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와 배낭의 검
누가복음 22장 35-38절『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나누신 마지막 대화다.『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다』고 했다. 또한 마태, 마가, 요한은 이 대화를 기록하지 않았고, 오직 누가만 예수님의 다락방 마지막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낭, 전대, 검을 잘 챙겨라 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네, 여기 검이 두 개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충분하다 라고 말씀하시며 네 구절로 이루어진 누가의 기록이 끝이 난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의미로 제자들에게 오늘의 말씀을 전해주신 것인가?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이 말은 과거 어떤 시점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하셨던 일과 연계된다. 그 일은 일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 갈릴리에서 있었던 일로 누가복음 9장에 기록되어 있다(눅 9:1-6).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그들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받고 전도하러 갈릴리 각 마을로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하셨는데,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기억나게 하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은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들을 영접하는 이들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접하지 않으면 제자들은 그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고 그 집을 떠났다. 만일 영접하면 그 집에서 머물면서 환대와 지원을 받았다. 이것이 당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예수님을 거부하며 그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들이 전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며 제자들을 받아준 이도 있었다.
예수님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환대하고 영접할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지팡이나 배낭, 양식, 돈, 여분의 옷을 준비해 갈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을 기쁨으로 영접할 이들을 기대하며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쳤다.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일을 상기시키며 물어보신 것이다. 그때 부족한 게 있었느냐? 제자들은 『아니요. 없었습니다.』비슷한 훈련이 칠십 인에게 주어졌는데, 그들 또한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보내져,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게 하셨다. 이때 역시 전대나 배낭,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열두 제자처럼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는 그 집에서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눅 10:1-16).
물론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접하지 않는 이들이 분명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거절하는 동네에서 묻은 먼지도 떨어버리라고 하셨고, 그들에게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들을 저버리는 자는 곧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는 자가 있었다. 예수님이 자기를 전하라고 보내신 제자들 역시 같은 배척을 경험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때는 제자들을 영접한 이들이 있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영접하며 그들의 필요를 충분히 공급한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배낭도, 전대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왜 이 일을 떠올리게 하신 것일가? 바로 다음 말씀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제 제자들이 맞설 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르시되『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예수님은 『이제는』이라고 때를 구분하여 말씀하셨다. 뭔가 과거와 달라지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지시하신 말씀이 이제 달라졌다. 과거에는 전대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전대를 가지라고 하셨고, 과거엔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가지라고 하셨다. 특별히 검에 대한 명령이 나오는데, 이제는 검이 꼭 필요하고 말씀하셨다. 혹시 검이 없으면 겉옷을 팔아서라도 사라고 하셨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겉옷은 단지 몸을 보호하거나 따뜻하게 하는 많은 의복 중 하나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유대인에게 겉옷은 하나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여러 겉옷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대부분 한 벌의 겉옷으로 자기 몸을 보호하고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는 등 겉옷은 그들의 생필품이었다. 그래서 겉옷을 저당잡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였다. 예수님이 겉옷을 빼앗는 자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것이 유대인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눅 6:29). 그 사람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시며 이제는 그 귀중한 생필품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말씀하셨다.
칼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전대, 배낭, 칼 이제 모두 직접 준비해야 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예전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전대, 배낭과 함께 칼을 준비하라고 하신 이유는 칼은 무기도 되지만, 활동에 있어서 필요한 도구,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