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남교반(鎭南橋畔)
진남교반 일원은 1933년 대구일보사가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선정한 곳입니다. 경관이 수려해 2007년에 명승 31호 지정된 토
끼비리 옛길이 있으며 주변에 주막, 성황당 등도 남아있습니다. 또
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형이라 신라가 쌓은 고모산성과 고부산
성이 있고, 조선시대 관성인 석현성 유적도 남아있습니다.
영남대로 중 가장 험하다는 토끼비리의 '비리'는 '벼루'의 사투리로
강이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를 뜻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
하면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이다가 남하하여 이곳 절벽에 이르
러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때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는데 그 길을 토천(兎遷)이라 불렀고, 토
끼비리는 그 토천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합니다.
¤ 중식(산신령비빔밥)
<'산신령비빔밥'이 속세의 때도 말끔히 씻어줄 듯 정갈했습니다.>
¤ 김룡사(金龍寺)
운달산 김룡사는 일제강점기에는 45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
나였습니다. 지금은 직지사의 말사입니다. 진평왐10년(588)에 운
달(雲達)조사가 창건한 운봉사(雲峰寺)가 그 전신입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옛날 문희(聞喜, 현 문경)부사로 김씨 성을 가
진 자가 국법을 어겨 이 산 용추 부근에 살았다고 합니다. 속죄의
기도를 드리던 중 용추에 살던 용녀를 만나 용(龍)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후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장자(金長者)라 부르게 되었
고, 동네 이름도 김룡리라 하였으며, 절 이름마저 김룡사로 바꾸었
다고 합니다.
1968년 여름, 성철스님이 30년 수련 후 첫 법문을 설법하신 곳입
니다. 현재는 비구니들의 수도처입니다.
¤ 김룡사 석불입상, 삼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 제655호,제667호)
석불입상은 돌기둥 모양으로 민불 형태입니다. 수인과 옷주름은
얕게 새겨졌고 투박해서 입체감이 떨어지는 반면 얼굴은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자연석 석축 위의 석탑은 단층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렸습니다. 1층
탑신 남면에 불상으로 추정되는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데 웃는 표
정이 천진난만합니다.
'김룡사 사적'에 의하면 지맥이 약한 곳을 비보하기 위해 석불과 삼
층석탑을 1709년에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 대승사(大乘寺)
일주문 공포 사이의 현현불이 반겨주는 대승사는 이름도 신령스런
사불산(四佛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평왕 9년(587)에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사면에 불상을 새긴 큰 돌이 붉은 비단에 싸
여 하늘로부터 산꼭대기로 떨어졌다는 소식에 왕이 그곳으로 가서
예경하고 그 곁에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절 이름을 대승사라 하고
산은 역덕산(亦德山) 또는 사불산이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복구하였으나 철종 13년(1862)에 큰 불이
나서 대부분의 전각들이 또다시 소실되었습니다. 다시 중창할 때
국보 제321호 목각탱을 부석사로부터 옮겨왔다고 합니다.
지금의 대승사는 1956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66년에 중건한 모
습입니다. 직지사의 말사입니다.
<일주문 안쪽에서 바라본 현현불입니다>
¤ 대승사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 제321호)
대웅전에 들어서면 불상 뒷벽에 일반적인 불화 대신 화려한 금빛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아
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열두분씩 8대 보살과 사천왕, 제
석, 범천, 나한들이 있고 상단에도 타방불과 비천이 있습니다. 극락
정토에서 아미타불이 설법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으로 불화와 조각
을 절묘하게 접목한 작품입니다.
1675년에 제작된 목각탱은 현존하는 6점의 조선후기 목각아미타
여래설법상 중 가장 오래된 작품입니다. 규모도 가장 크고, 불보살
상의 표현이나 작풍에 있어서도 격이 뛰어나며, 도상의 수도 많아
다른 목각탱의 선구적인 작품입니다.
목각탱은 원래 부석사에 있던 것을 1862년 화재로 소실된 대승사
의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옮겨왔다고 합니다. 후에 부석사에서 반
환을 요구하자 시비가 일게 되었는데, 1876년에 부석사 조사전의
수리비용을 대승사가 대주기로 하고 소송이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
다. 소송 때의 관계문서 4매도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34호)
극락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불상 머리 부분에서 고려 충렬왕 27년
(1301)에 제작된 아미타삼존 다라니가 발견되어 14세기 초에 제
작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고려말 개성 지역의 불상이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계통의
불상인 것과는 달리 이 불상은 고려중기 불상의 전통을 잇고 있습
니다.
좌우 협시보살인 목조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조선후기 작품으
로 원래의 협시보살이 아닙니다.
¤ 대승사 사면석불(경북유형문화재 제403호)
대승사 창건설화와도 관련있는 사면석불은 사불산 중턱에 있습니
다. 불상은 커다란 돌기둥에 새겨진 사방불로 각 면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으며, 사면에는 불상 1구씩 새겨져 있습니다. 마모가 심
해 세부 문양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모두 여래상인 것으로 보입니
다. 동쪽과 서쪽은 좌상이고, 남쪽과 북쪽은 입상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특이한 형태의 사면불상은 경주 굴불사지와 예산 화전리 사
면석불이 있습니다.
산 중턱에 있어 오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산길에 도열해
있는 단풍을 구경하다 보면 그리 힘에 부치지도 않습니다. 올라가
서 내려다 본 풍광도 으뜸입니다.
<윤필암 사불전에서 바라본 사면석불. 사불전에는 따로 부처를 모
시지 않고 사면석불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리로 창을 마련해 놓았
습니다.>
¤ 내화리 삼층석탑(보물 제51호)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꽤 넓은 평지에 우뚝 서 있습니다. 석탑
이 있는 자리는 신라 때 창건한 화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약 100
년쯤 전에 모두 불탔으며, 불상등은 인근의 대승사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석탑은 무너져 있었고 3층 탑신은 근처 새로 지은 재실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는데, 1961년에 수습하여 복원하였습니다.
탑은 단층기단의 삼층입니다. 단층기단은 문경 지방 석탑의 특색
이기도 합니다. 기단이 줄고, 몸돌받침이 생략된 점 등은 신라 석
탑이 점차 간소화 되고, 지방화 되는 모습입니다.
삼층석탑 뒤쪽은 사과밭입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붉은 문
경의 사과가 탐스러웠습니다. 덕분에 폐사지에 덜렁 남은 석탑이
조금은 덜 쓸쓸해 보였습니다.
¤ 숙소에서의 석식(LA갈비와 된장찌개)
<'LA갈비'와 '화요'랑 함께 한 저녁은 사랑이었습니다.>
♡ 1부 끝. 상주지역은 2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