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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35잘1~15절
제목 : 에돔 심판 신탁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환난 날에 칼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고, 그 땅과 기업을 차지하려 한 에돔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세일산을 향한 심판 선언(1~9절)
1) 세일산에 대한 예언(1~2절)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본장은 36장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이스라엘 산'(36장)과 대조되는 '세일 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합니다.
여기서 '세일 산'은 이스라엘의 소멸을 위해 끊임없이 그들을 적대시하고 괴롭혔으며(민 20:18-20;삼상 14:47;암 1:11), 이스라엘의 멸망을 조롱하고 즐거워했습니다(시 137:7).
에돔 족속을 지칭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러한 에돔에 대한 심판 예고는 이미 25:12-14에 언급된 바 있습니다.
본장에서 에돔에 대한 심판이 보다 구체적으로 재 기술된 것은 이웃한 에돔의 제거가 이스라엘 회복의 전제인 고토 귀환의 필연적 선행 조건이라는 점에 기인된 것입니다.
한편 에돔의 심판이 단순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잔악함과 우상 숭배에도 기인한다는 점에서 에돔은 근본적으로 구원의 반열에 동참 할 수 없는 타락한 모든 이방 세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사 34장;63:1-6, Hengstenberg, Schroder, Delitzsch).
따라서 본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회복(36장)과 상극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방 세력의 멸망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 '세일 산'은 아라바 동쪽 사해 남동부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에돔 족속의 거주지였던 까닭에 성경은 종종 이를 에돔 족속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창 32:3;민 24:18;수 24:4).
한편 '향하고'(심)는 원어상 '(시선을) 주목하여 고정시키다'란 뜻이며, '쳐서'(알라이우)는 '대적하여'(against)란 뜻인 바, 본 구절은 확고한 목적 아래 극단의 적대적인 감정을 가리고 주시한다는 의미로서 에돔의 필연적인 멸망을 암시합니다.
2) 첫 번째 선포(3~4절)
(1) 폐허의 심판(3~4a절)
“[3]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 [4a]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 - '황무지와 공포'이란 말은 둘 다 '황폐하게 되다', '폐허가 되다', '경악하게 하다'란 뜻의 어근 '솨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 본들은 본 구절을 '황폐시켜 폐허가 되게 하고'(NIV, RSV), '가장 황폐하게 만들고'(KJV)로 번역했습니다.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 본 구절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병행 대구를 이루고 있다. '무너뜨리며'(호르바)는 '가뭄'이란 일차적 의미와 함께 '황폐함', '황무함' 등의 뜻도 함축하고 있는 바, 본절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에돔의 성읍에 임할 심판이 극심할 것임을 암시한다.
(2) 인지양식(4b절)
“[4b] 네가 황폐하게 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 여기서 '알리라'(야다)는 단순한 지식적 앎이 아니라 전인격을 통한 체험적 깨달음으로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골 1:10).
*골1:10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따라서 본 구절은 위에 언급된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 길에서 떠나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진정한 구원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합니다(11절).
3) 두 번째 선포(5~9절)
(1) 심판의 이유(5절)
“[5]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 ”
옛날부터 한을 품고 - '한'(에바)은 원어상 극단적인 '증오'(hatred, KJV)나 '적대감'(enmity, RSV)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옛날부터'(올람)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의 멸망 원인이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극한의 적개심임을 밝힙니다.
또한 그 적대감은 야곱과 에서(창 25:22;27:37-41) 이래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끈질기고 맹렬한 것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 - 여기서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시기를 가리킵니다(B.C. 586).
이는 이어지는 '죄악의 마지막 때'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지됩니다(사 40:2, Delitzsch).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석가들은 이를 에돔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느 1:3에 나타난 대로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보다 훨씬 후대에 일어난 에돔의 에루살렘 재 파괴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 - '칼의 위력'(예데 하레브)은 문자적으로 '칼을 가진 자의 손'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던 바벨론 군대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이 이스라엘을 바벨론 군대에게 넘겨주었다는 의미로, 특별히 이스라엘 멸망의 책임을 에돔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에돔의 죄악상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2) 멸망의 심판(6~9절)
⓵ 피가 너를 따르리라(6절)
“[6]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에게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
본절에서 4번이나 연속적으로 반복된 '피'(담)는 '에돔'에 대한 문자적 병행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Delitzsch, Schroder).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임 로 담 사네타) - 여기서 '임'은 원어상 조건절에서는 '만일'(if)의 뜻을, 부정사로 쓰일 때는 '...아닌'의 뜻을 각각 가리키는 바, 혹자는 후자의 견해를 취해 본 구절이 이중 부정을 통해 에돔이 피를 미워했다는 사실을 확증한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Hengstenberg).
그러나 '만일'이 여기서는 '...이므로'란 의미로 스여졌다는 점과 본절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대, 본 구절은 에돔이 피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Delitzsch, Schroder).
또한 여기서의 '피'는 NIV의 번역대로 '유혈'이나 '살인'(bloodshed) 등을 지칭하는 표현이므로 본 구절은 에돔이 그러한 피 흘리는 행위들을 즐겨 행했다는 의미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피가 너를 따르리라. - 에돔이 즐겨한 피 흘리는 행위에 대한 심판적 결과가 언급됩니다.
곧 이는 히브리인들의 동해 보복 사상에서 유추된 구절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한 자는 반드시 자신의 피를 흘리게 되는 심판적 형벌을 당하게 됨을 보여줍니다(창 9:6;출 21:23-25, Havernick, Schroder, Delitzsch).
한편 '따르리라'(라다프)는 '사냥하다', '추적하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데, 그 따름의 집요함을 드러내는 말로서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피의 보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⓶ 세일 산이 황무지와 페허가 되게 하겠다(7절)
“[7]내가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
본절은 6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심판적 정황을 기술합니다.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 여기서 '왕래하는 자'는 타지(他地)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왕래하는 모든 에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끊을지라'(카라트)는 '자르다'란 일차적 의미 외에 '파멸시키다', '소멸시키다'란 뜻을 가지는 바, 모든 에돔 사람들이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 속해 있음을 밝힙니다(Taylor).
⓷ 산과 골짜기와 시내가 칼에 죽임당한 자들의 시체로 뒤덮입니다(8절)
“[8]내가 그 죽임 당한 자를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죽임 당한 자를 네 여러 멧부리와, 골짜기와,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
본절에 대해서는 32:5, 6 주석을 참조하라.
⓸ 영원한 황무지가 돼 다시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됩니다(9절).
“[9]너를 영원히 황폐하게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절부터 점진적으로 전개된 에돔에 대한 심판의 정황이 본절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멸망이라는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냅니다(29:11, 12 참조).
영원한 멸망에 떨어진 소돔과 고모라처럼 영원한 황무지가 돼 다시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영원한 적게심’이 에돔을 ‘영원한 멸망’ 에 떨어뜨립니다.
멸망의 심판을 통해 에돔은 여호와를 알게 됩니다.
2. 질투하시는 하나님(10~15절)
1) 세 번째 선포(10~13절)
(1) 심판의 이유(10절)
“[10]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 것이며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두 번째 죄과가 기술됩니다.
곧 에돔은 그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에 사로잡혀 분열 왕국 유다와 이스라엘의 치리권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 것이며 내 기업이 되리라. - 여기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모두 분열 왕국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키는 바, 에돔이 선민 이스라엘을 '두 민족'(쉐테 하고임)과 '두 땅'(쉐테 하라초트)이란 분리적 개념으로 명명한 것은 에돔이 그들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하나의 신앙 공동체가 아닌 각각의 민족으로 여긴 사실을 암시합니다(Schroder).
'내 기업이 되리라'(야라쉬누하)는 '나의 소유로 취할 것이다'란 의미를 가지는데, 이처럼 소유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강한 정복 야욕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집니다.
실로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에돔 족속들은 비옥한 땅 이스라엘에 대한 끊임없는 정복 야욕을 드러내었으며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이용해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에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 여기서 '거기'는 상반절의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을 지칭하는 말로서 에돔이 소유하려던 이스라엘 지역뿐 아니라 전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시합니다.
한편 혹자는 '있었느니라'(하야)를 현재형으로 보아 여호와께서 아직도 그곳에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하나(Kliefoth), 이는 문법상 과거형으로 당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입니다(Delitzsch).
또한 본절의 말미에 이러한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실제적 통치자가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강조함과 더불어 에돔의 이스라엘에 대한 정복 야욕이 바로 그 통치자와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대적하는 심각한 죄악이었다는 것(Schroder, Havernick), 그리고 비록 지금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간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란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집니다(Delitzsch).
(2) 진노의 심판(11절)
“[11]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심판할 때에 그들이 나를 알게 하리라”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 2인칭으로 언급된 '네가'는 에돔을, 3인칭 복수로 언급된 '그들'은 10절에 언급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 곧 이스라엘 공동체를 각각 가리킵니다.
또한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은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끊임없는 적대감의 내용을 드러낸 표현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심판할 때에'란 말과 함께, 같은 적대적 감정으로 에돔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로서(Delitzsch)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와 필연적인 심판의 시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를 심판할 때에 그들이 나를 알게 하리라. - 여기서 '국문할'(솨파트)은 원어상 법정적 용어로 '심판하다', '벌하다', '선고하다'란 의미를 가지는 바, 일반적인 유무죄의 판결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죄과에 대한 최종적인 형벌의 선고를 가리킵니다.
한편 본 구절에서 '그들'은 에돔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반절의 '그들'과 같은 말로 선민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자와 해방 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3) 진노의 이유(12~13절)
“ [12]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폐하였으므로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삼키게 되었다 하여 욕하는 모든 말을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13]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이스라엘의 멸망이 있는 후 에돔의 행각에 대한 묘사와 함게 그에 따른 심판의 암시가 기술됩니다.
이스라엘 산들 - 곧 에돔 족속을 상징하는 '세일 산'(2절)과 대구를 이루는 말로 전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삼키게 되었다(라누 니트누 레오클라). - 문자적으로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자신들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호기(好機)로 여긴 에돔의 야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욕(네아차)은 원어상 '경멸하다', '신성 모독하다'란 뜻을 가지는 바, 에돔이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그 멸망을 조소한 모든 행위들이 곧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한 종교적 차원의 극악한 범죄였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모든 말들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을 에돔의 멸망과 황폐함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하실 것이란 뜻으로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 의지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입으로 자랑하며 - '자랑하며'( 타그딜루)는 모든 삶의 방면에서 '크게 되다', '초과하다'란 뜻을 지니는데, 이는 에돔의 극에 달한 교만을 가리킵니다.
여러 가지로 말한 것. - '여러 가지'(하타르템)는 원어상 '속이다', '놀리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에돔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2) 네 번째 선포(14~15절)
(1)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겠다(14절)
“[1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되 ”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 본 구절은 시간을 나타내는 불변사 '때'(케)의 해석에 따라 다음 두 가지의 견해로 나뉘어집니다.
⓵ 이 '때'를 전반절과 후반절의 동시적인 시간으로 해석하여, 온 세상을 위해 즐거움이 예비될 바로 그때에 에돔이 황폐하게 될 것이란 의미로 해석한다. 곧 에돔의 황폐와 온 땅의 즐거움은 단지 극적인 대조를 이를 뿐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Delitzsch).
⓶ '때'가 후반절의 사건 이후의 경과된 시간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여, 온 땅의 즐거움이 곧 에돔의 황폐로 말미암아 예비된 것이라는 전후 문맥의 연속적인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입니다(Hitzig, Schroder, Ewald, Kliefoth).
그런데 본절의 문장 구성상 에돔의 황폐가 온 땅의 즐거움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해석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⓵의 견해가 더 자연스러우며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도 적절합니다.
(2) 인지의 양식(15절)
“[15]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리라 세일 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무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 혹자는 이를 14절 내용과의 연속적 관계란 관점에서 여기서의 '네가'를 3인칭으로 보아 '에돔의 황폐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할 것이다'란 의미로 해석합니다(Hitzig).
그러나 많은 학자와 역본들이 '네가'를 원문 그대로 2인칭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LXX, Vulgate, Delitzsch, Schroder) 본 구절은 '에돔이(네가) 이스라엘의 황폐를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에돔 또한 그렇게 황폐하게 될 것이다'란 뜻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무리가 - 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LB)은 이를 2인칭 단수(you)로 번역해 에돔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으나 히브리 본문에서는 분명히 3인칭 복수이므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제3의 타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묵상 Point
1) 새일 산(에돔)을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귀환을 약속하시기 전에(36장) 형제 나라 에돔은 황무지가 되고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실 것이다.
형제의 번영에 질투했으니 그의 멸망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수치에 찬사를 보낸 것인 줄 몰랐을까.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 하겠다’(창12:2)는 하나님의 약속을 몰랐을 리 없다.
그들이 응원한 이스라엘의 수치를 그들이 돌려받게 하실 것이다.
에돔을 향한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의 시작이다.
2) 에돔의 악행을 잊을 수 없다.
형제 나라를 향하여 한을 품고 있었다니. 직접 이스라엘을 치지는 않았지만, 바벨론 군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고, 퇴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칼을 휘들렸다.
에돔의 부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노골적인 자원이었고, 그들은 철천지원수의 멸망이라도 보는 듯 좋아했다.
이제 그들 차례다.
그들은 엎드러지고 흩어지고 죽임을 당하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그렇게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알게 해줄 것이다.
3)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에돔은 두 민족과 두 땅, 즉 팔레스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에서가 잃어버린 장자의 권한을 되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포로로 잡혀갔다고 해서 그 땅이 주인 없는 빈 땅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여전히 거기 계셨다.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 땅을 노렸다가는 그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갖고 있는 유산마저 빼앗길 것이다.
질투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고, 욕하는 모든 말들을 여호와께서 듣고 잊지 않으셨으니 그 욕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살면서 축복이 아니라 심판으로 여호와를 알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 가이드
이웃의 아픔에 공감도, 자비에 공명도 없는 마음은 심판의 대상이다.
유다의 패망은 주변 나라에게는 무주공산인 가나인의 새 주인이 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에돔이 그 땅을 차지한다면 귀환 희망은 허황된 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귀환 약속(36장)을 주시기 전에 에돔의 심판을 예고하신다.
뿌리 깊은 양심. - 에돔은 형제 나라이면서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약탈할 때 그 약탈에 참여했고, 형제의 파멸을 동정하기보다 곤경에 빠진 그들을 적에게 넘겨주기 까지 했다.
형제의 아픔이 내게 기쁨이 되고 형제의 실패를 등에 없고 잘되기를 바란다면 나는 영적인 에돔 후손이다.
위태로운 탐심. -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장자권을 행사하듯 소유권을 주장하며 폐허가 된 이스라엘 영토까지 탐했다.
가나안 의 새 주인이 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에돔을 심판하심으로써 누가 그 땅의 주인인지를 보여주신다.
선을 넘는 탐심은 태초부터 심판의 대상이었다.
공의로운 보응. - 이웃의 불행을 이용한 탐심과 양심은 심판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에돔을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던 나라처럼 사라지게 하실 것이다.
자기 욕망에 취해 형제와 이웃을 사랑과 섬김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 하나님은 나의 존재도, 성공도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겉으론 에돔 심판 선언이지만 실제론 혹독한 유배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희망의 메시지다.
에돔이 유다 멸망에서 하나님의 무능을 읽어내며 조롱했지만, 에돔 심판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포로민들의 회의와 불신을 걷어내신다.
해석은 믿음의 차이이며, 삶의 차이를 만든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4,9,11,15절 에돔의 산 세일을 심판하심으로, 그들로 하나님만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이스라엘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에돔이 이스라엘의 몰락을 통쾌하게 여기며 자기 땅을 넓힐 기회로 삼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교만한 에돔을 철저히 심판하심으로 열국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역사의 주관자가 이스라엘의 주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5-9절 에돔이 이스라엘에 행한 대로, 다시 갚아주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을 때 바벨론의 하수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25:12).
환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돕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칼을 휘둘러 피를 흘린 에돔의 무정함을, 하나님은 결코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피 흘린 죄를 물어 피가 따르게 하시고,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신 것처럼 세일산을 황폐하게 하실 것입니다.
곤궁에 처한 이웃을 못 본 체하고, 도리어 그들을 짓밟는 폭력에 가담하여 제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은 누구든지 이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말과 행위로 더 큰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10-15절 에돔의 헛된 욕심을 허사로 만드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망하면 유다와 이스라엘이 그들 차지가 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또 황폐하게 된 이스라엘의 산들을 보면서 그 산을 차지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보며 그간의 한을 풀었다며 통쾌하게 생각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그 땅에 계시고 이스라엘의 주 여호와가 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자랑하는 입과 대적하는 말을 그치게 하실 것입니다.
세일산에 올라 이스라엘이 황폐한 것을 보고 즐거워했지만, 이제는 그 산과 에돔의 온 땅이 황폐할 것이고, 이를 보고 온 땅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고 있는 이웃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몰락이 가져올 유익을 계산하며 내심 기뻐하지는 않습니까? 무엇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돕는 손길이 우선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구원하시고 심판하시며, 회복하시는 모든 권세가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열방-인도 북부 도시에서는 대기오염으로 학교가 휴교하고 병원에는 호흡기질환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인도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펼쳐 대기오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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