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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17장12~27절
제목 : 무대 위에 선 다윗
블레셋과 대치한 지 40일이 지났을 때 다윗이 등장합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을 찾은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의 말을 듣습니다.
1. 다윗이 전장을 찾아가다(12~19절).
1)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입니다(12절).
“[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1)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에브랏'(Ephrath)은 베들레헴의 고대 명칭으로서(창 48:7),
족장 야곱의 아내 라헬이 산고로 죽은 곳이며(창 35:16-19),
무엇보다도 후일 선지자 미가의 입을 통해 메시야가 태어날 장소로 예언된 곳입니다(미 5:2).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한편 본서 저자는 여기서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과 구별했고(수19:15;삿 12:8),
또한 '에브랏 사람'이라고 밝혀줌으로써 이새의 집안이 베들레헴 본토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유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의 고향으로서,
그리고 장차 메시야 그리스도가 태어날 곳으로서,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
'늙은 사람'(자켄)은 성경에서 보통 '장로', '노인'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한편 '나이 많아'는 '나이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앞섰다'란 의미입니다.
결국 이같은 언급은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이 참전하고 있던 블레셋과의 전쟁에 이새가 참전치 아니했던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Fay).
한편 스미드(R. Payne Smith) 박사는 당시 이새에게는 장성한 세 아들이 있었고, 도합 8명의 자녀가 있었던 사실에 근거하여 이새의 나이를 최소한 60세 이상으로 보았습니다.
(3) 여덟 아들이 있는 중.
16:10, 11에서도 이새의 아들은 여기서처럼 여덟 명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역대상 2:13-15에서는 일곱 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는 이새의 아들은 원래 여덟 명이었으나 한 명은 죽었다고 보는 견해(Keil, Smith)입니다.
2)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습니다(13절).
“[13]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대에 나갈 자격과 의무가 있는 자는 이십 세 이상의 남자였습니다(민 1:3).
엘리압...아비나답...삼마 - 16:6-9
'삼마'(Shammah)는 '황무지'란 뜻으로서, 삼하 13:3; 대상 2:13에서는 '시므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삼하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대상2:13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3) 다윗은 막내입니다(14절).
“[14]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다윗은 막내라. -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형들과는 달리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
즉 이는 당시 다윗의 나이가 20세 미만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4) 지금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입니다(15절).
“[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1)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다윗은 수금을 타기 위해사울에게 갔다가(16:19, 22),
그의 병이 호전되자 양을 치는 자신의 일을 위하여 다시 베들레헴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2)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이것은 오히려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기 위하여'로입니다.
즉 이것은 다윗이 수금을 타던 일을 그만 두고, 사울의 곁을 떠났던 한 가지 목적을 언급하는 어구인 것입니다.
5) 블레섯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습니다(16절).
“[16]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블레셋 사람. - 이것은 단수로 표기되었다는 점에서, 블레셋 군대가 아닌 '골리앗'(Goliath) 개인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 이것은 블레셋과의 전투가 계속적으로 소강(小康)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이같은 상태가 계속된 까닭은
(1) 이스라엘측에서 골리앗을 상대할 용사를 아직껏 내보내지 못했으며(11절)
(2)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진(陳)이 자리잡고 있던 지형적 조건상 전면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3절).
그러나 불레셋의 선봉장 골리앗의 계속 되는 위협으로 말미암아 전황(戰況)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 '사십 일'은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해 있었음을 예시해 주는 어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창 8:6;삿 13:1; Krinetzki).
즉 본서 저자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이같이 시련과 위기의 수인 '사십 일'이라는 말을 특별히 언급함으로써, 다윗이 매우 필요 적절한 시기에 이새에 의해 블레셋과의 전투 장소에 보내졌음을 강력히 암시하려고 한 듯합니다.
6) 다윗이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전쟁터에 갔습니다(17,18절)
“[17]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이새가 여기서 이같은 조치를 위한 이유는, 블레셋과의 사십 일 이상의 대치로 인하여(16절) 이스라엘 군대의 식량이 고갈되었을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각 가정은 싸움에 징집된 자식들에게 일종의 병참 지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볶은 곡식...떡...치스. - 성경에서 이것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곤고한 자들에게 적절한 음식으로 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25:18;삼하 17:28;룻 2:14).
특히 '볶은 곡식'과 '떡'은 서민들에 의해 애호되던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치스'(할라브)는 문자적으로는 '우유'를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건조한 우유덩어리'를 가리킵니다.
한편 '한 에바'는 약 23리터에 해당하는 구약 시대 고체량의 부피 단위입니다(출 16:36).
안부를 살피고. - 이것은 건강 및 생존의 여부에 관한 '솰룸'(평안')의 상태를 알아보라는 당부입니다.
증표를 가져오라 - 이것은
(1) 다윗이 제대로 형들을 만나 형들의 안부를 살폈는지의 여부,
(2) 예물이 전달됐는지의 여부,
(3) 다윗에 의해 이새에게 전달될 형들에 관한 소식의 진위(眞僞) 여부를 증명할 어떤 '증거물'(token, RSV)을 뜻합니다.
틀림없이 이것은 서신(書信)의 형태였을 것입니다(F. R. Fay).
7)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19절)
“[19]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본절도 18절에 이어, 이새에 의해 다윗에게 전달됐던 내용입니다.
엘라 골짜기 - 2절 주석 참조.
2. 다윗이 골리앗의 조롱을 듣다(20~23절)
1)다윗의 순종과 부지런함 책임감(20,21절).
“[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21]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다윗은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깁니다.
그의 순종과 부지런함과 책임감이 잘 나탑니다.
아마도 저자는 여기서 사울의 왕권을 계승할 자로서의 다윗의 인품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진영(마갈라). 고대 수비 진지의 일반적 형태인 둥근 모양을 한 바리케이드를 가리킵니다(Lange).
한편 칼빈(Calvin)은 이 바리케이드가 병거로 이루어졌다고 보고 '병거의 장소'로 이해하였습니다(26:5, 7).
전열을 벌이고. -전투 대형으로 군사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 형에게 문안합니다(22절).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 다윗은 이같이 함으로써 형들이 있는 전투 대열로 신속히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서 '짐'은 형들에게 주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가져온 음식 보따리를 가리킵니다(17절).
짐 지키는 자. - 새 영어 성경은 이 말을 '병참 장교'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번역을 따른다면, 다윗은 그때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전하지 않고, 여기의 이 병참 장교의 손을 통해 형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3) 그때에 마침 골리앗이 전열에 나와서 싸움을 돋우는 말을 하매 다윗이 듣게 됩니다(23절).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 여기서 '전열'(마아로트)은 골짜기를 경계로 양쪽 언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군사 대열을 가리킵니다(3절).
그리고 '나와서'(올레)는 '올라가다'란 의미인데, 이것은 골리앗이 자신의 진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진쪽의 언덕으로 어느 정도 올라왔음을 가리킵니다.
전과 같은 말. - 곧 8-10절의 내용과 같은 모욕과 조롱의 말을 말합니다.
*8~10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3. 다윗이 분개하다(24~27절)
1)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합니다(24절).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즉 골리앗이 더 이상 따라 올라올 수 없는 안전지대로 피신했다는 말입니다.
이로 볼 때 당시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한 사람으로 인하여 얼마나 사기가 저하되고 두려움과 떨림에 사로잡혔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만 신뢰 할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오늘 골리앗이 아닌 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2) 사울 왕에 의해 약속된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주시는 상금입니다(25절).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1)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이와 같이 큰 재물을 약속함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는 경우는 성경에 많이 언급됩니다(수 15:16;삿 1:12;삼하 18:11;대상 11:6).
한편 당시의 왕정(王政)이 실시된 지 20여년(15:1) 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으므로, 아마도 사울 왕가(王家)는 어느 정도의 행정 조직을 갖추고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임으로써 많은 재정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8:15, 17).
사실 고대 군주국에서는 군주(君主)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하의 충성에 대한 보상이 뒤따랐고, 따라서 그러한 관습이 군주가 많은 재정을 보유하려 했던 목적 중의 하나였습니다(8:14, 15).
(2) 그 딸을 그에게 주고.
성경에는 '메랍'과 '미갈'이라는 두 딸만이 사울의 딸로서 언급되고 있습니다(14:49).
그러나 사울에게는 이들 외에도 또 다른 딸들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에 이 두 명만이 언급된 까닭은, 이 둘만이 다윗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즉 맏딸 '멜랍'(Merab)은 결국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지만 처음에는 다윗에게 주기로 약속됐던 처지였고(18:17-19),
또한 둘째딸 '미갈'(Michal)은 결국 다윗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18:20-27).
어쨋든 왕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며,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아 차기의 왕으로 확정된(16:13) 다윗에게는
그 일이 왕좌로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보다 평탄하게 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3)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사울의 이 약속은 ‘부역을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Smith) 입니다.
우가릿 문서에 용감한 행동을 한 사람이 왕에 의하여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다는 평행 구절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있습니다.
한편 여기 '아비의 집'은 가문(家門) 전체를 가리킵니다.
3)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느냐고 묻습니다(26절).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 이 말은 다윗의 의분(義憤)이 단순히 개인적이거나 또는 골리앗을 죽이려한 다윗의 의도가 자신의 영달이나 공명심 때문이 아니라, 오직 골리앗으로 부터 당한 민족적 치욕 및 신성 모독을 제거하려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한편 여기서 '치욕'(헤르파)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에게 준 '모욕'(10절)과 동일한 어근의 말입니다.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 이것은 다윗이 이미 약속된 것 (25절)보다 더 큰 상급을 사울에게 약속받으려 했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은 그때 이 말을 함으로써 골리앗을 죽이는 일의 당위성.시급성을 시사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1) 본절의 후반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라는 말과
(2) 이후 딸을 주겠다는 사울의 제안을 다윗이 사양했다는 언급(18:18) 등을 통해 분명해집니다.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 - 이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대체로 포경 수술을 안했다는 사실 자체 보다는, 그들이 이스라엘과는 달리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 관계 하에 있지 않은 이방 민족이라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습니다<14:6 주석 참조>.
그러므로 다윗의 이 말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하나님께서 자신과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라는(16:18) 확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 - 이같은 문구는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동에 관한 언급이 다뤄지는 문맥중에 종종 나타납니다(Klein, 수 3:10;왕하 19:4).
그리고 여기 '살아 계시는 하나님'(엘로힘 하임)은 말할 나위 없이 블레셋이 섬기던 다곤(Dagon, 5:2 주석 참조) 우상의 무기력함과 무가치함을 경멸하는 말투임이 분명합니다(렘 10:6-10).
이같은 다곤 우상의 무기력성은 다곤의 이름을 빙자한 골리앗의 다윗에 대한 저주가 아무런 효험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결과적 사실로써 증명되고 말았습니다<43절>.
뿐만 아니라 다곤 우상의 무기력함은 과거에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완전한 항복을 함으로써 백일하에 폭로되지 않았던가(5:3, 4)!
한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의분으로 훨훨 타올랐던 소년 다윗의 이 말은 당시 사울 통치하의 무기력하고 침체된 이스라엘 군대의 무감각성을 일깨워 주는 각성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4)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소문이 사실임을 알게 합니다(27절).
“[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본절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는 세 가지 상급(25절)이 주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결코 근거 없는 유언 비어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다윗이 왕으로 선택되어 기름부음을 받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합니다(12~16절).
그럼에도 그는 형들처럼 전쟁에 나가지도 못하고 여전히 막내아들로 아버지의 양을 돌봐야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기대하거나 주목하지 않았고, 심지어 기름부음을 목격한(16:13)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 무대에 오를 때까지 일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효율성이 중시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처럼 더디고 돌아가는 듯 보일지라도 우리가 주님의 뜻 안에 있다면
단 한순간도, 단 하루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마주할 내일은 오늘 주님의 뜻을 성실히 맞이한 결과일 것입니다.
미미해보이는 일상 없이, 의미 있는 역사도 없습니다.
2)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다가 전쟁터로 나갔듯이(11:5),
다윗도 양을 치다가 부름을 받습니다(17~22절)
기름부음 받은 왕이면서 농부인 사울이 압제의 울음을 구원의 치욕을 영광으로 바꿀지 증명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치던 양도, 지던 짐도 다 ‘맡기고’(버리고)새 역사의 부름에 응답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인생의 주도권을 주님께 넘겨드릴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3) 40일이 지났는데도 골리앗과 맞설 상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23~25절).
방법을 강구하던 사울이 내놓은 궁여지책은 ‘보상’입니다.
골리앗을 주기인 자에게 후한 대우(재물, 결혼, 면세)를 약속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믿음으로 맞서기 보다는 손쉬운 방식으로 믿음 없음을 감추려 했습니다.
4) 이스라엘은 두려워 도망하지만 다윗은 골리앗의 모욕을 하나님을 향한 모욕으로 간주하여 분노합니다(26,27절).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려는 동기도 ‘보상’때문이 아니라,
할례받지 못한 자에게서 받는 ‘치욕’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거대한 골리앗을 ‘보고’(24,25절) 패배를 꿈꿀 때,
다윗은 위대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의 보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사울의 풍족한 보상이 아니라,
다윗의 거룩한 분노이고 거룩한 상상력(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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