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단톡방에 실린 글입니다.)
죽음의 공간이 빚어낸 슬펐던 날의 추억
이렇게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로
집에 누워있을 때 많은 고통을 겪었다.
전혀 목회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 안에 머물러 있노라면
온갖 상념이 나를 한없이 가라앉게 했다.
특히 췌장암이라는 무서운 병이
정신을 지배하다시피하여
숨이 막힐 듯한 공포까지 안겨주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경도 묵상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며
매일 두 번 예배를 드렸지만
우울한 마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부활동을 좀 더 많이 했더라면
조금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그땐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사실 건강을 회복한 지금도
실내에만 머물러 있으면 잡념에 빠져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건강할 때는
하루만 집에 머물러 있어도
집멀미가 날 정도로 활동적인 삶을 살았다.
거의 매일 기도대원, 전도대원과 함께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활발했던 과거의 나로
되돌아가게 해 주셨다.
단, 인생을 보는 눈과 살아가는 내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뿐이다.
비록 거의 나홀로이지만
밖으로 나가 전도를 할 때가 많고
이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넘치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다.
요즘따라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음을
절실히 느끼곤 한다.
말씀의 기쁨, 찬송의 기쁨, 기도의 기쁨,
봉사의 기쁨, 교제의 기쁨 등이 있겠으나
그 어떤 기쁨도 전도의 기쁨을
대신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노방 전도를 감당했던
몇 년간은 내 생애 최고의 날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전도도 할 수가 없었고
오직 내게 찾아온 췌장암만 묵상하고 있느라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고
전화 통화도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또한 내 얼굴마저 전형적인 중병 환자의 몰골로
흉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른 몸에 갈비뼈는 튀어나왔으며
황달이 찾아온 눈은 노란 색깔을 띠고 있었다.
이에 더해 근육이 모두 소실되기까지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있기만 했다.
딸들은 이런 아빠를 보며
이젠 살아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는가?
-계속-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태복음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