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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40주년 감사미사
2014. 9. 22. 월
명동대성당
사제의 첫 마음
강론 : 전종훈 신부(서울대교구)
오늘 사제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 강론을 준비하면서 참 답답했습니다. 강론도 잘 하지 못하는 제게 이 귀한 시간이 맡겨져 부담스럽고, 또 하나는 이 세상에 말을 붙이고 세상과 말을 섞는 다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한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래도 해야 한다기에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40년을 정의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말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살지 않는 한 한명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참 희망을 승리의 죽음으로 선포하고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께 이 시간을 의탁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그의 생존권리, 기본권을 선포하고 일깨우고 수호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가해자와 침해자가 누구이든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40년 전, 1974년 9월 26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제1 시국선언’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용산참사 2072일(만 5년 8개월 2일째)째입니다. 세월호 참사 160일째입니다. 이기도 합니다. ‘죽는 것보다 서러운 것이 잊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반드시 살아납니다.
참 모질고 모진 고난의 시간, 40년을 한결 같음으로 살아오신 선배 신부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 있어야 가능했던 40년을 늘 함께 해주신 수도자 여러분, 신자 여러분, 또 믿음의 동지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존경과 사랑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가족같이, 친구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형님 신부님들, 아우 신부님들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참 사제입니다.
저는 오늘 먼저 두 분의 신부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시대가 혼탁한 것은 그 시대에 참 어른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김승훈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시대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삶인지를 몸으로 보여 주신 분이기에 오늘 더욱 그립습니다. 또 한분, 안승길 신부님! 현장에서 거리에서 피멍든 분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오늘, 사제단 신부로서 죽기까지 어떻게 함께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실천으로 보여 주신 분입니다. 그립습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 오늘 저희 곁에 계시지 않지만 두 분 신부님께서는 이 제단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금 저희들과 함께 하고 계실 것입니다.
70년대 유신독재와 맞서고, 80년대 군부독재와 맞서고, 90년대 분단의 고리 국가보안법 철폐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통일운동으로 그리고 2000년대 거리로, 현장으로 효순이미순이, 삼보일배, 평택 대추리, 삼성 비자금과 불법 로비 증언, 오체투지, 용산참사,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한 225일 매일미사, 그리고 광화문 세월호참사 특별법 제정 유가족 단식 동조단식으로 이어지는 고된 40년의 여정이었습니다. 아쉽고 부족함도 있습니다만, 하염없이 은혜롭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렇게 40년이 지난 오늘,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암흑과 같은 현실을 보니 갈 길이 너무나 멀게 보입니다. 피와 땀으로 죽음으로 일군 민주주의는 다시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민생은 무너졌습니다. 통일의 길은 가로 막혔습니다. 다시 암흑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40년 전 그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기념이며 다시 세우는 소명입니다. 영혼(분별력)이 깨어 있고, 양심(책임감)이 살아 있는 보편타당한 상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 밖에 모르는 “나쁜 놈”, 돈 밖에 모르는 “돈 놈” 사람이 없고, 나쁜 놈과 돈 놈만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터진 사건이 용산참사, 세월호참사인 것입니다. 또 용산참사의 진실규명이 되지 못하였기에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세월호참사의 진실규명이 없다면 그보다 더 큰 참사는 언제든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이기에 사람을 믿고 신뢰하며, 사랑하고 친교를 나누어야 하는 존재적 가치가 무너지고, 더 많은 소유를 위해 탐욕과 이기심, 교만에 사로잡힌 세상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 지를 보여준 것이 세월호참사인 것입니다. 그래 결국 신뢰할 수 없는 인간관계, 믿음이 없는 사회, 사랑하고 친교 할 수 없는 공동체를 개선하고자 세월호 유족들이, 그 최후의 두려움을 알기에, 피멍든 가슴으로 세월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을 거짓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진정한 변화는 있을 수 없고,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언제나 환상과 고통 속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거짓을 거짓으로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드디어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박근혜가 세월호 유가족과 특별법을 걷어 차 버렸습니다. 42년 전 그의 정치 스승 박정희가 유신독재를 선포 한 것과 다름 아닙니다. 드디어 이 정권이 가면을 벗고 유신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과도한 이상과 권력이 합하면 괴물이 된다’고 합니다. 괴물의 탄생을 스스로 알린 것입니다. 국민을 업신여기고, 야당을 무시하고, 언론을 죽이고, 재벌과 야합하고, 경찰・검찰・법원을 무력화 하는 일인지배・일당독재의 괴물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얻는 없이 없다.”
“민을 죽이면 적이요, 의를 죽이면 찬이다, 그러니 해한들 불충이 아니요 무도함도 아니다.”
이제 우리가 일인지배, 일당독재를 걷어찰 때가 온 것입니다. 국민의 아픔을 걷어차는 이 정권을 용기 내어 걷어찹시다.
“하느님, 그 성안에 의인 5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그 성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성안에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창세 18장)
민주주의를 위해 피 쏟았던 열사들을 계승할 그 의인이 될 것을 다짐하는, 오늘이 그 다짐의 첫날이길 바랍니다.
인간이 중심이고 목적인 공동선의 원리가 실현 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사회적 소명입니다. 이 단순한 명제를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 8월에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주교님들을 향해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시대의 이상을 저버리지 말라고 외치셨습니다.
“교회가 이 나라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해 그 해결에 기꺼이 이바지 하도록 하라”한국교회에 대한 권고 말씀이셨습니다. 말 그대로 광야에서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의 외침이 있은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만, 교회 쇄신에 접목하고자 하는 가시적 움직임은커녕 오히려 교황의 흔적을 지우려는 안타까움만 감지됩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이 말씀에 용기 내어 유가족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양 온 몸으로 감싸 안으며 작은 위로나마 되고픈 이들에게 고통을 이용하는 세력으로 폄하하는 듯한 발언과 생때같은 내 자식이 왜, 어떻게 그 무서운 바다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꼭 알아야 하겠다는 유가족들에게 양보하라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추기경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교황은 치유와 일치, 기쁨을 안겨주었는데, 어떻게 교황과 뜻을 같이해야 할 교구장이 교황의 행업과는 전혀 다른 말로 유가족과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부끄럽게 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은 사제의 첫 마음, 십자가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사제단 25주년 때 저희들은 이 말씀의 제단에서 ‘사제의 고백과 다짐’이라는 새로운 신앙고백과 다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사제 삶의 근거와 존재 이유는 오직 이웃을 위한 십자가의 삶 안에서만 확인되고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어야 산다는 십자가의 역설과 순교의 길을 몸소 보여주시고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사제의 삶은 참으로 순교입니다.
사제의 길은 철저한 비움과 십자가의 죽음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사제가 지닌 첫 마음이어야 한다는 고백과 다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장 고귀한 보물을 세속적 가치에 빼앗긴 것입니다.
순교자 황사영은 “마음이 깨어 있지 않으면 경서가 다 쓰레기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 복음은 있는 것인가? 또 “ 마음이 세상의 근본이며, 세상의 동력이어서 시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이 저절로 바꾸지 못하며, 마음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고도 했습니다.
마음이 깨어 다시 사제의 첫 마음을 불러 일으켜 세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지길 바랄뿐입니다.
“세상에는 근본이 있다. 그것은 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스림은 선해야 한다. 선하지 않은 다스림은 당장 멸해야 한다.”(정약현–정약용의 맏형)
하늘의 선한 뜻은 권력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 일상의 땅위에 실현할 수 있으며, 그 실천의 방법이 사랑입니다. 사랑합시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들어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9-10)
교황의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만약 십자가에 의망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희망을 도둑맞지 않도록 하십시오!
희망을 도둑맞지 않는 것,
이 힘은 은총이고
우리가 하늘을 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고맙습니다.
단순한 마음과 끓는 열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나승구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고맙습니다.
여러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 후배들에게 사제의 길이 무엇인지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물려주신 선배 신부님들 고맙습니다.
또 함께 어깨를 걸고 나란히 참된 복음의 길을 걷고자 동지가 되어 주시고 동반이 되어주신
수도자, 교우님들 그리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건 아니건 뜻을 같이하는 연대의 자리에 계신 분들 고맙습니다.
사실 두렵기도 합니다.
40년을 훌쩍 지나고 또 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강한 압박으로 다가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예수님께서 그렇게 이야기 하셨듯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서 단순한 마음과 끓는 열정으로
처음처럼 선배 신부님들이 걷던 바로 그 처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 고마움의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평안하시길,
그 평안이 세상의 평화와도 이어기질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편지
희망이 되자고 하는 신부님들이 계시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의 신부님들은 쌍용차 해고자들과 가족들이 정리해고반대 파업을 하던 시절부터 늘 희망이셨습니다. 신부님들은 2009년 파업당시 공장안에 고립되어 말라가던 우리를 위해 가장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공장앞 길거리에서 파업이 끝나는 날까지 기도해주셨고, 파업이 끝나고 많은 이들에게서 잊혀져 갈 때도 저희들에게 관심과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날부터 지금껏 그 자리가 어디건 쌍용차해고자들을 위한 일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형제도 동료도 이웃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이 땅위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한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고통을 보면서도 ‘지겹다’고 ‘피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입니다. 자식을 잃고 죽음의 진실을 묻는 부모를 향해 ‘민생경제’를 위해 ‘그만 좀 하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참담한 세상 속에서 사제단이 걸어온 지난 40년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봅니다.
노동자와 철거민, 개발논리에 밀려 쫓겨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이것을 편향적이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크고 작은 불의 앞에 물러서지 않음과 이 땅의 인권회복과 민주화를 위해 소리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과격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전쟁위협에도 대항하고 이 나라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 행동과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정치적이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의 그 지나온 세월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희망이 되자고 말하는 신부님들이 계시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쌍용차의 해고자들과 가족들이 그랬고, 수많은 양심수들이 그랬고, 용산에서, 밀양에서, 강정에서, 수없이 많은 투쟁사업장에서 조용하게 그러나 강건하게 하느님이 함께 하시니, 그 아픔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셨던 신부님들 덕분에 조그맣게 웃으며 주먹 쥘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뜻 깊은 오늘을 축하드립니다. 사람의 나이로 마흔,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하지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처음 만들어졌던 40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던 그 모습처럼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걸어가실 것을 믿습니다.
언제나 맨 앞에서 험하고 거친 모든 것들로부터 약하고 어린 자들을 지켜주셨던 것처럼, 저희 쌍용차해고자들도 힘들고 지친 이들과 함께 손잡고 걷겠습니다. 나아가겠습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신부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14. 9. 22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