케이스만 들고 나가면 되었다. 그는 빽팩(Backpack)을 메고 그 출판사 직원을 뒤 따랐다.
‘더 라버’였다.
미정은 출판사 직원과 은희와 함께 일식 요리로 점심을 만족스럽게 하였다. 이제는 대전에 있는 은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안산으로 돌아 갈 계획으로 호텔 주차장에 세워 둔 은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입구를 막 빠져 나오는데, 맞은 편에 앉아서 싸인을 하던 그 작가가 검은색 등 중간에 동전 크기만한 빨간 십자가 형태의 로고가 붙은 빽색을 메고 동행인과 함께 일식당 ‘더 라버’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은희야~ 저 사람. 아까 우리 맞은 편에서 싸인하던 작가 아니냐?”
“맞는 것 같아. 차림새를 보니. 왜 저렇게 궁상맞게 하고 싸인회 한답시고 나왔을까? 좀 깨끗하게 하지 않고… 아마, 깊은 산골에서 글 쓰다가 바로 왔는 것 같아요. 여유가 없었겠지요. 뭐.”
은희가 운전하면서 지나가는 듯 말하였다. 미정은 뒤 돌아보며 뭔가 자꾸 잡아 당기는 것을 느꼈다.
체이스는 식사를 허겁 지겁하였다. 그 만큼 배가 고팟기 때문이었다. 체이스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고 있던 출판사 직원이 권하였다.
“선생님. 식사 후 싸우나에 가셔서 목욕도 좀 하시고 이발도 하고 푹 좀 쉬십시요. 3일 후 대전에서 또 싸인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좀 더 깔끔한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합니다.”
“음~ 그래. 고려하도록 하겠네. 원체 타입이 이래서… 내 이런 모습이 추한가?”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고, 아무래도 독자들을 위해서는…”
“알겠네. 무슨 뜻인지.”
“어디에 머물생각이십니까?”
“아직은 계획이 없네. 어쩧던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3일 후 대전의 싸인회는 늦지 않도록하겠네.”
3일 후, 그는 대전에서 제일 크다는 계룡서적에 갔다. 전과같이 입구에는 그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으며 이미 많은 독자들이 책을 사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전과같이 여전하였다. 큰 키에 호리한 몸매 그리고 긴 머리카락과 텁수룩한 수염 그리고 냄새가 날 것같은 국방색 군용쟈켓 아래 청바지 그리고 통가죽의 첼시부츠. 그의 소설책 뒷 표지에 실린 사진과는 정반대 모습이였다.
수요일. 오전10시부터 싸인은 시작되었다. 그는 오후 1시쯤 되자 무릅이 갑자기 부어며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비행기 안에서도 걱정하였던 갸웃(gout)에 의한 관절 통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는 출발하기 전에 가정의에게 사정하여 한국에서 체재할 동안 먹을 약을 처방받아 사서 가지고 왔다. 그는 직원에게 물을 부탁하여 약을 먹었으나 투약시기를 놓친 것이다. 겨우 싸인회를 마친 그는 걸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대전향 종합병원은 거리가 멀고 엠브런스를 보내기를 꺼리는 것 같아서 하기 종합병원으로 하였습니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난처해 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출판사 직원의 주선으로 엠브런스가 왔고, 응급실로 갔다. 그리고 안정을 요한다는 의사의 말대로 2틀간 병실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대전에서의 서점 싸인회는 무사히 끝났으며 출판사 직원으로 부터 다음 계획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두 곳에서의 싸인회로 충분하다 생각했던 것 같았다. 체이스는 이제 편안하게 수면에 빠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