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갑자기 밤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프고 불안하여 잠도 못 자고 거실, 방, 마당으로 혼자서 돌아다녔습니다. 너무나 불안해 밤을 새우고 아침에 택시를 타고 광주병원 응급실에 가서 입원하고 주사 맞고 약을 먹어도 10분도 못 자고 깨었습니다. 9층 1인실에 있으면서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편할 것 같아 창문 열고 뛰어내리려고 애쓰고 있다가 간호사에게 들켰습니다. 의료진들은 정신병원 7층으로 옮기던지, 보호자동반 입원할 것인지 권유해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간병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서 괴로워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병원진단은 우울증, 치매였고 정신병동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는데 큰딸이 자기 집으로 나를 데려와 간병을 했습니다. 내가 자꾸 내 옷을 보자기에 싸서 시골갈 거라고 하면서, 새벽에 애들 잠자는 사이에 옷을 제대로 입지도 않고 몰래 나가기도 하가려고도 하였습니다. 서대문 사거리의 차도 한가운데에서 차오기를 기다리면, 딸이 뒤따라 오면서 추우니 집에 가자고 해도 시골에 갈 거라고 고집도 부렸습니다. 한 달이 되어도 머리도 감지 않고, 방구석에다 소변을 보아서 씻으라고 욕실에 가자고 하면 시골에서 씻는다고 고집부리고,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매일 보자기에 내 옷을 싸가지고 애기들 밥을 해줘야 한다며 나가려 하고 자식들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첫째 딸집 몇 개월, 둘째 딸집 몇 개월 있다가, 큰딸이 나를 영성학교에 가자고 했습니다.
마을버스, 전철, 시외버스, 택시를 타고 영성학교에 갔습니다. 오는 길에 멀미를 너무해 고생을 하면서도, 딸이 가자고 하면 영성학교에 갔습니다. 예배시간에 혼자서 돌아다니고, 내 옷이 없어졌다고 이방 저방 찾으러 다녀 딸이 속상해했습니다. 그래도 딸이 영성학교에 가자고 하면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축출기도를 해주셨는데,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것만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조금씩 따라서 예수피를 하기 시작하고 1년 정도 매주 토요일이면 딸, 손자와 같이 영성학교에 갔습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기억이 나고, 밥도 먹고, 매일 딸과 함께 기도의 자리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혼미하고 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주위 친척들이 병문안 와서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종이에 써서 벽에 붙여놓고 매일 외워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몇십년을 했던 주기도문도 못 해서 매일 외우고 또 외웠는데도 못 외웠습니다. 길을 잃어버리니, 밖에는 나가지 못하고 항시 옆에 보호자가 지켜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길을 잃어버릴지 모르니 큰딸이 목걸이를 채워주었습니다. 아이들 핸드폰 번호, 이름 써서요. 그렇게 해준 것도 모르고, 바보가 되어 하루하루 살면서 오직 죽고픈 생각뿐이었습니다. 다시 큰딸 집으로 가서 딸이 시키는 대로 예수피만 했습니다. 아들이 매형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수원으로 아들집으로 데리고 치매 유치원에 보내려고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도 모르게 기억이 조금씩 나고, 성경도 보게 되고, 예수 피도 자연스럽게 혼자서 앉아서 하게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밥도 먹고 과일도 먹고,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자신감이 생기고 무서운 것이 없고, 나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과 함께 서울 모임도 가고 목사님 세미나도 가고 싶고, 내 생각에 내가 엄청 똑똑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화성 오산 기도처가 생겨 열심히 기도하게되어, 이제는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다닙니다. 몇 개월 전에는 나 혼자서 시골집에도 갔다 왔습니다. 큰딸, 작은딸, 아들 아파트 비밀번호, 기도처 비밀번호도 다 외우고 주기도문도 이제는 잘 합니다. 그래도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열심히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기도의 용사가 되어, 천국 가는 날까지 전심을 다하여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기도의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첫댓글 축복합니다 ^^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
치유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할렐루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