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초등교사 사망 비롯 최근 교육계 일련의 세태에 대한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공동성명서>
"서울 초등교사 사망을 비롯해 최근 무너지는 교육계 세태에 대해 현장과 함께 아픔을 공감하며,
학교공동체의 존엄과 회복을 위해 수수방관하는
교육당국을 대신하여 정책적 제언을 하는 바이다! "
지난 18일 서울 모 초등학교에서 오전, 학교 내에서 한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됐다. 먼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운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 해당 사건은 경찰이 수사 중이고, 교육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바나,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아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이하 교디연)은 최근 위 사건을 비롯해 양천구의 6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폭행해 3주 진단을 낸 것 등의 여러 단상에 대해 무너지고 있는 교육계의 일련의 세태라고 규정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현장과 함께 아픔에 공감하는 바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교권 붕괴’라고 칭하나, 교디연은 ‘공교육의 붕괴’, ‘학교공동체의 붕괴’라고 본다. 근 몇 년 간 학교의 교육활동 침해가 심각해지고 있어(학교교권보호위원회의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를 보면 2021년 2,269건, 2022년엔 1학기에만 1,596건), 올해 3월, 교육부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 일부 개정안을 시행하여, ‘교원의 정당한 생활 지도에 불응해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 행위 유형(제2조)에 신설했을 정도이다(2023.3.23.).
이에, 현장성과 정책성을 지향하는 교디연은 공교육의 붕괴라는 극한(極限)을 보여준 작금의 세태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한다. 허나 감정적으로 진상규명을 촉구하거나, 해당 사건들의 관련 당사자를 찾아내 엄벌을 촉구하는 식의 감정적 대응을 하기보다, 공교육의 정상화 및 학교공동체의 존엄과 회복을 위해 실효성있는 정책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또한, 그동안 여러 붕괴의 신호가 있었음에도 제도 개선을 소홀히 여기며 수수방관하는 교육 당국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바이다.
첫째, 경력이 5년 미만인 교사가 과도한 민원이 예상되는 업무를 맡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싸고, 학교 측이 낸 입장(학교 홈페이지 가정통신문)에 의하면 해당 교사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으며, 담임 학년과 담당 업무인 나이스 권한 관리는 본인의 희망대로 배정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당 교사는 2022년 3월에 임용되었다는 점, 교사는 담임일 경우 1년마다 학급 학생과 학부모가 바뀌는 점, 업무가 바뀌는 점을 고려할 때 “작년보다 10배쯤 힘들어요”라는 해당 교사의 말(서울교사노조 성명서)은 고인의 힘듦을 본인의 심정 그대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제2의, 제3의 유사 사건이 또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교직 경력 5년 이하의 교사들에게 과도한 민원이 예상되는 업무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와 소통 빈도가 잦은데, 저경력 교사는 아직 학부모 민원 대응에 익숙하지 않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업무는 담당 교사가 관련 학생의 학부모와 잦은 소통을 수시로 해야 하고, 서류 작성을 해야 하는 등 중견 교사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업무이다. 업무와 민원 폭탄 업무를 저경력 교사에게 떠맡기는 것은 학교와 교육 당국의 무관심․무책임 속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 현장에서 비교육적으로 업무 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이제라도 바꾸어야 한다.
또한, 저경력 교사를 지원하는 제도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담임교사는 일과 내 학급에서(또는 학교 밖까지도)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한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초등학교의 경우 담임교사는 교실에서 수업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 점심시간까지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력이 적은 교사들은 쉽게 에너지를 소진하고 학급 경영에 염증을 느낄 수 있다. 이를 감안해 신규교사들에게 ‘학교 적응을 위한 수습 기간’을 부여함으로써 발령 직후 담임과 민감 업무를 병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들 제도를 시행령 개정 등으로 시·도교육청 규정 또는 교육부의 지침으로 명시하는 것을 제안한다.
둘째, 학교 공동체 모든 이들의 존엄성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현 아동 학대법을 보완해야 한다.
현재 아동학대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수사기관에 신고를 할 수 있고, 이는 학교에도 적용된다. 물론 아동학대 예방과 처벌은 중요하다. 그러나 신고당한 교사는 실제 범죄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 수업에서 배제되거나 직위가 해제된다. 하지만 실제 판결에서 교사가 유죄를 선고받은 경우는 드물어 과도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교디연은 다양한 교육주체가 모인 집단으로 아동 학대법의 보완을 제시하는 바이다. 어느 집단에나 정도(定度)를 거스르는 사람은 존재하며, 교직에도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허나, 현재의 법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한번 신고를 당하면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교사로서는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또 잃을 수 있다. 학교공동체성은 교육주체 모두가 존엄을 회복하고 조화(harmony)를 이룰 때 달성될 수 있다. 면책특권은 학부모 측이 거부하기에, 학교나 교사가 적절한 방어권을 가질 수 있게 하여 교육적 관점에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이는 사안 검토 후 필요하다면 학교 차원 대응-학부모회의 개입-교육청 단위의 개입 등이 순차적 및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각 학교에 ‘분쟁조정전문가’를 배치하여 ‘학년-학교-학부모’ 학교공동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 분쟁조정전문가는 교육공동체 소속의 전문성을 가진 이가 맡을 필요가 있다. 교사, 학부모회 혹은 학교운영위원회 임원 등의 지역사회 소속 학부모 등이 될 수 있다. 교실은 공동체이기에 ‘남의 아이’의 문제가 결국 ‘내 아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생긴다면 현재는 교사 개인이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개선해 학교 차원에서 ‘자문 변호사’가 적극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 지역교육지원청과 교육청에 자문 변호사가 존재하나 숫자가 적어 형식적이다. 지역을 5~10개의 학교로 구성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 자문 변호사를 1인 이상 배치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셋째, 초등학교 생활 지도 전담 교사제를 실시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교과 수업와 생활 지도의 두 영역을 모두 담임이 맡고 있다. 오래 지속되어온 시스템이지만 지금과 같이 과도한 민원과 생활 지도의 한계가 발생한다면 교사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이에 10년 이상의 중견 교사들 중 희망자를 학생 생활 지도만을 전담하는 교사로 임용하고 학년 당 1명까지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생활 지도 전담 교사들이 생활 지도(특히 학교폭력 등)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생활 지도 전담 교사의 수업 시수를 주 10시간 미만으로 배정하고 학부모 민원 대응, 학교 폭력 사안 대응 등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넷째, 학교폭력예방에 대한 특별법(학폭법)을 전면 개정하고 학생 생활 지도에 대한 학교의 공동 대응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학폭법은 학교의 상황과 시대적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학교 현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학교 밖 활동까지 모두 학폭의 개념으로 넣어 과잉 입법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학생 간 사소한 갈등도 학폭으로 밀어 넣어 학생과 학부모들이 너도나도 학폭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학폭 사안들은 이전의 그것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차원이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대로 학교의 인력만으로 모든 학폭 사안에 대응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학폭법을 개정하되 학부모단체나 교원단체,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입법 초안을 만들어 사회적 합의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청에서는 학급 내 생활 지도만으로 통제가 안 되는 학생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학교 교육 공동체가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학교 생활 지도 공동체에는 교육 3주체(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공동체적인 대응만이 학생 생활지도 문제를 쉽고 빠르게, 그리고 상황에 맞게 해결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정서적인 문제, 특수학생과 일반학생의 경계상에 있는 학생의 문제 등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같은 반에 있는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정서 지원을 담당하는 교사와 장소를 별도로 두는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고, 관련해서는 정책연구나 토론회 등이 필요해 보인다.
과도한 민원에 시달리면서도 숨죽인 채 살아가는, 아픔을 가진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의 마음의 응어리를 무시한 채 공교육의 회복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때 과거 일부 잘못된 관행을 가졌던 교사나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교사들이 짓밟히고 당해도 된다는 인식을 가진 이들은 이제 없을 것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라고 하는 두 개념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교권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리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교권’신장이 ‘학생 인권’신장으로 이어지고, ‘학생 인권’신장이 ‘교권’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학교 내 교육 주체 모두가 하나의 소중한 인격이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학생과 교사의 직분과 역할을 떠나 인간과 생명 존엄의 관점에서 모든 이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시 한번, 서울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합니다. 깊은 슬픔에 잠겨 아파하고 있는 유족분들과 동료 교사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2023년 7월 21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