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근세철학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새롭게 등장할 때는 반드시 그에 앞서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다. 근세철학이 나타났을 때도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세계사적 발명 세 가지가 있었다. 즉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다. 이와 동시에 지리적 발견도 중대한 결과를 낳았는데 콜럼버스는 1492년 신대륙을 발견했고 바스코 다가마는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이 밖에 자연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 즉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과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의 천체의 운동법칙,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한 것은 기독교 교리에 큰 타격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이의 저서는 오랫동안 금서 목록에 올랐지만 이들의 과학적 사고는 철학자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되었다. 심지어 “훌륭한 과학자야말로 근대의 진정한 철학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프랑스어로 ‘재탄생’, ‘다시 새롭게 일으킨다’를 의미하는 Renaissance(르네상스)라는 용어는 한마디로 엄청난 변화와 전환의 시대를 말한다. 르네상스 운동은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휴머니즘이 학자들만의 관심사였던데 반해, 그것을 바탕으로 부흥된 르네상스는 학문·의학·기술·법률·상업제도·조형예술 등 모든 생활 영역으로 퍼져 나갔고, 적어도 이탈리아에서는 대중 속까지 파고들었다. 지리적으로 이슬람 세계, 비잔티움 세계와 접촉을 유지하여 서유럽과 가교 역할을 한 이탈리아에서 13세기 말부터 경제 성장과 더불어 특유의 시민 문화가 형성되고, 이것이 르네상스 운동의 계기가 된다.
초기 르네상스 운동은 피렌체 출신의 단테와 페트라르카가 시작했다. 이들은 고대그리스·로마의 유산을 재발견하여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운동은 문학,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어떤 사람은 르네상스의 시작점을 오스만튀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에서 찾기도 한다.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가치관은 결국 중세철학에서, 고대와는 달리 ‘신’을 위해 ‘사람’을 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흐름에 반해 르네상스는 다시금 잃어버린 ‘사람’을 되찾자는 변화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는 어떤 완성된 모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실험 정신이 그 특색이요, 이 실험 정신은 수많은 중요한 발명과 발견을 이루어 내었다.

안젤리나 졸리를 르네상스 시대 특유의 고풍적이고 화려한 분위기에 맞게 합성해 본 사진
1. 휴머니즘과 르네상스
휴머니즘이란 인본주의·인문주의·인간주의 등으로 번역되며, 이는 ‘사람을 위주로 하는 사상’을 일컫는다. 그런데 서양의 역사상 이러한 경향이 가장 강했던 때는 바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였다. 그리고 옛 문화에 대한 관심은 페트라르카(1304~1374)나 보카치오(1313~1375)와 같은 인본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 두 사람은 고전적인 문학작품을 다시 모으고 발굴하는데 열중했고, 이를 통해 중세의 신학적 영향을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했다. 물론 휴머니즘은 문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신문화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휴머니즘 사상가로 에라스무스(1469~1536)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고대 철학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고자 했다.
또한 동방의 그리스 신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모여들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플로렌스라는 도시에서는 아카데메이아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플라톤이나 플로티노스의 저서들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 문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제 서양 철학은 스콜라철학의 색안경을 벗고 아무런 편견 없이 그리스·로마 철학을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극을 받은 다음 세대는 새로운 창조적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휴머니즘은 근세 초기 사상가들이 세계와 인간을 다시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나아가 인간의 자기긍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존경과 자아에 대한 사랑은 인류의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과 더불어 현대 철학의 특징인 자아 사상으로 나타났다. 결국 휴머니즘이란 중세를 지나는 동안 짓눌렸던 ‘인간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이제 신 대신 인간이 철학의 중심에 서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2. 종교개혁
종교개혁의 시발점은 교회의 면죄부 판매였다. 이 무렵, 교황청과 가톨릭교회는 부패한 생활 때문에 재정적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교황 레오 10세는 산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다.
이때 사제들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기부금을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이 상자 속에 짤랑하고 들어가는 순간, 영혼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게 됩니다”라고 설교했다. 심지어 “면죄부를 사면 성모 마리아를 범한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정문에 라틴어로 된 <95개조 의견서>를 내걸었다. 일종의 항의문인 이 의견서는 사실 처음에는 교회 정문에 붙인 대자보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독일 국경을 넘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루터와 같은 시대의 종교개혁자인 칼뱅(1509~1564)은 현세의 생활을 함께 강조했는데, 이것은 당시 프로테스탄티즘의 보편적 경향이기도 했다.
십자가 앞에서 ‘주여, 주여’ 부르며 눈물만 흘리는 것이 기독교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칼뱅은 수도원 안에서 금욕 생활만 하는 대신에 현실 세계와도 자유롭게 접촉할 것을 권장한다. 예컨대 인생은 매우 즐겁고 인간관계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일상 속에 정치 문제나 경제생활도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 할 것을 권고한다. 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것도 기독교인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칼뱅주의는 분명히 전통적인 가톨릭 사상과는 다른 것으로서, 근대 자본주의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3. 마키아벨리, 베이컨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마키아벨리(1469~1527)는《군주론》에서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도 허용한다는 ‘마키아벨리즘’ 사상을 주장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대내적으로 분열되고, 대외적으로는 유럽의 강대국이 이탈리아를 나누어 가지려고 다투던 시기였다. 이때 그는 마치 자연과학자가 자연현상을 관찰하듯이, 모든 도덕적 선입견을 배제하고 유럽 제국의 정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통치자의 처세술에 대한 원칙을 도출해냈던 것이다.
언뜻 보면 그의 사상은 무자비하고 냉혈적인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이러한 충격은 예부터 모든 철학이 ‘인간은 무조건 선하고, 이 사회나 국제관계에서도 도덕적인 어떤 원리가 반드시 지배 한다’라고 하는 주장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키아벨리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르네상스 후의 근대철학, 특히 영국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로 저서로는《학문의 진보》,《신 기관론》,《신 아틀란티스 섬》등이 있다.《신 기관론》에서 그는 인류의 진보와 자연정복을 위해 먼저 모든 편견이나 맹목적인 오류로부터 우리의 사유를 깨끗이 해야 하며, 그 다음에 올바른 연구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상론을 들었으며,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귀납법을 제시했다. 즉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실험을 반복하여 어떤 법칙을 얻어내는 귀납법적 방법에 의해서만 우리는 자연을 진정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근세를 대표하는 원조적 사상가로 꼽힐 만한 인물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첫댓글 서양사에서 중세와 근세를 가르는 굵직한 사건들이
16세기 초 즈음의 지동설,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이 있네요.
특히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온 종교개혁을 통과하며
기독교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립되는데
율법, 신전, 안식일로 요약되는
헤브라이즘의 원형으로서의 유대교에서 보면 가관입니다.
복음, 십자가. 주일로 대체한
가톨릭 교회는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화한 사이비요,
그나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오합지졸의 이단에 불과하겠지요.
이것은 곤충의 탈바꿈처럼 설명되는
종교적 진화현상일 수도 있네요.
그렇다면 다음의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서양 철학사'에서 찾아보면
17~18세기 계몽사상과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에서부터
인간은 교회의 권위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더군요.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고 유물론적 방향의 대두와 함께
철학자 포이어바흐와 니체를 통하여 전통 기독교가 허물어지는 모습이지요.
급격한 과학기술과 이어진 20세기 현대철학은 인간의 삶에서 진리를 구하는 사조였고,
이제 21세기 초 4차산업과 인공지능 혁명시대를 맞아
전통 종교는 서서히 사라지는 게 사실이지요.
그럼 '다음의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데이터 교'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