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햇살을 봅니다.
변상구 시인, 수필가
2020,9.9(수) 맑음
오랜만에 햇살을 봅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는 가뭄으로 애를 태웠고, 비가 오나 했더니 장마로 이어졌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한달을 넘겼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한번도 빤한적이 없었습니다.
그 또한 애가 탔습니다.
농사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 영동이라 부르는 이곳은 깊은 산골입니다.
사계절 중 여름은 엄청 짧습니다.
짧은 기간에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모든 게 바쁩니다.
일주일만 넘겨도 수확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파종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그러다보니 돌아서면 흙고르고 씨뿌리고, 모종 심고, 풀매고, 비료에 약치고, 북돋우다 보면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이곳 특산물은 고랭지 채소들 입니다.
으른 봄은 곰취와 곤드레를 채취하고, 여름에는 배추와 간난이(양배추)로 유명합니다.
요즘은 풋고추 재배도 많이 늘었습니다.
간난이는 출하가 끝나다시피 했고, 배추도 남은 것 보다 빈밭이 많습니다.
빈 밭에는 더 이상 농작물을 기를 수 없습니다.
남은 게 고추인데 이번 태풍으로 넘어지고 쓰러져 버린 게 많습니다.
물론 나는 작은 텃밭만 가꾸었습니다.
거기에다 이것저것 심었어도 혼자하는 일이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늦잠이 많은 내가 새벽 5시면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어둡도록 일을 했습니다.
일 마치고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나홀로 땀을 씻을 때면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했습니다.
그런 하늘은 어릴 때 보고 수십년이 지난 초로에 볼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 순간에 하루의 피로는 땀과 함께 맑끔이 씻어졌습니다.
그 여름의 시간들도 가버린 느낌입니다.
어느덧 가을의 느낌이 물씬하고 몰려듭니다.
이곳 가을은 도시의 초겨울과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에 몸은 움츠려 듭니다.
그래도 이맘때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며칠전 하이난가 마이난가 태풍 두 개가 정확히 이곳을 휘젖고 지나갔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매일 같이 산에서는 바람이 붑니다.
산 바람은 평지의 바람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밤낮 없는 바람에 정신이 없습니다.
구멍 숭숭한 흙집에 비바람이 몰아치면 몸 하나 들일 곳도 없습니다.
온통 바닥은 흙으로 어지럽습니다.
집 수리로 부엌과 방바닥을 파내고 흙바닥을 고르는 중입니다.
이번 폭우에 파놓은 바닥에서 물이 나옵니다.
3대로 살아왔고, 100년도 더 된 집에서 물이 나온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그게 사실이고, 보란듯이 눈 앞에 펼쳐진 현상입니다.
그냥 쏟아지는 밤하늘만 볼 수 밖에요.
그렇게 솟아나는 물구멍을 지켜보며 폭우가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생각도 못한 일들에 두 손 두 발 다들고 하탈감만 들었습니다.
흘러간 세월만큼, 내가 이곳을 떠나 있었던 시간들 만큼이나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복잡한 도시의 환경만 생각했지만 이 오지의 산골도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 순간, 수십 년의 꿈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비바람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악조건 속에도 살아야겠기에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비바람이 그칠때만 바라고 바랐습니다.
기다림의 덕분인지 오늘의 하늘은 맑음입니다.
반째 해가 났습니다.
이래저래 못했던 방구들을 또다시 손보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춥고 눈 쌓인 겨울이 밀어 닥칠지도 모릅니다.
준비없이 눈쌓인 겨울을 만나면 오도가도 못 합니다.
어째든 오는 겨울은 여기에서 보내야 합니다.
급한 마음에 이동식목조주택을 보러 갈까도 했습니다.
그것 또한 섣부른 생각 같아서 차후로 미루었습니다.
개척단의 마음과 암자의 스님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때까지 방구들에 불을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확신 없는 가능성만 있습니다.
그래도 불가능은 없다는 소신에 정신 무장을 합니다.
오늘은 몇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여름내 흐린장마에도 곡식은 여물었습니다.
평년 같은 생산물은 아니지만 불쌍하리만치 그래도 어렵게 자라난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멀리 떨어진 형제들과 며느리와 딸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 한 명과 지인 한 분께 보냈습니다.
부끄럼을 감수하고 아주 작은 소량으로...
이제 남은 것들은 쭉지만 있습니다.
여기 말로 쭉지는 알이 생기다 만 찌끄레기 입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내가 먹은 것보다 더 풍족함을 느낍니다.
지금 마음은 남은 생에 거름처럼 기름으로 살찌워져 큰 힘이 될 겁니다.
다들 고맙고 맛있다는 전화에 힘을 얻습니다.
묶어놓은 강아지를 데리고 오줌을 누이면서도 꽤 많은 벽돌을 쌓았습니다.
어서 이 방구들이 완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을 뜨끈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이곳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최후의 판단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 만날 형제들과 가까운 지인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지의 체험 장소로는 꽤 괜찮은 곳입니다.
그럴 날이 올거라는 확신도 예정도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아무도 없는 오지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처럼 여름밤 쉬고 갈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내가 태어난 자리이고, 초로의 어느 순간 찬물로 땀을 씻은 자리는 뭔가 특별할 것 같습니다.
그때가 좋았지 라던가, 그때 바보였어 이라던가, 그때 떠나기를 잘했어란 생각 중 어느 것이라도 좋습니다.
그때도 이 집터의 낡은 지붕에 방구들 하나 정도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희망 같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충 쌓아도 될 벽돌 한 장도 줄자로 재면서 직각을 맞춥습니다.
몸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영혼은 행복 합니다.
벌써 한 낮을 지나 해거름이 됩니다.
곧 어둠이 내릴 것이고, 어둠과 동시에 마을은 정적에 휩싸입니다.
아무도 없는 산골짝에서 하늘의 별들은 오늘도 보일 것 입니다.
그 별들과의 만남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 소망 하나가 흔들리는 촛불처럼 작지만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 때는 편안 합니다.
그 안락함이란 도시의 커다란 거실이나 침대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깊은 산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 또는 보람 같은 것 입니다.
벌써 해가 지고 별들이 보입니다.
부끄럼 없이 옷가지를 벗습니다.
처마에 강아지 두 마리가 내 모습을 봅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누렁이 강아지는 내곁에 바짝 붙어 다녔습니다.
내 몸에 묻은 비누거품 냄새를 맡으면서 수돗강에 넙죽이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습니다.
계곡에서 연결한 수도에서 찬물이 콸콸 나옵니다.
찬물 한 바가지 머리에 끼엊습니다.
정신이 버쩍듭니다.
샤워 타월에 비누칠을 합니다.
흙먼지로 얼룩진 몸이 깨끗해 집니다.
오랜 마음의 상처도 깨끗이 씻기워 나갑니다.
행복한 밤입니다.
#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들!
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강원도에서 보내는 아침편지입니다.
첫댓글 힘내세요..멀리서 응원할게요...
전원생활 멋지게 누리시네요. 무병장수와 행운 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