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의 ‘성모의 집’(House of the Virgin Mary)
2010-12-16 12:48:28
에베소의 ‘성모의 집’(House of the Virgin Mary)
성모 마리아는 어디에서 세상을 떠났는가? 예루살렘이라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터키의 에베소라는 주장도 있다. 성모 마리아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예루살렘에 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란 것이 있을수 없다는 주장이다. 어쨋거나 지상에서 성모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예루살렘의 성모 묘소와 에베소의 ‘성모의 집’(House of the Virgin Mary)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에베소의 ‘성모의 집’은 기독교의 성지이다. 그렇다면 성모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가기 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는 말인가? 과연 그러한가? 이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에베소에서 사도 요한과 성모가 살았다는 집
[사도 요한이 모시고 살던 집]
터키의 에베소(Ephesus)에 있는 ‘성모의 집’은 터키어로 메리옘 아마 에비(Meryem Ama Evi)라고 한다.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는 뜻이다. ‘성모의 집’은 에베소 교외의 코레쏘스(Koressos)산 자락에 있다. 코레쏘스는 터키어로 나이팅게일이라는 뜻이다. 주변 경치가 좋아서 그런 이름을 붙인것 같다. 에베소의 ‘성모의 집’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가 기념하는 성지이다.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곳에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도 요한과 함께 지내다가 때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에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갔다고 믿는다. 특히 동방정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이곳에서 영면한후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몽소승천이다.
‘성모의 집’은 숲이 우거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집 앞에는 커다란 고목이 오랜 풍상을 견딘듯 장엄하게 서 있다. ‘성모의 집’의 집으로 올라오면 한쪽 벽에 일반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이 달아 놓은 수많은 기도문이 걸려 있어서 장관을 이룬다. 마치 일본의 신사나 절에 발원문을 종이에 적어 달아놓은 것과 같다. ‘성모의 집’ 옆에는 이 집에서 나오는 물을 수도관을 통하여 받아 먹을수 있게 시설을 해 놓았다. 이 물은 산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물에 있는 물을 길어 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 우물은 성모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이 집에 머물 때에 물을 긷던 것이라는 것이다.
성모의 집 옆에 있는 물마시는 곳.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상의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자 마리아를 세상 떠날 때까지 보살피며 살았다고 한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는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즉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에서 석연치 않은 점은 우선 사랑하는 제자가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일반적인 해석은 사도 요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그 제자에게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제자가 예수의 동생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지만 대체적인 견해는 ‘어머니’라는 것은 일반적인 호칭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보통 친구의 어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편할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셨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자기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사도 요한의 집은 어디에 있었다는 말인가? 일반적인 견해는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에베소의 집은 무엇인가? 성경대로라면 사도 요한은 성모를 자기의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고 이해된다. 성모 마리아를 잘 돌보아 달라고 하는 예수의 당부를 저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에베소의 집이 거론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의 집은 나중에 사도 요한이 지은 집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이런 저런 궁금증을 에베소에 있는 성모의 집을 살펴보며 풀어보고자 한다.
성모의 집으로 가는 길 담벽에 매달아 놓은 기도문(소원문)
한편, 또 다른 얘기로는 막달라 마리아도 사도 요한과 성모 마리아를 따라와 에베소의 이곳에 와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사도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하여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와서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근거 있는 얘기는 아니다. 에베소에 있던 사도 요한은 당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로마 제국의 광산이 있는 밧모(Patmos)섬에 죄수로 잡혀가서 노역을 하며 지내다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신약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묵시록)을 썼다. 그러므로 요한이 밧모섬에서 가까운 에베소에서 살았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으며 또한 성모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성모를 모시고 에베소로 왔다는 것도 짐작할수 있다.
에베소에 있는 성모의 집 내부의 예배처
1881년 10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온 줄리앙 꾸예(Julien Gouyet)라는 신부가 에베소 인근의 야산에서 작은 돌집을 발견하고 무언가 짚이는데가 있어서 그 집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했다. 푸르른 에에게 해가 내려다보이며 한쪽으로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폐허가 보이는 곳에 있는 집이었다. 줄라앙 꾸예 신부는 독일의 수녀인 안네 카테리네 엠메리히(Anne Catherine Emmerich: 1774-1824)의 꿈 얘기를 생각했다. 안네 수녀는 에베소 근처에 와본 일이 없다. 하지만 에베소 인근의 아름다움 숲속에 성모가 세상 떠날 때까지 살았다는 돌로 지은 집을 꿈에 보았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온 꾸예 신부는 바로 그 작은 돌집이 안네 수녀가 꿈에 보았다는 성모의 집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꾸예 신부는 교계에 성모가 살던 집을 발견했다고 보고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후인 1891년 두명의 나사렛 선교회의 선교사들이 에베소에 왔다가 꾸예 신부의 안내서를 보고 코레쏘스 산에 있는 작은 돌집을 찾아갔다. 이들은 폐허가 되어 지붕도 없는 돌집이지만 오랫동안 산속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산속 마을 사람들은 에베소의 초대교회 신자들의 후손이었다. 산속 마을 사람들은 그 작은 돌집이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근거하여 성모가 살다가 세상을 떠난 집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산속 마을 사람들은 그 돌집을 파나야 카풀라(Panaya Kapula)라고 불렀다. ‘지극히 거룩한 예배처’라는 뜻이다. 이들은 매년 8월 15일에 이곳을 순례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날이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그리고 동방의 기독교회들은 8월 15일은 성모승천일로 지키게 되었다.
[고고학적 측면]
고고학자들이 폐허가 된 돌집을 조사한 결과 6-7세기에 건축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집안에서 나온 숯을 조사해 보았더니 1세기의 것이었다고 한다. 1세기라면 성모 마리아의 시기와 맞는다. 현재 이 집의 내부는 예배당으로 꾸며져 있다. 1950년(우리나라에서 북한 공산당의 남침에 의한 6.25 사변이 일어난 해)에 만든 예배당이다. 그후 가톨릭교회는 이 집을 공식적인 가톨릭 순례처로 선포하였다. 새로 지은 예배당은 원래부터 있었던 돌무더기 위에 지은 것이다. 그래서 새건물과 옛날부터 있었던 토대가 확연한 차이를 들어내 보인다.
[진실게임]
로마 가톨릭교회는 에베소의 ‘성모의 집’을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는 것 같다.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1896년 당시 교황 레오13세(Leo XIII)가 ‘성모의 집’을 순례한 이후에는 바티칸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바티칸은 에베소의 집이 성모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일 가능성이 있다는 방향으로 얘기하였다. 1950년 교황 비오12세(Pius XII)는 성모의 승천에 대한 교리를 정의하였다. 이와 함께 이듬해인 1951년에는 에베소의 집을 성지(聖地)로 격상하였다. 그후 교황 요한23세는 이를 재확인하고 이곳을 가톨릭의 영원한 성지라는 특권을 내렸다.
에베소의 ‘성모의 집’은 이슬람에서도 성지로 간주하고 있다. 한편, 성모의 신성을 믿는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집아래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낫기를 간구하였다. 오늘날 이곳에서는 매년 8월 15일 성모의 승천을 기념하는 전례(典禮)가 올려진다.
조르즈 앙리 타바르(Georges Henri Tavard)와 같은 사람은 에베소의 이 집이 성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소아시아의 어떤 도시에 성모가 살던 집이 있다는 주장은 12세기에 나온 것이므로 그런 전해 내려오는 얘기를 무조건 믿을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세계의 교회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대로 ‘성모의 영면과 승천을 얘기한다면 그 장소는 예루살렘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베소를 주장하는 측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예루살렘 설을 반박하고 있다.
첫째, 사도 요한의 무덤과 사도 요한을 기리는 교회가 에베소에 있다는 점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돌보아 달라고 요청하시었다.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에베소 사람들은 전도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비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도시였으므로 이방전도의 목적지였다. 이때에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위해 에베소 교외에 작은 돌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외에 집을 지은 것은 당시 에베소 도읍 안에는 아르테미스(Artemis)신을 숭상하는 집단이 많아서 이들로부터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유명했다.
둘째, 에베소의 성모가 살던 집 위에 세운 교회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모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초대 기독교 시대에는 어떤 성자에게 봉헌하는 교회를 세우려면 그 성자가 살았거나 세상을 떠난 지역에 세우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므로 성모교회를 세운 것도 성모가 실제로 에베소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도 1979년 11월 30일 에베소의 성모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전인 1967년 7월 26일 교황 바오로6세는 에베소의 집이 비공식이지만 성모가 살았던 집이 분명하다고 밝힌바 있다. 교황 베네딕트16세는 2006년 11월 29일 에베소의 ‘성모의 집’을 방문했다. 바티칸이 성모 마리아의 집임을 은연중 공인한 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