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2월 26일 제2연대(연대장 함병선) 1대대 2중대가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었다.
의귀국민학교는 남원읍 중산간 지역에 있는 의귀· 수망· 한남·신흥리를 학구로 두어 1941년 6월 16일 남원공립국민학교 병설 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 1943년 3월 31일 남원북국민학교로, 1945년 9월 1일 의귀국민학교가 됐다.
제주4·3사건으로 1948년 12월 15일 의귀국민학교가 폐교. 1949년· 8월 31일 남원국민학교 의귀분교장, 1959년 의귀국민학교로 독립했다.
1948년 12월 26일 제2연대(연대장 함병선) 1대대 2중대가 주둔, 학교 옥상에 모래가마니로 진지를 만들고 사진과 같은 동종의 기관총(LMG)이 설치되었다.
** 1949년 1월 12일 06시 의귀리 전투 제2연대 작전도
2중대 1소대 1분대장 이윤 하사가 인민유격대들을 갈겼다고 본인 진중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사살 96명, 생포 14명, 소총60정과 도검류 다수 및 비밀문서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공으로 이윤하사는 이등중사(상병)로 특진되었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남로당 인민해방군 도당의 서귀포쪽 유격대와 남원면당의 자위대 200여 명이 모두 동원되어 공격했지만 설재련 중대장은 사전 정보를 입수 대기 하고 있다가 2시간의 접전 끝에 무장대 51명을 사살(미군측 기록)하고 패퇴시켰다.
이 전투에서 국군 4명 전사(일등상사 문석춘, 일등중사 이범팔, 이등중사 안성혁, 이등중사 임찬수)하고 중대장(2중대장 설재련) 등 10명이 부상했다. 남로당인민유격대는 이 기습 공격에 실패함으로써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전투가 끝나고 오전 11시에 순시중이던 육군참모총장이던 이응준 장군이 방문하였다고 전한다.
이 사건 직후 민간인에 대한 진압부대의 보복 총살로 의귀국민학교에 수용됐던 주민 80여명이 학교 동녘밭에서 총살되었고 이 시신은 현재 의귀리에 있는 ‘현의합장묘’에 안장되었다.
위치 ; 남원읍 의귀리 1931-1번지 일대. 속칭 속냉이골(속령골, 송령골)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남로당반란군(인민유격대, 자위대)의 시신이 집단매장된 곳으로 반란군 시신은 학교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다가 이곳 속령골에 집단 매장되었다. 시신들의 부패로 악취가 심해져 가자 2연대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매장 처리했다고 전한다. 이후 돌보는 사람이 없이 최근(2004년)까지 방치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