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대게 만찬
경기도 일산에 사는 딸애 내외로부터 대게 1박스를 보냈다는 문자를 받고 기다렸더니 저녁 늦게 택배가 도착해서 명륜동에 사는 아들네를 오라고 하여 가족이 만찬 한번 오붓하게 했다.
보낸 사연을 들었는데 사위의 삼촌이 포항에 사시는데 거기를 통해 사위가 처가인 우리 집으로 보낸 것이었다. 딸애를 만혼으로 짝지어 보냈더니 이따금 이런 흐뭇한 경험을 하게도 된다. 사위의 삼촌이 어업을 하시는지는 자세히 모를 일이었다. 포항에서 영덕으로 이어지는 벨트는 대게의 본고장이다. 십 수 년 전에 영덕에서 게맛을 보았는데 그 맛 끝이 뇌리에 아직도 아련히 남아 있다.
우리 가문의 보배 똘똘이도 맛있게 대게 다리를 발라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할애비의 기쁨이자 삶의 충만함이 되었다. 큰다고 그러는지 요즘 똘똘이의 식성이 여간 왕성하지 않다. 나보다도 많이 먹는 것 같다. 대게 한 마리를 거뜬히 해치우더니 밥 한 그릇도 뚝딱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라면이 또 먹고 싶다 해 끓여주었는데 그 마저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그 모양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 김애란 ‘입동’
공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먹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었다. 거기에 똘똘이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설쳐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실에서 할아버지의 방까지도 조용히 걷는 법이 없다. 그냥 뛰는 것이다. 거실을 뛸 때면 간이 콩알만 해진다. 아래층에서 올라와 항의 할까봐서였다. 전에 한번 그런 적이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 모양으로 아랫집 할머니가 올라와서 주의를 주고 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똘똘이 할머니는 내심 기분이 언짢은 모양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늘 그런 것도 아니고 주말에 잠시 왔다가는 아이가 좀 분탕을 쳤기로서니…”
그새를 못 참고 올라와 항의냐는 투였다.
층간 소음은 이렇듯 가까워야 할 이웃을 경원의 대상으로 삼는 불편을 조성하는 듯싶었다. 그러니 나는 똘똘이가 활발히 움직이는 걸 조마조마 지켜보는 것으로 가슴을 졸여야 했다. 아이들이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제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환경이 이를 허용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아이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현실이 허탈할 따름이다.
똘똘이가 집에 당도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들어 안아보려는데 몸무게가 내 힘에 부침을 깨달았다. 몸무게며 키가 훌쩍 자라 있었음을 의식했다. 아이들이란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남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성장하고 있음을 차제에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깨닫는다. 희망은 미래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겐 똘똘이가 희망이고 자랑이며 용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