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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역자의 필요성 대두: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교세가 급격히 확장되면서, 여성 성도들을 교육하고 심방할 전문적인 여성 사역자(전도부인 및 여교역자)의 양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설립 일시 및 명칭: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의 주도로 1923년 3월 28일 평양 경창리에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라는 명칭으로 공식 개교하였습니다. (실제 교육은 1922년경부터 선교부 중심의 여성 성경 교육 과정으로 태동하였습니다.)
2. 주요 연혁
1923년: 평양 경창리에서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로 개교. 당시 한국 여성들에게 체계적인 성경 교육과 신학적 소양을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38년: 시대적 변화와 학제 개편에 발맞추어 학교 명칭을 '평양여자신학교'로 변경하였습니다.
1940년 일제에 의한 폐쇄: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한편 외국인 선교사가 교장으로 재직하는 것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신앙적 절개를 지키고자 하였던 당시 상황 속에서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1940년에 학교가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해방 전후의 마지막 발자취: 이후 태평양 전쟁 말기 전시 체제 속에서도 교육의 명맥을 잇기 위해 평양 남산현교회의 여교사 주택 등으로 이전하여 수업을 이어갔으며, 해방 직전까지 한국 여성 기독교 지도자들을 다수 배출해 냈습니다.
3. 졸업생 및 의의
여성 지도자 양성의 산실: 평양여자성경학교는 가정과 교회에서 소외되던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독립 운동과 민족 계몽, 그리고 교회 부흥의 현장에서 헌신하는 수많은 전도부인과 여교역자를 배출했습니다.
한국 여성 신학의 뿌리: 비록 일제의 탄압으로 해방 전 폐교되었으나, 이들이 쌓아 올린 여성 신학교육의 전통은 한국 장로교 및 감리교 여성 사역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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