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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레위기16장1~10절
제목 :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마라
오늘도 말씀 앞에 나오신 성도님을 축복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말씀을 통해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충전하는 말씀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16장까지를 전반부, 17~27장을 후반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나님께 나가는 길, 또는 제의적인 차원에서 거룩을 다루고,
후반부는 세상속에서의 삶 또는 윤리적 차원에서 거룩을 다루고 있습니다.
11~15장까지를 “정결법”이라고 부릅니다.
즉, 다양한 종류의 부정을 언급하고 그 부정에서 정결하게 될 수 있는 방법을 다룹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백성의 죄와 부정을 씻는 일에 대미를 장식하는 속죄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의 죄를 속죄합니다.
일년에 한 번 속죄의 때면 대제사장이 휘장을 지나 법괘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10장에서 절차를 무시하여 화를 당한 아론의 두 아들을 상기시키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10장과 16장 사이에 나온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하는 문제는 오늘 16장에 나오는 속죄의 규정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삽입이 되었을 까요?
11장부터 15장에 등장하는 부정결의 문제는 16장의 속죄의 규정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배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평소의 부정결을 제거하는 날입니다.
1. 서론(1~2절)
1) 아론의 두 아들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1절).
“[1]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아론의 두 아들. - 곧 나답과 아비후를 가리킵니다(10:1).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받은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지 않으신 다른 불로 제단에 분향하려다가 회막문 앞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10:1,2)
*10:1,2 “[1]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 단순히 성소(the Holy Place)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소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속죄일 규례를 언급하기 전에 이 나답과 아비후 사건을 먼저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거룩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고,
둘째, 하나님을 섬길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대로 일점 일획의 가감 없이 그대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2절)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성소의 휘장(揮帳). - 즉 성소(the Holy Place)와 지성소(the Holy of Holies)를 분리시키는 휘장(curtain)을 가리킵니다.
구속사적으로 이 휘장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분리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운명하셨을 때,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마 27:51)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화해의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여호와의 법궤가 안치된 성소의 휘장 안, 즉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장소로 일반인은 물론 제사장들의 출입도 금지되었으며,
오직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유대 종교력 7월 10일)에만,
대제사장이 희생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법궤 위 속죄소. - 여기서 속죄소(카포레트)는 법궤를 덮는 뚜껑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법궤(언약궤)는 사면을 금으로 둘러싼 상자로,
그 속에는 ①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②아론의 싹난 지팡이 및 ③십계명 두 돌판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히 9:4).
*히9: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5:10 및 25:17을 참조하라.
*출25: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25: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적 거처인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일년에 오직 한번 대속죄일,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는 것을 빼놓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일반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비록 거룩한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정한기일, 정한 규례를 벗어나 이곳에 들어가면,
그 역시 죽임을 면치못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담과 아비후)
-아론의 아들 나담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1~2)
구약 시대 때 이처럼 지성소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것은
하나님과 법죄한 인간 간의 철저한 분리 관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역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 교제의 귀중성을 깊이 교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 곧 법궤 위 속죄소가
하나님의 지상 거처임을 암시합니다.
이때 지성소 안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인해 구름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때의 충만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암시하는 가견적인 상징물입니다(Keil,Matthew, Lange).
2. 속죄일을 위한 제물과 복장(3~5절)
1)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습니다(3절).
“[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 대속죄일의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 비단 아론 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대제사장'이 성소를 거쳐 '지성소'에 들어가게 될 매를 가리킵니다.
이는 평소 일반적인 제사를 위해 '제사장들'이 '성소'까지만 들어가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 이 제물은 대제사장 자신과 그 권속(眷屬)들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물입니다.
이처럼 대제사장이 먼저 자신과 더불어 제사 직무를 맡은 여타 제사장들을 위해 속죄제(贖罪祭)와 번제(燔祭)를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사장의 직무 수행 도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질렀을지도 모를 모든 죄를 용서받고
둘째, 용서받은 것에 감사하여 앞으로 더욱 헌신할 것을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대속죄일의 속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로 몸을 씻은 후 힌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4절).
(2) 자신과 권속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용 수송아지와 번제용 수양 각 한 마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3)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용 수염소들과 번제용 수양 하나를 준비해야 했습니다(5절).
2) 그의 몸을 물로 씻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라(4절).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 대속죄일에는 평소 대제사장이 성전 봉사 때 입던 화려한 에봇(8:7-9) 대신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義)를 덧입는 것을 상징하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자세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후일 인류의 속죄를 위해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형체를 벗으시고, 사람의 형체를 입으사(빌 2:6-8)한 점 흠 없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신 사실을 예표합니다.
속옷(케토네프). - 겉옷 안에 입는 긴 옷을 가리키는데, 겉옷을 입고 난 후에도 이 속옷의 소매와 치마 하단 부분이 겉으로 노출되었습니다(출 28:4).
속바지(미크나스). - '모으다', '회집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동사 '카마스'에서 파생된 단어로, 제사장이 성전 봉사시 입는 속옷 바지를 가리킵니다.
속옷이 치마 형태로 되어 있었으므로 치부(恥部)를 가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바지가 필요했습니다(출28:42).
이것은 타라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수치스러움을 가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띠 ... 관 - 출 28:4 주석을 참조하라.
물로 몸을 씻고. -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 이처럼 물로 몸을 씻는 행위는 범죄로 말미암은 오염을 씻어낸다는 뜻을 가진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후일 신약의 세례 의식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 갈지니라(5절).
“[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드려지는 속죄 제물과 번제물의 수효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이다(4:23).
이처럼 속죄 제물이 세밀히 기록된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규례대로 한치의 소홀함 없이 모든 면에 치밀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3. 속죄일 의식의 개요(6~10절)
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6절).
본절은 대속죄일 속죄 제사의 한 과정으로 대제사장 자신과 자신의 권속을 위한 속죄 제사 명령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대제사장 아론의 가족 뿐만 아니라, 일반 제사장들 및 그들의 가족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선택 받은 자와 그 가족들은 남들에 앞서 먼저 성결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속죄하고. -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아론은 자신과 자신의 모든 직-방계 가족의 죄를 엄숙히 고백해야 했다고 합니다(Lange, Matthew Henry).
한편 '속죄하다'란 말의 어의(語義)에 대해서는 1:4 주석을 참조하라.
2)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7절)
두 염소. - 이것은 대속죄일에 전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를 위해 드려질 속죄 제물입니다.
일반적으로 드려지는 속죄 제물은 한 마리인데 반해,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염소가 두 마리인 것은
상징적으로 그리스도 사역의 이중성을 예표합니다.
즉 두 마리 중 죽임당하는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하기위해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사실을 예표하고(롬 3:24-26),
내쫓김을 당하는 염소는(10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죄악을 멀리 제거해 버리시는 것을 상징합니다(롬 8:33,34).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대속죄일에 이처럼 회중의 속죄를 위해 바쳐질 두 마리의 염소는 그 크기와 모양 및 털의 색깔 등 될 수 있는 한 여러 면이 같은 것이어야 했다고 합니다.
회막문 여호와 앞. - 즉 희생 제물을 잡는 장소는 번제단 북편에 위치했습니다(1:11).
이곳은 제물이 도살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잠시 보관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3)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8절)”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 여기서 제비(lo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랄'은 '돌처럼 거칠다'(be rough as stone)란 기본개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제비 도구가 작고 매끈한 모양의 자갈(pebble)이었음을 암시합니다.
한편, 대제사장 아론은 두 염소를 성막안 북편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 둔 후(1:11; 16:7), 항아리 속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칼피(Calphi)라 불리우는 이 항아리(urn) 속에는 똑같은 크기나 모양를 가진 두 개의 제비가 들어 있었는데, 각각의 제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라예호와)라는 글과 '아사셀을 위하여'(라아자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항아리를 흔든 뒤, 두 손을 넣고 한 손에 하나씩 제비를 집어 두 마리의 염소들 각각의 머리 위에 그 제비를 놓았습니다.
이때 그 머리 위에 '여호와를 위하여'(la-JEHOVAH)라는 제비가 얹힌 염소는 그 목에 붉은 천을 두른 후 여호와께 속죄제(贖罪祭)로 드렸고,
'아사셀을 위하여'(la-Azazel)라는 제비가 얹힌 염소는 그 뿔에 붉은 천을 맨 후 무인지경의 광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4)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9절)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즉 제비뽑은 결과,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희생당하여 여호와께 속죄 제물로 드려지도록 결정된 염소 한 마리를 의미합니다.
5)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었습니다(10절)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 - 즉 제비뽑은 결과, 이스라엘 전 회중의 회중의 죄짐을 지고 무인지경의 광야로 내보내지도록 결정된 또 다른 염소 한 마리를 가리킵니다.
그것으로 속죄하고. - 즉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힌 그 염소를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물(the object of expiation)로 삼아(21절),
광야로 내보내라는 뜻입니다(Keil &Delitzsch, p.398).
아사셀을 위하여. - 여기서 아사셀(scapegoat)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인데 이것은 '염소'란 뜻의 '에즈'와 '가버리다', '사라지다'란 뜻의 '아잘'의 합성어로서 곧 '속죄의 염소' 또는 '내보냄을 받은 염소'를 뜻한다는 견해입니다.
(2) 아사셀(Azazel)은 '쫓겨난 악령', '귀신'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잘젤'이 유음화(流音化)된 것으로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 곧 '사단'을 가리킨다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아사셀을 위하여'란 말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짐을 진 염소를 죄의 장본인인 아사셀이 사는 광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는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3)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아자젤'은 '제거하다', '없애다'란 뜻의 아랍어 동사 '아잘'의 강세형으로 그 의미는 '완전한 제거'인데,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이 멀리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시 103:12; 사 38:17; 렘 31:34; 히 9:26)는 견해이다.
(4) 쫓겨난 염소가 거하게 될 광야의 어느 장소를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한편 우리는 상기한 네 가지 견해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점은 이 염소가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지고 멀리 떠나 갔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고 광야로 멀리 떠난 이 아사셀의 염소는, 인류의 죄악을 도말하시기 위해 그 죄짐을 지고 성문 밖 골고다로 향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 한다는 점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습니다.
광야로 내보낼지니라. -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대제사장은 광야로 내보낼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합니다.
"오, 주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 집이 잘못을 범하고,
배반함으로 당신 전(前)에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 간절히 비노니, 이제 주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기록된 바, '속죄의 날에 너희가 내 앞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리라'하신 그 말씀대로 이제 주의 백성이 당신께 지은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이시간 용서하소서!".
하나님은 속죄일을 지키는 백성들이 세마포옷을 입은 대제사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기를 원하였을 까요?
대제사장의 의상의 모습은 이전의 화려하고 권위적인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마포 옷은 평상시에 대제사장이 입는 화려함과 권위를 드러내는 옷이 아니라 민밑한 옷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임제 앞에 가장 거룩한 장소로 들어가는 아론의 겸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론의 모습은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은 화려함이 아니라 자신을 나추는 겸손입니다.
이날의 대제사장의 모습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배우 컷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의 모습과 자신을 동시에 쓸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모든 죄들을 그 살아있는 염소에 전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두 개의 단어를 연결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거룩이며, 또하나는 겸손입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10장 아론의 두 아들 사건을 통하여 볼 수 있었던 것 처럼 하나님의 방법과 때에 맞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나가는 온전한 방법이 다쳐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자격을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확보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감으로 인해서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의 방식인 섬김의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글어내야 할 것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혼탁하여 더 높고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거룩을 증명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므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섬김의 모습을 삶속에 들어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로 임하시는 두려운 분이기에 대제사장조차 일 년에 한 번 이상 속죄제사 없이는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1~5절)
절차를 무시하다 화를 당한 아론의 두 아들(10장)을 상기시키며,
정한 때에 정한 절차를 통해 서만 나아오도록 명하십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무시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과 담력을 얻었습니다.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지만 아론의 두 아들처럼,
‘아무렇게나’ 만나는 건 아닙니다.
예배는 본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거룩함의 무게를 잃은 예배는 경박합니다.
우리 예배는 친밀함을 강조하다가 경솔함만 남은 건 아닐까요?
2)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 중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 염소라 불리는 다른 한 마리는 광야로 보냅니다(10절).
회막 안의 속죄제와 달리, 아사셀 염소 의식은 모든 백성에게 공개됩니다.
자신들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한 것입니다.
세상 죄를 시고 가신 어린 양 예수와
그 십자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거룩한 시위’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격할 때 세상의 부정한 문화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혁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평상시 입던 화려한 의복(출28장) 대신,
흰 세마포로된 의복만 입습니다(4절).
전혀 내세울 것 없는 종처럼 보이는 제사장의 소박한 옷이,
바로 ‘거룩한 옷’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포장한 거룩함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해질수록 교만하다면 가짜입니다.
겸손한 예수 닮음이 참다운 거룩함입니다.
2) 아론은 먼저 자신과 자신 집안을 위해 속죄제를 드립니다(6~10절).
먼저 자신을 속죄하지 않고 백성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 제사장은 은혜로 주어지는 직분이요,
은혜로 유지되는 직분임을 알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죄와 죽음의 한계는
더 온전한 대제사장의 도래를 고대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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