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두 인격 / 내가 존경했던 두 사람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나는 생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정치인들 중 존경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
그만큼 정치판이란 곳이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는 장소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존경했던 진정한 정치인 1명과 정치와 관련된 인물 1명이 있다.
공교롭게 두 인물이 너무나 다른 상황 다른 문화 속의 인물이었지만
너무나 유사한 측면, 참 아름다운 인격에 있어서 닮은 두 사람을 소개해 보고 싶다.
그 한명은 프랑스의 21대 대통령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이었고
다른 1명는 육영수 여사 였다.
미테랑 대통령은 내가 프랑스로 유학을 간 뒤, 2년인가 3년차에 서거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대통령 시절에는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서거하고 나자 연일 프랑스 뉴스에서 그의 일생과 정치생활에 관해 보도하는 것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는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면 하나 같이 비극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을 본다는 것이 마치 기현상처럼 보였다. 미테랑 데통령은 좌파 대통령으로 좌파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 모델과 같은 사람이었다. 재임시절 현재의 프랑스 복지 시스템을 완성한 정치인 이었고, 2차 대전 이후 오랜 숙적이었던 독일과의 완전한 화해를 이루어 내었으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정치인이었고, 유럽 연합을 이끌어낸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개인적인 삶에는 흠결하나 없는 청념결백한 찐 좌파 정치인이었다.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결국 한국에 <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도록 명한 것도 미테랑 데통령이었다. 실제로 그가 서거하자 좌파 우파 할 것없이 그를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최소한 국내 정치에서 그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판적으로 볼 만한 일은 단 한가지도 없었다.
프랑스는 대통령 임기가 7년 이기에, 왠만해서 재임에 성공하지 못함에도, 그는 좌파정치인 최초로 재임에 성공하여 무려 14년간 재임하였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하나의 비리도 없었고, 우파 정치인들과도 매우 친분이 두터워 정치적인 화합을 이끌어낸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문화 선진국을 앞세워, 센 강 바로 옆에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첨단 시스템을 갖춘 막대한 비용이 드는 국립도서관을 계획하였을 때, 좌우 막론하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반대를 하였지만 그는 결국 이루어 내었다. 후일 그 도서관의 이름을 공모하였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란 이름에 한 표를 주었다. 그 도서관에는 아프리카, 중동 및 동양관도 있는데, 동양관에는 한국관도 있다. 나도 가끔 그곳에 들러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 김만중의 <구운몽> 등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국민들은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국부”라고 불러준 사람이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나는 당시 정치인도 저렇게 존경받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참고로 유로화가 만들어지고, 돈의 이미지(2유로 동전)에 정치인의 얼굴이 새겨진 것은 미테랑 대통령 뿐이다.
내가 미테랑 대통령이 존경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존경했던 사람이 육영수 여사였기 때문이었고, 미테랑 대통령의 일화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육영수 여사와 오브랩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나는 가끔 “솔직히 육영수 여사가 신사임당보다 더 낫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육영수 여사는 당시 <청와대의 야당> <청와대의 좌파>라는 별명을 가졌었는데, 그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너무 힘으로 밀어 부치거나 과도하게 권위적으로 나갈 때마다, 적절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여 충돌을 막았으며, 누구도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에 싫은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육영수 여사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염려하고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이 육영수 여사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박정희 대통령의 복은 전부 육영수 여사한테서 나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곤 했는데, 나는 그 말에 100% 공감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육영수 여사는 전국에 고아원을 짓고 직접 돌보며, 가난한 노인들을 방문하고, 소년 소녀 가장들을 위해 직접 봉사자들과 김장도 담그는 등, 그야 말로 눈코뜰세 없이 바쁘게 헌신하신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복지 제도가 거의 전무했던 당시로는 육영수 여사가 복지 사각지대를 돌보았던 선구자 였던 셈이다. 게다가 그분의 청와대 살림살이는 얼마나 소박하고 청념하였던지 일반인들이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에 맞아 서거 하였을 때의 일화도 기억이 난다. 병원에 도착하여 간호사가 총탄을 빼내기 위해 한복을 벗겼을 때, 그분의 속옷이 당시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옷, 여기 저기 천을 덧대어 기워 입었던 것을 보고, 간호사가 펑펑 울었다는 일화가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당시 육영수 여사를 비판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육영수 여사는 “국모”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당시로서는 좌파적인 마인드가 가득했던 내 가슴에 육영수 여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테랑 대통령의 일대기를 뉴스에서 볼 때, 나는 “프랑스에 미테랑이 있다면, 우리 한국에는 육영수 여사가 있다”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진정한 좌파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국민들 특히 서민들의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좌파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좌파는 어느 때부턴가 변질되고 타락한 듯 하다. 정직하고 도적적으로 청념하며, 힘없는 약자 편에서서 그들의 어려움을 돌보며, 권위적이지 않고 휴머니티하고, 항상 화합과 일치를 이끌어 내며, 앎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러한 존경스런 정치인이 진정한 좌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렇게 변해 버렸는지 가끔 서글픔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