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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3년 8월 10일(토)
승차지 : 메뉴 목록의 버스 승차(출발)지를 참조해 주세요.
준비물 : 중식, 간식, 식수, 자신이 드실 약주, 갈아입을 옷, 여름 산행장비, 기타
산행예상시간 : 배티재까지 약 3시간 20분 + 엽돈재까지 약 2시간 = 약 5시간 30분
○산행구간 : 옥정현(13:25)-(0.7km)-410봉(13:40)-(1.2km)-무제산갈림길,송전탑(14:05)
-(2.0km)-470.8봉,헬기장(14:50~15:00)-(1.7km)-장고개(15:30)-(1.4km)-납골당,중앙CC
입구(15:55)-(2.1km)-배티고개,이티재(16:45) (08:25)-(2.6km)-서운산(09:10~09:15)-
(3.7km)-안부,고개(10:10)-(1.5km)-엽돈재(10:30) ○산행일시 : 2012. 1. 7.
○구간특징
-옥정현은 안성과 진천의 경계이며,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
-옥정현에서 40분정도 진행하면, 거대한 송전탑이 있는 곳이 무제산 갈림길임.
-철판이 깔려있는 호화 헬기장이 있는 곳이 470.8봉임.
-헬기장에서 배티고개로 가는 길에 장고개 표지판이 있는 안부 사거리가 있는데, 일부 지도에는
장고개 위치를 중앙CC와 배티고개 중간지점으로 표기한 것도 있음.
-장고개를 지나면 연안이씨 숭모원이라고 씌여진 납골당이 있고, 중앙CC입구임.
-중앙CC 골프장은 현재 에머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납골당에서 좌측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골프장 진입도로와 만나 배티고개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짐.
-납골당에서 본래의 마루금은 골프장 진입도로 우측의 능선길을 따라 배티고개까지 이어지며,
배티고개 절개지를 내려서는 곳은 급경사 내리막이므로 미끄럼 주의
-배티고개는 이티재라고 하며, 안성과 진천의 경계이며, 에머슨CC 입구가 있음.
-배티고개(313번지방도)는 이티재로 불리며, 이티재 표지판 방향으로 진행
-전체적으로 고도차가 크지 않은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되며, 산행로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음.
-서운산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실제 정상은 50m 정도를 더 진행해야 됨.
-서운산 정상은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으며, 해발고도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음.
-서운산 정상을 10m 정도 되돌아 내려와 우측 청룡사방향 이정표를 따름.
-서운산 정상에서 1분거리인 두번째 이정표 갈림길에서 엽돈재 방향 이정표 따름.
-마루금 좌측으로 급사면 벌목이 된 부근에서 좌측 아래로 보이는 도로가 엽돈재를 지나는
34번국도임.
-엽돈재는 충북 진천과 충남 천안, 경기도 안성을 가르는 경계지점이며, 고도 323m 수준점이
있음.
서운산(瑞雲山)은 정상 남쪽 아래에 고려 원종6년(1265년)에 창건한 청룡사라는 절이 있는데,
1364년 나옹화상이 중건할 때 청룡이 상서로운 구름(瑞雲)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과 절 이름을 서운산 청룡사로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조금 더 지나면, 전망데크와 고도를 표시한 표지석이 있는 서운산을
지나 엽돈재 이정표를 따라 산을 내려오면, 4차선 국도가 지나는 엽돈재로 내려서게 된다.
엽둔고개, 엽둔티, 엽전리, 율둔티 라고도 불리는 엽돈재는 천안시 입장면에서 진천군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도둑이 많았을 때 엽전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모조리
빼앗겨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경기도 안성시와의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산행 기록
08:45 옥정현 출발 09:00 헬기장
09:05 409.9m봉/삼각점(진천 412) 09:30 NO. 211 철탑
09:40 작은 바위/좌측 진행 후 임도를 따라 진행
09:50 임도가 좌측 직진하여 산길 진행
10:00 470.8m봉 헬기장/우측 소나무 있는 곳 진행/휴식
10:30 440m봉/좌측 우회 길 10:45 장고개
11:00 철탑(NO.35번, NO.29번) 11:10 연안 이씨 납골당/정자
11:15 클럽 하우스/시멘트도로 위 우측 계단 11:30 헬기장(421.8m)/삼각점
11:35 골프장 도로 위 진행 11:40 좌측 이티재(배티고개)로 진행
11:45 급경사/루프
11:50 이티재(배티고개)/에머슨 C.C/점심식사
313번 도로(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상촌마을 연결)
12:50 배티고개 출발 13:00 무명순교자 6인묘 갈림길
13:05 배티성지 갈림길
13:15 석남사 갈림길/이정표 정상 0.6 km, → 석남사 1.5 km, ↓ 배티고개 1.3 km
13:20 이정표 ↑ 정상 0.4 km, → 석남사 1.3 km, ↓ 배티고개 1.5 km
13:30 547.7m봉/삼각점(진천 21)/비상 사이렌 13:30 정상 갈림길
13:40 서운산(547.4m) 정상/휴식 13:50 정상 갈림길/청룡사 방향
13:55 엽돈재 갈림길/좌측 엽돈재 5.3 km 방향
14:00 이정표 ↑ 엽돈재 4.5 km, ↓ 정상 0.8 km
14:10 395m봉/통나무 의자 14:20 456m봉/쉼터 의자
14:30 백곡임도 갈림길/이정표↑엽돈재 3.1 km, ←백곡임도 0.5 km, ↓ 서운산 정상
14:45 395.4m봉/삼각점/벌목된 통나무 14:55 안부15:00 통나무 의자 15:10 좌측으로는 벌목
15:20 360m봉
15:30 엽돈재(323m)
* 금북정맥 2구간(옥정현~엽돔재)은 길은 너무나도 편안했고, 5시간 만에 엽돈재에 도착 후 조금 더 가는 문제로 이야기하다가 청룡사 구경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막을 내린다. 청룡사와 청룡저수지를 본 후 길 건너 충남에 새뱅이 매운탕을 먹으며 마지막 건배를 하고 산행을 정리한다.
- 산행정리 (거인산악회/2013. 2. 24) -
09:20 옥정현/우측의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와 좌측의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 죽현리를 이어주는 고개입니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군 신계리에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하는 302번 지방도로/옛날에는 안성에서 구입한 소금
짐을 지고, 옥정현을 넘어 진천으로 가서 쌀과 바꾸어 가곤 하였다 합니다. 충북의
마스코트인 고드미와 바르미(곧고 바르게 산다는 의미)건너편 시멘트 임도 좌측으로
09:34 헬기장
09:37 409.9m봉/삼각점(진천 412)이 있습니다. 09:58 NO. 211 철탑
10:11 작은 바위들이 있는 곳/*** 주의 *** 직진하는 능선으로 가면 안 되고,
좌측으로 가다 임도를 따라 가야 합니다.
10:14 임도가 좌측으로 내려가는 곳에서 직진하여 산길로 오릅니다.
10:28~10:38 470.8m봉 헬기장(철판이 깔려있습니다)/*** 주의 *** 직진하면 안
되고 헬기장을 오르자 말자 우측 소나무 있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10:53 440m봉/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습니다. 11:02 장고개
11:17 NO. 35번 철탑과 NO. 29번 철탑이 바로 이어져 있습니다.
11:23~12:13 연안 이씨 납골당/점심/골프장 위에 정자가 옆에 있음
12:14 클럽 하우스로 내려 가는 시멘트도로 위 우측 계단을 오릅니다.
12:30 헬기장(421.8m) 12:33 등로 옆에 있는 삼각점
12:34 등산로 옆으로 골프장 도로와 한동안 나란히 진행됩니다.
12:49 좌측으로 급격히 꺽어져 이티재(배티고개)로 내려갑니다.
12:51 로프를 잡고 급경사를 내려갑니다.
12:53 이티재(배티고개)/좌측으로는 예전의 중앙 C.C 들어가는 입구가 에머슨
C.C로 명칭이 변경되어 있으며,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상촌마을을 연결하는 313번 도로. 길을 건너 백곡면을 알리는 표지석 우측으로 진행.
13:12 무명순교자 6인묘 갈림길/좌측 인근에 무명순교자 6인묘가 있습니다.
"무명순교자" 6인묘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안성 잿님골과 목천으로 피신하여 숨어 살던 신자
들이 발각되어 이 지역에서 포졸들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살아남은 신도들이 뒤에 시신을 수습
하여 이 성재 골짜기에 묘를 만들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13:15 배티성지 갈림길/우측 정상 방향으로 갑니다.
13:34 석남사 갈림길/이정표↑정상 0.6 km,→석남사1.5 km, ↓ 배티고개 1.3 km
13:39 이정표 ↑ 정상 0.4 km, → 석남사 1.3 km, ↓ 배티고개 1.5 km
13:44 547.7m봉/삼각점(진천 21)과 비상 사이렌이 있습니다.
13:45 정상 갈림길/막걸리를 파는 곳이 있고 좌측 청룡사 방향으로 마루금이 이어 지지만
우측의 서운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13:47~13:50 서운산(547.4m) 정상
서운산은 "비를 빌어 응답이 있는 상서로운 산"이라 조선왕조실록에 표기되어 있음
13:51 다시 정상 갈림길로 내려와 청룡사 방향으로 갑니다.
13:52 엽돈재 갈림길/직진하면 헬기장이고 좌측 엽돈재 5.3 km 방향으로 갑니다.
14:00 이정표 ↑ 엽돈재 4.5 km, ↓ 정상 0.8 km
14:06 395m봉/통나무를 철사로 묶어 놓아 쉴.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은 곳
14:41 456m봉/쉼터 의자가 있습니다.
14:53 백곡임도 갈림길/이정표↑엽돈 1 km,←백곡임도 0.5 km,서운산 2.3 km
15:13 395.4m봉/삼각점이 있고, 벌목된 통나무가 방치되어 있음. 15:18 안부
15:21 통나무를 철사로 묶어 놓아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은 또 다른 봉우리
15:24 좌측으로는 벌목이 되어 있습니다. 15:35 360m봉
15:45 엽돈재(323m)는 경기 안성, 충남 천안, 충북 진천이 만나는 삼도령으로
조선시대에는 협탄령이라 불리었습니다. 또한 이 고개는 높고 험해서 옛날
에는 도둑이 많았으며, 엽전을 가지고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은 모두 도둑
에게 털리므로 엽돈재(엽돈치)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옥정재(玉井峙:390m) 15:00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길가에 있다. 진천과 안성을 이어주는 옥정재는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가거나, 안성 장을 갈 때 이용했던 곳으로 지금은 587번 지방도가 지난다.
장고개(17:00)
산이 높아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뒤에서 오는 사람이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인다고 해서 개미둑재
라고 했는데 요즘은 갬덕지 고개라고 부른단다.
배티고개(이치재:341m :18:00)
313번 도로가 지나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안성시를 넘는 고개로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치(梨峙)재라고 했고,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재라 불렀다는 설과 조선시대 영조때
이 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의 이 순곤이라는 노인이 이끄는 주민들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 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했다고 해서 패치라고 불리다가
변했다는 설도 있다.
배티나 이티에서 ‘티’는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티 대신 재나 고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티의 뜻이 불분명해지자 유의어 고개를 중복하여 배티고개로 부른 것이다.
배티나 배티고개는 그 뜻은 같지만, 현재 배티는 마을 이름으로, 배티고개는 고개 이름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에 있는 배티마을은 원래 아랫말·중간말·꼭대기말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중간말은 없어졌다.
배티마을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교우촌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 1857년 무렵에는 배티와 절골 주변의 양백리 삼박골, 용덕리 용진골·정삼이골, 백곡면
명암리 발래기·명심이,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 이월면 신계리 새울,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
문백면 구곡리 굴티 등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도 30여 명이 관군에게 학살당한 곳으로 지금은 성역화하여 순례지가 되었다. 윤의병
(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 『은화(隱花)』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진천군지 1994 인용)
생거진천(生居鎭川) 백곡면이라는 커다란 돌비석 뒤로 산행로가 열려있다.
여기서 생거진천이란 유래는 신라 말의 고승인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용인땅의
형세가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며,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이란 말이
생겨났는데 즉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산다는 말이다.
안성맞춤 길
제 짝이 아니었던 것을 갖다 맞출 때 매우 잘 맞음의 비유나, 결혼을 할 때 생전에 보지 못한
사람끼리 부부로써 잘 어울린다고 할 때에도 "안성맞춤"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그 만큼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릴 때 이런 말을 쓰는데 안성은 유기제품을 장인
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정성껏 만들어 품질이나 모양 등 기교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
시켰기에 "안성맞춤"의 대명사가 되었다.
안성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삼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후기 들어 상업이 발달하고, 시장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레 안성의 시장도 발달하여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번성하였다.
안성에서는 시장의 발달과 더불어 각종 수공업 기술이 발달하였는데 그중 유명한 것이
유기제품이었다. 시장에서 일반 서민들을 상대로 하여 파는 놋그릇을“장내기”라고 하였고,
한양의 양반들이 주문하여 특별히 그 모양과 품질을 잘 만든 놋제품을 “모춤”유기라 하였다.
안성모춤 유기는 그 품질이 믿을만하여 “안성모춤”이라는 말이 생겼고 그것이 오늘날 어원의
변화에 따라 “안성맞춤”이라는 일반명사로 쓰이게 된 것이다.
서운산 남쪽 기슭에는 청룡사가, 그 너머 동북쪽 기슭에 석남사가 있다.
안성시내에서 마둔저수지 너머 진천방향 313번 지방도로를 타고, 호젓한 계곡길로
접어들어 10여 분 올라가면,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기품을 간직한 천년고찰 석남사가
푸근하고도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수도승들이 유난히 많았던
석남사인지라 스님들의 손길이 곱게 묻어나는 것만 같다.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 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것.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은 겹처마 맞배지붕
으로 단촐하면서도 당당해 보인다.
대웅전 바로 아래 학이 나는듯 한 팔작지붕집이 영산전과 조화를 이루며, 옹기종기 터를
다스린 석남사 경내는 서운산의 풍취에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풍겨난다.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팔작지붕집이다.
날렵한 지붕 끝이 숲속에 살포시 가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더한다.
이 건물은 공포의 짜임새가 조선 초기와 중기 사이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신라 문무왕 20년에 고승 담화덕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크게 중수했다.
경내에는 16나한이 모셔진 영산전을 비롯해 대웅전, 마애석불 등의 도지정문화재와 석탑,
부도 등 향토 유적이 있다.
서운산(瑞雲山)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는 547m이다.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
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
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
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 반면식 토축 산성으로서 서쪽 능선
에서 남 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청룡사(靑龍寺)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다.법당 안에는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무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청룡사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
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 지금도 건너편에는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엽돈재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지점이다.
해발 고도 323m 로서 34번 국도가 여기를 지나며, 금북정맥(차령산맥)에
걸친 고개로 동쪽은 충북 진천시 이월면 ,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
남쪽은 충남 천안시 북구 입장면이다. 엽돈재를 다른 이름으로 엽전재(葉錢峙),
엽둔재(葉屯峙), 엽둔티, 율둔티 등으로도 불렀다.
고개이름 유래가 확실한 것이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옛날 장을 보려
고, 이 재를 넘나드는 사람이 많았는데, 숲이 워낙 깊어 장꾼을 노리는 도둑이
많았던 관계로 엽전을 가지고 가던 사람은 모두 빼았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