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4/29)에드바르트 뭉크.
죽음에서 꽃피기 시작해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뭉크의 그림. 그의 삶과 예술은 죽음을 먹고 자란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평소 잊고 지내던 죽음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p28
방구석 미술관(5/4)프리다 칼로.
"프리다는 기존의 어떤 예술사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개성 넘치는 걸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진실을 직시하고,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고통을 감내하는 프리다의 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었다."p43
방구석미술관(5/6).에드가 드가.
드가는 부르주아 남성들에 의해 상처받는 하류층 여성들의 애환을 있는 그대로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에 공감하며 파스텔을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사에 상처받은 여인들의 마음을 파스텔의 보드라운 색채로 어루만져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보통의 여인들'에게 존경을 바친 남자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드가의 그림이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p73
방구석미술관(5/7)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결국 압생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요정의 탈을 쓰고 날아와 혀끝에 앉은 녹색 악마 압생트는 고흐의 영혼을 갉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반 고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한 예술가의 영혼이 내지를 수 있는 표현의 극대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반 고흐의 압생트는 녹색 악마일까요? 녹색 요정일까요?p92~93
방구석미술관(5/8)구스타프 클림트.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미술 천재 클림트.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 그리기만 해도 마음 편히 먹고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타협라지 않고, 시대의 반항아로 살았습니다. 예술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빈에도 꽃피우기 위해, 스스로 황금빛 창을 들고 아테나 여신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반발과 저항을 이겨내고, 결국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심었습니다.p116~117
방구석미술과(5/11)에곤 실레.
존재 하나가 자신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기 개성의 순수함을 지키고자 했던 순수 지존, 실레에게 붙여주고 싶은 말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성욕의 굴레, 주체할 수 없이 타오르는 자기애. 이 젊음의 열기를 실레는 숨김없이, 꾸밈없이 선으로 거침없이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19금 포르노그래피로 보이는 그의 드로잉에 숨겨진 정신입니다.p142~143
방구석미술관(5/12) 폴 고갱.
하나의 '삶'은 하나의 '별' 아닐까요? 삶을 보는 관점과 삶을 사는 방식은 이 지구의 사람 수만큼 다채롭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밤하늘 자기만의 빛을 내보이는 별처럼 말이죠. 삶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각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이 있을 뿐이죠. 고갱도 그러했고, 그는 그 빛을 따라갔습니다.p168
방구석미술관(5/13)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 바>이전에 모든 회화는 '단 하나의 시점'만을 적용했습니다. 그 시점은 보통 그림의 정중앙이었죠. 이것은 너무도 당연해 아무도 의심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이 고정관념을 파괴합니다. 한 장의 그림에 단일시점이 아닌 복수시점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미래의 미술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그 문을 그림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둔 마네. 단 세 점의 그림으로 이후 근대미술의 꽃이 만발할 토양을 다졌습니다.
방구석미술관(5/14)클로드 모네.
카메라는 19세기 화가들의 생존을 위협했고, 화가들은 밥줄이 끊길 위험에 처합니다. 그러나 어느 영화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생존의 극한에서 인간은 잠자던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끄집어냅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사실적인 묘사의 회화가 카메라에 의해 멸망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이상, 19세기 젊은 화가들에게는 새로운 '미술대륙'을 가능한 빨리 발견하는 게 생존을 위한 사명이 됩니다. 그렇게 화가들은 유일한 밥벌이인 회화가 종말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잠자고 있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깨웁니다.p200
방구석미술관(5/15)폴 세잔.
"나는 견고하고 영원한 인상주의를 만들고 싶었다. 박물관의 예술처럼."
세잔의 말에 그의 모든 비밀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는 모네식 인상주의가 완벽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결정적으로 중대한 '무엇'이 빠져 있다고 보았죠. 세잔은 그 '무엇'을 인상주의에 집어넣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박물관에서 보았던 옛 거장들의 걸작처럼 견고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죠. 허점투성이였던 20대 때 박물관에 살다시피하며 거장의 작품에 심취했던 것은 결코 헛된 짓이 아니었습니다. 세잔을 이해하는 핵심이기도 한 '무엇'은 단 두개로 요약됩니다. '자연의 본질'과 '조화와 균형'.p230
방구석미술관(5/18)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나이가 들면서 마티스와 피카소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됩니다. 최고는 최고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겠죠.
"기본적으로 오직 마티스만 존재할 뿐이지."-파블로 피카소
"우리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해.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잃게 될 테니까"-앙리 마티스
나이가 들수록 둘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예술을 공유하고, 적용하고, 실험하며 발전했습니다. ~그들의 삶과 예술은 서로가 키워준 것입니다.p263
방구석미술관(5/19)마르크 샤갈.
연인과의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줄만 알았던 샤갈. 알고 보니 그에겐 '유대인'이라는 아주 중요한 반쪽이 있었습니다. 사실 차별과 핍박에 시달려야 했던 유대인의 삶을 어둡고 슬픈 그림들로 그려낼 수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샤갈은 생애 끝에서 인류애와 평화로 빛날 미래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후손들과 함께 그 꿈을 나누고 있습니다. 유대 노인의 마음은 청아한 색채들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그림들처럼.......p288
방구석미술관(5/20)
바실리 칸딘스키. 가브리엘레 뮌터.
회화로 지은 교향곡!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는 마치 캔버스 위에 '점, 선, 면 그리고 색'이라는 악기로 자유로운 연주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 그는 자신의 작품을 교향곡처럼 인상, 즉흥, 구성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구성IV>처럼 작품 번호를 붙이죠. 회화를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이자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p305
방구석미술관(5/21)마르셀 뒤샹.
뒤샹은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했고, 작품은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창조자로 보았죠. 과거의 어떤 예술가가 관객을 이렇게 보았던가요?
그는 작품에 어떤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기보다 의미를 열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의미를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전시장은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생각의 놀이터'가 됩니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의 놀이를 펼치는 창조자가 되는 순간입니다.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