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무서움(공포)의 차이
"나는 악과 독재자가 두렵지 않다. 다만 무서울 뿐이다" -루소-
"나에게 두려운 것이 두 가지 있으니, 저 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양심의 소리이다." -칸트 -
“아무것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인간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없다” -알렝-
어느 동양학자가 서양 종교는 ‘두려움’의 종교라고 하고 동양의 종교는 ‘윤리적 종교’라고 하면서 서구 기독교의 종교를 미성숙한 문화로 그리고 동양의 종교를 성숙한 종교처럼 고려하였다. 이 학자는 ‘두려움’에 기초하는 서양의 종교를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에 비교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근대 철학자들 -흄, 로크, 스피노자 등-이 원시종교나 기독교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분석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역사적인 몇 몇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완전히 부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서구 기독교적 종교라고 할 때, 이 기독교란 ‘그리스도교’라는 말이고 이는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가 탄생하고 가르침을 준 그 이후의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기초하는 서구적 종교’라고 한다면 이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구약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말한 것은 ‘신이 사랑’이라는 것이며, ‘신은 인간의 어버이며, 벗’이라고 말하였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기독교적 종교를 ‘두려움에 기초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 비록 구약의 종교가 ‘두려움에 기초한 종교’라고 하더라도, 이를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공포’와 비교한다는 것은 ‘잘못된 유비추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과 공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비록 심리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겠지만 두려움과 공포는 전혀 다른 것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어떤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며, 공포는 그 어떤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가령 귀신에 대해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서움 즉 공포를 느낀다. 왜냐하면 그 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은 ‘무서움(공포)’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유발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다는 그 사실에 대한 의미나 결과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도덕적 선악의 문제와 관련되고 있지만, 공포(무서움)는 정신적 물리적 폭력과 관계되고 있다. 가령 강도가 칼을 들고 위협할 때 느끼는 감정은 ‘무서움’의 감정이지 ‘두려움’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한 법을 어기는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지 ‘무서움’이 아니다. 이처럼 어떤 것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은 ‘앎과 도덕적 가치’에서 비롯하는 것이지만, ‘무서워한다(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무지와 폭력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사람들이 ‘신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이는 유전 공학자가 매우 놀라운 유전자 변형기술을 발견하였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재앙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느끼게 되는 도덕적 감정으로서의 두려움과 유사하다. 이러한 두려움은 ‘유전공학과 유전자 변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그 위험성이 보다 클수록 두려움을 크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사태에 대해서 느끼는 두려움의 크기도 그가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두려움을 크게 느낄 것이며, 비-양심적인 사람이라면 크게 두려움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인간들은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이는 참으로 위험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 매우 존경했던 선생님을 두려워했던 것은 그 선생님을 다른 학생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다른 학생들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인 것처럼, 만일 누군가 신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그 만큼 다른 사람보다 그가 신에 대해서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약의 종교는 ‘두려움에 기초한 종교’일 수 있어도, ‘무서움(공포)’에 기초한 종교는 결코 아니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육체가 ‘악성 바이러스’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악에 대한 인간의 양심의 거부감으로서 ‘도덕적인 안정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겸허하게 하겠지만, 무서움(공포)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굴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들이 아무것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그 때가 곧 인류의 종말이 시작되는 때라는 철학자 알렝의 생각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만일 악마가 존재한다면, 나는 그 악마가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무서울 뿐이다.
만일 천사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 천사가 전혀 무섭지 않을 것이다. 다만 두려울 뿐이다."
-루오作, <우리는 미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