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6
류인혜
* 파리에서 보내는 편지 2 - 우아한 몸짓으로
오늘은 프랑스 왕족들의 사냥터인 퐁텐블로의 성에 다녀왔습니다. 퐁텐블로는 파리에서 한 시간의 거리입니다. 넓은 들을 지나서 버스가 달리는데 확 트인 전망이 좋고, 들과 어울린 농가의 풍경이 평화로웠습니다.
그곳에서 프랑스의 왕들, 특히 절대 군주 절정의 시대인 부르봉 왕조(1589-1789)의 왕들이 사냥을 즐겨 했다고 합니다. 사냥은 그들의 오락이자 권력의 남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냥개와 말을 탄 사람들의 무리와 그들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용솟음치는 정복의 피가 만들어낸 유희라는 선입견이지요.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지요. 순환도로를 빠져나가는 외곽지대의 풍경은 미국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고 누가 말을 해서 찬찬히 살폈습니다. 서부개척시대와 비슷한 건물의 모양을 볼 수 있었지요.
궁전은 궁전답게 크고 넓었습니다. 곳곳에 경비원들이 서 있어 보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느 방에는 F자 문양이 나무 벽에 많이 새겨져 있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프랑스와 1세의 이니셜이라고 하더군요. 도마뱀 모양의 조각은 왕이 자신을 그렇게 상징했다고 합니다. FRANCIS / C V S 라고 글씨를 많이 써두었더군요. 권력을 가진 왕은 모든 곳에서 힘을 과시하고 싶었나 봅니다.
어느 방의 벽에는 앙리 4세의 얼굴상도 있습니다. 신교도 국왕이라고 합니다. 순서를 따라 넓은 성안을 둘러보는데 도서관을 만났습니다. 돔형의 천정이 길어서 어두워 보이는 실내 양편 벽에 책장이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근사한 도서관을 두어 많은 책을 소장했으니 부럽습니다. 왕과 그의 가족들과 신하들은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기를 수 있었을까요. 과시를 위한 것이라면 수긍이 갑니다. 그런데 그 도서관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요.
바로 곁의 작은 방에 들어서자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곳은 하얀 방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삼면의 벽에 거울이 있고 벽난로와 가리개가 등장합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도 보입니다. 미로처럼 좁은 길을 따라가니 침실도 있습니다. 왕과 그 가족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박물관이 되었나 봅니다.
개인 숙소들인 듯 여러 개의 방이 연달아 있습니다. 어느 방에서는 침대가 높이 설치되어 있는데, 크기가 무척 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암살의 위험을 방지하려고 벽에 기대어 잤기에 그렇다고 하는데 편안히 누워서 잘 수 없었던 불행한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침대가 높아서 옆에 작은 나무 계단을 붙여 놓았더군요.
방마다 제각기 특색이 있는 가구와 의자가 많습니다. 어느 방에는 긴 의자 곁에 작은 의자가 둘러 있어 아이들이 할머니 왕후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들었음 직한 분위기입니다. 또 왕의 보좌 양편에 드리워진 초록색 계통의 커튼은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네요. 왕후의 방에는 큰 가리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원형 천장은 17세기의 형식이라고 가이드가 말해서 그 시대에 유행된 독특한 형식인가 보다 생각하며 잠시 쳐다봅니다.
파리로 돌아와서 어제는 건성으로 돌아본 시내를 본격적으로 구경합니다. 가로수가 단정하고 높은 건물이 없는 시가지 전체가 계획된 질서를 보입니다. 거리가 좁다는 것은 이야기했지만 건물 사이의 길은 정말 좁습니다.
로터리에는 크기가 작은 검정 돌을 무늬 지어 박아 놓았는데 오랜 세월로 인해 달아진 돌의 모양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곳은 하수도의 번지도 지상의 번지수와 같습니다. 모든 쓰레기를 그대로 하수도로 내려서 정리를 한다는데, 지하 어두운 곳에서 그 일에 수고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집니다.
건물들은 흡사 돌로만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사이에 석회를 굳혀서 시멘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답니다. 석회를 곱게 가는 일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풍차를 이용하였다는데, 그곳에 가서는 풍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건물을 수리하는 중인 집도 있습니다. 겉은 그냥 두고 속만 고치기에 리모델링의 기술이 발달 되었다는군요.
거리에는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카페의 길거리에 놓인 작은 의자에 두 사람이 꼭 붙어서 앉아 있네요. 그런 다정한 연인들을 위한 꽃집도 많습니다. 꽃다발을 많이 만들어 둔 것이 쉽게 사가라고 그런 모양입니다.
‘물랭루주(Moulin Rouge 빨간색 풍차)’라고 들어보셨겠지요? 캉캉 춤으로 유명한 그곳은 건물 위에 빨간 풍차 모양이 만들어져 있어 눈에 쉽게 뜨입니다.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올라가는 거리와 가깝게 있습니다. 파리 최초의 카바레인데 1889년에 문을 열어 프렌치 캉캉 춤으로 세계의 이목을 끄는 곳이지요. 근처의 거리는 공창이 있던 곳이라선지 여자들의 속옷을 야단스럽게 전시해놓은 가게도 보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옷차림과 표정들이 멋지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 만큼 개성이 뚜렷합니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그 자체가 관광의 대상이 되어있는가 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사람 스스로가 관광 상품이 되어 원주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춤을 추고, 그들의 생활을 보여준다지요. 우리나라 민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먹고, 방의 치장은 어떠했는가를 보러 다니는 것이 여행인가 봅니다.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문화의 혜택을 빨리 철저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엿보이는 정신의 풍부는 여행객을 부럽게 합니다.
불빛이 화려하고 낭만적이라는 센강 유람선 관광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너무 피곤하면 앞으로의 일정에 지장을 줄 듯하여 체력을 아끼는 것이고, 다음에 다시 올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핑계를 만들어 둔다는 욕심에서입니다.
다시 파리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첫댓글 프랑스에 부르봉 왕조시대에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 인해 일반인과는 달리 밤에 수면도 편히 취하지 못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