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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음식디미방팸 포스팅 스크랩 영양 산촌생활박물관
하늘타리 추천 0 조회 234 14.06.11 23:4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경북 영양 산촌생활박물관입니다.


2006년 9월에 경관이 빼어난 자양산紫陽山옆에

 농경, 산촌 생활을 담은 여러가지 유물과 자료를 한 곳에 모아 문을 연 산촌생활박물관은

경상도 내륙 산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실내전시실에는 산촌의 집안살이부터 마을살이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고

야외전시장에는 산촌의 마을과 전설이 아기자기한 전시물들로 꾸며져

영양군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실내전시관으로 갑니다.


실내전시관 가는 길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전통생활 체험장,

우측에는 전통문화공원이 있습니다.


전통생활체험관 마을입구에서 서낭당을 만납니다.

생활박물관의 설명을 옮깁니다.
"서낭당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신을 모신 곳으로 영양지역에서는 주로 마을의 입구에 있다.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당나무만 있는 곳, 당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곳, 당집만 있는 곳 등으로 나눠진다.

마을에서는 일반적으로 매년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일년에 한 차례 이곳에서 당고사(堂告祀)를 올리며,

집안의 길흉사와 발생하여 특별히 기원할 일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찾아와 고사를 올린다."

 

 

투방집입니다.

 

안내문을 옮깁니다.
"통나무를 사각형으로 쌓아서 짧은 시간에 만든 집으로 ‘통나무집’ 또는 ‘귀틀집’이라고도 하며,

지붕은 짚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억새나 굴피 등으로 덮었다.

일반적으로 산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으로 3칸 홑집의 본채와 디딜방앗간, 그리고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거름을 준비하는 모습, 방아를 찧는 모습, 삼베를 짜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굴피집입니다.

 

본채의 앞과 뒤를 판자와 흙으로 벽을 쌓고 지붕을 ‘굴피’라고 부르는 굴참나무껍질로 덮었다고 해서 굴피집이라고 한다.

 산골에서는 희소한 6칸 겹집의 대형 주택으로 일반적으로 산골의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으며,

건너방을 비롯하여 3칸의 방과 마루, 그리고 정지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주루막을 만드는 모습, 고추를 말리는 모습, 국수를 만드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생활박물관)

너와집은 건너 뛰었군요.


전통문화공원은 ...


초등학교이하의 아이들과 함께 오시게 되면 꼭들르세요

선녀와 나뭇군
의좋은 형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호랑이와 곶감
흥부와 놀부
별주부와 토끼
견우와 직녀
효녀 심청 등 일반적인 옛이야기 말고도
영양군에서 전해오는 효자 효부이야기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조형물과 함께 준비되어 있습니다.

 

실내전시관으로 들어갑니다.

 

산촌의 살림살이를 봅니다.
보릿고개 넘기

척박한 산전을 일구며 살았던 산촌사람들은 봄이면 어김없이 식량이 떨어져,

봄보리를 수확하기까지 굶주림에 시달리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배고픔에 하루 종일 일을 해주고 밥 한 끼 얻어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칡뿌리를 캐다가 엎어져 죽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봄철 춘궁기는 고달픈 시기였다.(생활박물관)

 

소중한 꿀 따기

산촌사람들에게 벌꿀은 귀한 영양제이자 의약품이었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소중한 수입원이었다.

 바위틈이나 나무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석청(石淸)을 제일로 쳤으며,

야생벌을 똥꿀통에 사육해서 딴 토종꿀 역시 양봉에 비할 바 아니었다.

분봉을 한 뒤 장마철과 말벌의 습격만 잘 넘기면 좋은 벌꿀을 채취할 수 있었다.
(생활박물관)

 

긴 겨울보내기와 맛있는 장 담기

가을철 풍요로운 수확을 끝내면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는 농사일이 없는 농한기이다.

 농한기라고 하더라도 낮이면 여자들은 집안 일로 바쁘고, 남자들은 땔감을 마련하는 일로 분주했다.

긴 겨울밤에 찾아오면 아이들은 화롯불 옆에서 군것질로 시간을 보내지만,

어른들은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 길쌈이나 짚신을 삼았다.

 

산촌사람들의 밥상에 있어서 간장과 된장은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미료이며,

무나 고추 등을 절여서 만든 장아찌는 밥도둑이라 불릴 만큼 훌륭한 밑반찬이었다.

장맛은 좋은 재료와 배합 비율, 그리고 발효의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입동 전후에 콩을 선별해서 메주를 만들고,

그믐 무렵 장을 담기까지 온 정성을 다했다.(생활박물관)


산촌의 신앙을 알아봅니다.
일월산 미륵동굴

해와 달의 정기가 어린 일월산의 미륵동굴은

 세상이 극도로 혼란할 때에 극락세상을 열어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륵불을 모신 동굴기도처이다.

특히 일월산의 기가 강하게 응집된 혈자리에 놓여 있어서

선녀의 전설이 어린 선녀탕과 더불어 해마다 수많은 무속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생활박물관)

 

성황당

 

영양의 여신들

예로부터 좋은 터란 산천의 정기가 맑고, 영험한 신들이 지켜주는 곳을 말한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영양은 일월산의 황씨부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구주령의 옥녀, 우측에는 황씨부인의 맏딸과 막내딸이 각기 장갈령과 동산령을 수호하고 있다.

(생활박물관)

 

집안의 신들


척박하고 고립된 산촌사람들의 삶은 식량부족부터 질병과 동물의 습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무엇하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불행을 막고 복을 얻고자 집안 곳곳에 각종 신을 모셨고,

햇곡식이 나거나 좋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수시로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서 기도를 드렸다.(생활박물관)

 

마을의 자치활동과 자치규범

대동회

산촌사람들은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서 매년 정초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가하는 대동회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마을고사가 끝난 뒤 이를 주관한 도가집에서 모였으며,

 지난해의 마을살이를 결산하고 새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회의를 마치면 푸짐한 음식과 신명나는 놀이를 즐기면서 이웃간에 정을 나누었다.

 

멍석말이
산촌의 각 마을에는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위한 제재관행이 있었다.

공동체의 윤리나 도덕을 위반할 경우 가벼운 훈계에서부터 마을에서 쫓아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하였다.

 이 가운데 멍석말이는 불효 등 비교적 무거운 죄를 범한 사람에게 내렸으며,

잘못을 뉘우치게 하여 다시 올바른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생활박물관)


고지도로 보는 영양

 

 

산촌의 영농활동

 

산촌의 화전활동

화전의 역사
화전(火田)은 산에 불을 놓아서 지력이 유지되는 단기간만 경작하는 방법으로 원초적인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화전이 조선시대 말부터 점차 확대되었고,

일제강점기 수탈정책으로 인하여 급증하였다.

화전민은 크게 숙전(熟田)을 경작하면서 화전을 일구는 겸화전민,

순수하게 화전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순화전민으로 나뉜다.


화전민의 생활
영양군 일원에는 대부분 다소간 숙전을 갖고 있으며,

마을 주변의 야산을 화전으로 경작하는 겸화전민이 많았다.

화전 경작을 위해서 새벽에 올라갔다가 저녁에 내려왔으며,

수확 무렵에는 임시 거처를 마련하여 짐승으로부터 곡식을 지켰다.

화전을 경작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기에 화전민들은 대부분 춘궁기를 피할 수 없었다.

화전의 경작
화전경작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벌목부터 수확까지 4~9호 단위로 연대하여 공동으로 경작하여 분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가구당 평균 경작 면적은 500평에서 1,000평 정도였으며,

500평 미만의 소규모 화전은 단독으로 경작하도 했다.

순수 화전은 보통 3~4년 정도 경작한 뒤 버리는데,

주로 조를 비롯하여 감자, 콩, 옥수수 등을 재배하였다.

 

화전의 소멸
육지 속의 섬으로 남아 있던 화전민촌은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계기로 실시된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사라졌다.

또한 겸화전민에 의해서 개간되었던 화전 역시 1970년대에 실시된 화전정리 사업으로 경작이 중단되었다.

당시에 화전민들은 인근 마을로 이주하거나 새로 만든 마을로 이주했고,

경작지가 없는 경우 대구나 부산 등지로 출향했다.

 

본관로비

괴목의 모습

정말 괴이하게 생겼습니다.


영양 그리고 하늘과 산과 물

 

충절의 고향, 효열의 고향, 문향의 고향

영양입니다.

 

옛 사진에 비친 영양.

1930년대 영양읍내, 영양군청

1930년대 영양시장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복개천 부근에서 투방거리 방향으로 찍은 것으로 보이며,

중앙통이 상당히 넓게 잘 정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단발령과 더불어 보급되기 시작한 요즘의 이발관은 당시에 아름다울 미자를 써서 미발관으로 표시했고,

등짐을 진 지게꾼과 더불어 미국에서 도입된 포드 승용차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1930년에 찍은 영양군청의 청사사진입니다.

양복차림의 근무복이 한옥식 건물인 청사와 대조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1930년대 영양초등학교 운동장, 영양신사

장소는 1930년 영양초등학교 운동장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않보이고 어째 성인남성들만 모여 있습니다.
 
1930년대 현재의 군청 뒷산에 있었던 일본의 신사를 찍은 사진입니다.

군청 뒤의 언덕 위에 있었으며,

 현재에도 그곳에 가면 사진에서 보듯이 바닥에 깔이 놓았던 강자갈이 쉽게 발견됩니다.

영양신사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 소실되었고,

밭으로 경작함에 따라서 현재에는 강자갈의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사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서 주민이 집을 지어 놓았으며,

신사를 오르는 길에 놓았던 계단석은 현재 박물관 중앙홀의 석공예 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획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옹기에 담긴 삶의 모습입니다.

 

옹기의 종류

 

옹기 만드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합니다

 

1960년대까지 유명했던 영양옹기들의 모습입니다.

 

 

 

 

 

 

박물관을 나서니 장승이 반깁니다.

장승옆으로 산책로가 있습니다.


전체로는 다섯번째 길이고 영양구간으로는 두번째 길인 오일도 시인의 길이 선바위관광지에서 시작됩니다.
이길을 따라 외씨버선길을 역으로 1.3Km를 걸어가면 출발점인 선바위관광지가 나옵니다.


선바위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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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14 00:22

    첫댓글 생활상을 엿볼수 있네요^^

  • 14.06.18 10:54

    이킁...이런 박물관...공부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좋은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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