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좇는 삶
이윤미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 교수님께서 금요일 새벽 더 높고 더 깊고 더 넓은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 본연의 슬픔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순수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어제, 오늘까지 교수님이 틈만 나면 제 마음속에 떠오르십니다. 교수님 수업을 처음 들었던 24년 전 봄날의 모습부터, 마지막 뵈었던 올해 봄날의 모습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뵈었던 교수님의 모습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있습니다. 주로는 역시 가르치실 때의 모습,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실 때의 모습이고 그 옆에서 열심히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제 모습도 같이 떠오릅니다.
제가 대학생이었던 21살에 처음으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난 후 벌써 2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 교수님께 종교학 개론 수업을 듣고 그 수업이 어찌나 새롭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던지 ‘아! 내가 이 교수님을 만나려고 서강대학교에 왔구나.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기뻐했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자타공인 교수님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살았습니다.
다른 수업 시간에는 그렇게 잠이 쏟아져도 교수님 수업 시간에 교수님 목소리만 들으면 온 정신이 교수님의 입으로 향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과외로 학생들에게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쳐 주실 때도 다른 과목 과제는 제쳐두고 산스크리트어 수업 준비를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교수님께서 과외 수업 중에 숙제로 내주신 산스크리트어 문장 번역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면 당시에는 그것만큼 기분이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하다는 듯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대학원에 가서도 교수님 수업을 듣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즐거움이었습니다.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힘들면서도 재밌고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고 어쨌든 그때는 교수님을 뒤따라 묘한 매력을 지닌 종교학의 길을 가는 것이 아름답지만 높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어찌나 교수님을 좋아했던지,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가지고 다니듯이, 저는 교수님 사진을 여기저기 붙여 놓고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하다가 힘이 들 때면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힘을 얻곤 했습니다.
사실 그래서 교수님께서 조기 은퇴를 선언하셨을 때는 열렬한 추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교수님께 섭섭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왜 조금 더 부족한 나를 가르쳐 주시지 않고 학교를 나가시려 하는 걸까, 교수님을 만나서 나는 대학원까지 오고 더 배울 것이 많이 남았는데 라고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해 한해 지나고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때 학교를 떠나 심도학사를 세우는 데로 나아가신 교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안락한 학교에 끝까지 머무는 것을 택하지 않으신 교수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진정한 이상주의자였고 결국 저는 지적 성취를 이루신 학자로서의 교수님만큼 이상주의자로서의 교수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굳이 교수님을 이상주의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언젠가 교수님께서 대학교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여러분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이상주의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 말씀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교수님의 그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깊이 남았고 그래서 그 날의 모습도 요 며칠 많이 떠올랐습니다.
이상을 좇는 삶은 현실에 매몰된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길희성 교수님, 지난 이틀 동안 수없이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교수님께서는 바로 더 넓고 더 높고 더 깊은 이상을 추구하며 사신 분입니다. 교수님은 또 그 이상을 연구하신 분이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지치지 않고 말로 설명해 주신 분이고, 그것을 글로 남기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교수님께 배운 우리 제자들도 그 이상을 결코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수님을 따라서 그 이상에 대해서, 사랑과 자비의 근원에 대해서,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교수님과 이 세상에서 잠시 이별하지만 결국은 더 넓고 더 깊고 더 높은 그 속에서, 나도 없어지고 기억도 없어지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교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특별히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교수님의 반짝이는 눈빛이 선명히 남아 있을 것이고 계속 빛날 것이고 계속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