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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성장과 성숙. / 信仰の成長と成熟。( 2023년 11월 19일 주일예배)
본문; 누가복음 17:5-10
눅 17:5 ○사도들이 주님께 말하였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7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그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8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5. 使徒たちが、「わたしどもの信仰を増してください」と言ったとき、6. 主は言われた。「もしあなたがたにからし種一粒ほどの信仰があれば、この桑の木に、『抜け出して海に根を下ろせ』と言っても、言うことを聞くであろう。7. あなたがたのうちだれかに、畑を耕すか羊を飼うかする僕がいる場合、その僕が畑から帰って来たとき、『すぐ来て食事の席に着きなさい』と言う者がいるだろうか。8. むしろ、『夕食の用意をしてくれ。腰に帯を締め、わたしが食事を済ますまで給仕してくれ。お前はその後で食事をしなさい』と言うのではなかろうか。9. 命じられたことを果たしたからといって、主人は僕に感謝するだろうか。10. あなたがたも同じことだ。自分に命じられたことをみな果たしたら、『わたしどもは取るに足りない僕です。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しただけです』と言いなさい。
지난 주일에는 믿음으로 사는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믿음으로 일상을 사는 삶이란 기독교라는 종교인으로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특별하고 고차원적인 높은 수준의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회복하여 살 때, 가장 자기다운 모습인 것을 믿습니다. 사람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 비로소 행복한 내면세계의 주인공으로 사는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믿고 사는 일상이 회복되어 진정한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일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자신의 믿음을 잘 관리하는 일입니다. 물론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종교적 실력이나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세속의 가치관을 믿게 되고, 그 가르침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결국 불안과 낙심, 그리고 절망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 내면에서 “귀신의 생각”이 떠나고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도 그 내면을 성령으로 채우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면 더 큰 귀신들이 돌아오고 만다고 경계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마 12:43-45)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된다는 말씀은 “귀신의 생각”, 즉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자신을 헤아리던 태도에서 돌이켜서, 구원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지만, 평소에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그 내면을 채우지 않으면 더 악한 세속적인 생각이 그를 다시 실족하게 하고 지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고백하여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내면에 복음을 믿는 믿음이 크게 자라나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력이나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자세의 방향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최신형 디자인으로 꾸며진 최고급의 열차를 타고 있다고 해도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전혀 다른 행선지의 열차라면 내려야 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허름하고, 속도도 느리데가다 디자인도 별로인데, 냄새까지 나는 열차라도 내가 가야 할 행선지의 열차라면 모든 열악한 조건을 참고 타야 하지요.
그렇다고 우리의 믿음생활이 항상 악조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상관없는 삶의 조건이라면 그 상황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의 성장과 성숙은 일상생활에서 바른 방향으로 살아갈 길을 선택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하는 가장 지혜로운 시선을 발견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인 것입니다. 그렇게 지혜롭고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위한 믿음이 자라는데는 연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3-5)
사실상, 복음을 믿으면 없던 환난이 있고 고난과 연단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고통과 연단의 연속인 것이지요. 만일 복음을 믿으면 받게 될 고난을 피하려 믿음을 저버린다면, 더 고약하고 심한 또 다른 종류의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자도 삶이라는 것이 항상 즐겁고 신나며 쾌락이 넘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그 어떤 가르침과 종교도 삶은 그 자체로 고해(고통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종교들은 고난에서 피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지요. (특히 점쟁이들이 그런 말들을 잘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고난과 고통을 통해 오히려 소망을 얻게 되며, 그 소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채워짐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믿는 믿음이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고난을, 소망을 취하는 지름길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자신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자원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8)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구원받았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고난과 시련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이미 시련과 곤란한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물론 그 모양새나 혹은 자극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요.
그런 삶의 고난과 시련을 단지 부정적인 일로 여기지 않고, 소망과 기쁨으로 여기게 해주는 원동력이 곧 복음을 믿는 믿음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사는 믿음인 것인데요. 무엇보다도 믿음이 크게 자라면 자랄수록,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의 크기와 그로 생겨난 소망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 크게 자라면 자랄수록 일상에서 겪는 시련이나 고통의 크기가 커지고, 그렇게 견딜 수 있는 시련과 고통의 크기만큼 소망과 행복감의 크기도 커진다는 말입니다.
결국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커질수록 우리의 삶의 지평과 또한 행복의 크기가 커진다는 뜻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답게 살며 복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산다는 것은 믿음을 어떻게 키워가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실력을 구합니다. 명예와 넉넉한 재산과 타인에게 미칠 실질적인 영향력을 얻고 소유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항상 뭔가를 애쓰고 노력합니다. 또한 태생적으로 그런 모든 부귀영화를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절망하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들이 있지요.
하지만, 인생을 인생답게 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저는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오늘도 서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들을 함께 지내고, 뭔가 흥겨운 분위기를 제공하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재미로 따진다면 세상의 놀이공원이 훨씬 재미있고 즐겁고, 사람이 많이 모이기로 한다면 스포츠 경기장이 더 크고, 볼거리로 따지면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훨씬 예쁘지 않겠습니까?
세속적인 조건이나 실력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속의 기관들이나 단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우리의 믿음을 장성하게 하고, 우리로 온전한 존재가 되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과 그 소명에 합당한 존재로 우리를 키우기 위해서 세워지는 주님의 몸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2-13)
교회를 세우시는 목적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이 약속의 말씀이 교회를 통해 곧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자라서 커지면 커질수록 세속의 가치관이나 혹은 시대의 유혹과 여러가지 시련들이 닥쳐 올 때 흔들리거나, 쓸려 내려가지 않는 튼튼하고 충만한 내면세계를 완성하게 된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연이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4-15)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우리의 일상을 충만하게 채워줍니다. 그리고 충만하게 채워진 일상에 대한 태도가 결국 인생의 온갖 시련과 문제와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능력이 되고,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의 인구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사업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목사들이 배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자리와 이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이 더욱 사람답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권능을 하루에 하루만큼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자라게 되는 것일까요? 여섯 가지로 정리해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믿음이 크게 성장하며 자라기를 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가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요. 우리가 육신을 가진 사람들은 키가 자라고, 힘이 세어지고, 육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를 자연스레 원합니다. 우리 집안의 자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원하고 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했던 것처럼 믿음이 크게 자라기를 갈망하는 태도와 자세를 기본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고 크는 것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의 성장과 성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세속적인 실력과 소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갈망하면서 믿음이 자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우리의 실력과 소유도 실은 믿음이 자라는 것과 함께 채워질 때 온전한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교회 등록은 하였지만, 실제로 일상을 살 때는 자신의 경험을 더 의지하고, 실력을 의지하고, 신념을 더 생각하고, 자기 집안의 조건과 여건을 더 의지하였던 태도와 자세를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살지 않았던 태도와 결별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을 구하지 않으면 믿음으로 자란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않았던 삶의 태도와 자세를 회개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믿음을 말씀 위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씀 중심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성경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수시로 말씀을 펼치는 일과를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1-2)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의 체험이나 꿈이나 상상에만 나타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곧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그러므로 말씀 중심의 일상이 아니면, 교회와 종교에 대한 자기 나름의 신념은 자랄 수 있어도 믿음은 자라고 커지기 힘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에 열심인 사람도 자기 신념으로 신앙생활을 순조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삶은 자기 신념이 아닌, 말씀에 근거한 삶인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네 번째로, 믿음으로 말하는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지하여 말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긍정의 힘을 말하고, 좋은 에너지를 구하는 태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처세술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말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에 권세가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것은 나의 말을 들으시고 그 말을 현실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공기의 울림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을 정탐하고 온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2명은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의 고백을 듣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8)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사람에 어울리는 말을 찾아서 하는 습관을 연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듣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말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에서 나의 고백에 응답하실 것을 믿는 태도와 자세로 말하는 습관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말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현실에서 복된 삶으로 열매 맺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다섯 번째로 믿음의 훈련(연단)을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고난이나 시련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초반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꼭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한 노력이나 실력의 의미로 믿음을 훈련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래 우리의 삶은 이미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니 어차피 맞닥뜨려야 할 시련과 고난을 나의 힘이나, 경험, 지식, 실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감당하며 상급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의 시련을 내 나름의 노력으로 견디면 그것은 그저 인생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훈련을 받는 마음으로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주신 면류관과 상급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 1:12)
마지막 여섯 번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언제나 성령을 구하는 삶의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 앞서 믿음을 구하는 태도로 사는 것처럼,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실감할 수 있기를 구하는 자세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가 원하는 마음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 혹은 미디어나 매스컴이 알려주는 지식으로 충전되던 생각을 이제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각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각자의 어떤 기도의 제목들이 있으시겠지만, 가장 먼저 주님께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매일 여러분을 떠올리며 성령으로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 연습과 행동지침으로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일상의 시간들과 기력과 활력을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는 인생을 통해 무엇인가를 위해서 애쓰고 노력합니다. 힘을 쓰고 마음을 통해 구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자연스레 무엇인가를 구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인생을 사는데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구하고, 애쓰고, 노력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놀라운 상급을 주시고, 복된 인생을 살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성령의 능력으로 풍성한 열매가 맺는 일상을 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문제를 통과하고, 믿음으로 모든 일상의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 주인공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가장 크고 강력한 특권이며 자녀된 권세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성숙할수록 그 열매와 부요함은 더욱 확장되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시련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견디고 신념을 가지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복음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인생의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상급을 받고, 열매를 거두는 기회가 됩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큰 믿음을 구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말씀 중심으로 일상을 살고, 믿음에 의지하여 말하며, 믿음의 훈련을 기꺼이 받아,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구하고 받을 때 믿음은 하루에 하루만큼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늘 나와 동행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일상의 모든 순간에 부요하고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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